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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선배들 잘못’에 입 닫은 밤샘회의…평검사들, 자성은 없었다

등록 2022-04-20 14:02수정 2022-04-21 02:41

10시간 밤샘회의 내내
검찰권 약화 우려 논의
소장판사들 ‘사법파동’과 대비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에 참여한 검사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회의 결과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에 참여한 검사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회의 결과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희 평검사들은 검찰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비판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19~20일 검찰 수사권 폐지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밤샘회의를 마친 전국 평검사 대표 207명이 내놓은 4600여자 입장문과 자료에서 검찰 수사 공정성에 대한 언급은 마침표 포함 33글자가 유일했다. 나머지 내용은 검사들이 가진 권한이 사라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검사 경력이 길지 않다. 과거에 비판받았던 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이 많지 않아서 구체적 논의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에 참여한 검사들은 20일 오전 9시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전날 저녁 7시부터 이날 새벽 5시까지 이어진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대전지검 김진혁(46·사법연수원 37기)·최형규(41·38기), 울산지검 남소정(39·변호사시험 1회), 서울중앙지검 임진철(37·42기), 의정부지검 윤경(41·38기), 서울북부지검 김가람(45·37기) 검사가 브리핑에 나섰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을 두고 “검사의 두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어 범죄자들에게는 면죄부를, 피해자에게는 고통만 가중시키는 범죄방치법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검사가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어 억울한 사법피해자 양산 △경찰 수사권 남용 등에 대한 인권보호 기능 박탈 △경찰의 불법적 강제수사 노출 위험 △부정부패 비리사건 수사력 약화 등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국민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정작 평검사들은 그간 검찰이 저지른 수사권 남용 사건 등 지금의 수사권 폐지 논란을 부른 선배 검사들의 잘못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공보를 맡은 김진혁 검사는 ‘과거 검찰의 잘못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회의에 참석한) 최고참 평검사가 15년 차다. 과거에 공정성과 중립성으로 비판받은 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이 많지 않았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저희가 나서서 말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했다. 민주당 입법 강행에 진영을 가리지 않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20여년간 검찰개혁 논의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검찰이 먼저 자성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렸다. 과거를 털고 미래 검찰을 책임져야 할 평검사들이 10시간 동안 이어진 밤샘회의 내내 아무런 논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김 검사는 “검찰이 개혁할 부분이 없다는 식으로 논의된 게 전혀 아니다. 비판받을 부분이 있고 그 지점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평검사들이 (수사 중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내외부 통제장치를 도입하는 것에 공감했다”고 덧붙였다.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를 마친 검사들이 20일 새벽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를 마친 검사들이 20일 새벽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적 수사·봐주기 수사 등 검찰이 저지른 대표적 수사권 오남용 사건 상당수는 평검사들이 검찰에 들어온 뒤 벌어졌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폭력 사건, 서울시공무원 간첩 조작 및 보복 기소 사건, 정권 교체 뒤 수사 결과가 뒤바뀐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실소유주 사건 등은 검찰 잘못이 명백히 드러났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평검사회의에서 검찰 오남용 사례를 언급하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 정도의 입장은 들어가야 했다. 검수완박이 추진되는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논의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기수 파괴’ 검찰 인사에 반발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던 평검사들이 19년 만에 다시 모인 이유 역시 제 권한 지키기에 그쳤다는 점을 두고 검찰 내부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검찰 간부는 “검찰의 미래인 평검사들이 기득권 지키기 집단으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자성이 빠진 평검사들의 집단행동은 권력에 굴종하는 대법원장 등 최고법관들의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 소장판사들이 들고 일어났던 수차례 사법파동과도 대비된다. 평검사들은 “수사 공정성을 위해 평검사대표회의 정례화 등 내부적 견제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자신들이 관여하지 않은 선배 검사들의 잘못된 수사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부 견제가 제대로 될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7명의 평검사들이 밤샘회의를 위해 지나간 서울중앙지검 로비에는 ‘검사 선서’가 걸려 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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