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제이티비시(JTBC) ‘썰전 라이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왼쪽)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오른쪽)가 토론을 벌이고 있다. <제이티비시>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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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티비시(JTBC)가 <썰전 라이브>를 통해 중계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의 토론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테이블의 높이였다. 두 발로 보행이 가능한 비장애인 출연자의 키에 맞춰서 제작한 토론 테이블은, 휠체어에 탄 박경석 대표에겐 높았다. 두 사람이 서로 같은 눈높이에서 토론하는 것이 불가능했을뿐더러, 박경석 대표는 시종일관 명치 부근까지 올라온 테이블 앞에서 말을 이어가야 했다.
온라인으로만 중계된 2부 토론에서는 자리를 옮겨 더 낮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토론했지만, 전장연의 활동을 지지하는 쪽 시청자들은 1부 테이블의 높이가 준 충격을 지우지 못했다. 제이티비시가 두 사람의 토론을 중계하는 주관 방송사로 선정된 건 토론 8일 전이었다. 평소 세트 설계가 비장애인 출연자에게 맞춰져 있었다 하더라도, 휠체어 사용자가 출연하는 회차에 맞춰서 평소와는 다른 크기의 테이블을 준비하기에 빠듯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굳이 그런 성의를 보이지 않았고, 두 사람의 토론은 세트에서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임을 역력히 드러냈다.
서글픈 일이지만, 나는 테이블 높이에 그리 분개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가 없으면 화낼 일도 없으니까. 한국의 방송사들은 철저히 비장애인 중심으로 섭외와 편성을 해왔다. 장애인의 삶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고, 기껏 프로그램이 만들어져도 대부분 시혜적인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껏 상대적으로 동등한 눈높이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시청률이 영 나오지 않는 시간대에 편성되는 게 고작이었다. 평상시 예능이나 드라마, 보도와 교양 프로그램 등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레 어울려 있는 게 아니라, 장애인 의제‘만’ 다루는 프로그램을 생색내듯 만들어서 사람들이 보기 힘든 시간대에 고립시켜 놓고서는 할 일을 다했다는 듯 굴었으니까.
문화방송(MBC)이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방영한 교양프로그램 <우리동네 피터팬>은 기존의 미디어가 장애인 의제를 다뤄온 관습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프로그램이었다. 장애인의 삶에도 기쁨과 환희를 비롯해 다양한 감정과 에피소드들이 있을 텐데, 미디어는 그중 꼭 아프고 힘든 모습만 골라서 보여줌으로써 비장애인들로 하여금 ‘불쌍하니까 도와준다’는 시혜적인 감정을 가지게 하는 데 일조해왔다.
<우리동네 피터팬>은 그에 대한 반성으로, 각자의 꿈이나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다양한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공감하니까 응원한다’는 방향으로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청각장애인 야구선수, 뇌병변장애인 패션모델 지망생, 휠체어 럭비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근위축증 삼남매, 배리어프리 여행사 창업을 준비 중인 샤르코-마리-투스병 환자…. 사회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에 그 도전이 더 힘들 뿐, 자신의 꿈을 향해 매진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더 많은 비장애인이 봤으면 좋았을 이 프로그램의 편성시간은 목요일 낮 12시25분, 그러니까 학생들은 학교에 있고 직장인들은 밥을 먹는 시간에 방영이 되었다.
교육방송(EBS)이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방영한 배리어프리 토크쇼 <별일 없이 산다>는 그나마 비교적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 노력했던 프로그램이다. 비장애인 아나운서 조우종과 시각장애인 코미디언 이동우가 진행을 맡고, 지체장애, 절단장애, 뇌병변장애, 청각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장애인 패널과 비장애인 패널들이 함께 모여 매회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던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서로를 ‘이웃’이라 부르는 프로그램이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고 각자 저마다의 성격과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장애의 유무나 장애 종류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외치던 이 프로그램은 제작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이해는 간다. 시청률이 좀처럼 안 나오는 채널인 교육방송이기도 했고, 각 방송사가 힘주어 만든 프로그램을 가지고 와서 겨루는 화요일 밤 11시에 경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껏 잘 만든 프로그램이 그 존재를 각인시킬 기회를 더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걸 보는 건 슬픈 일이었다.
그나마 이렇게 구석에라도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편성한 건, 문화방송이나 교육방송이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을 끊임없이 질문받는 위치에 놓인 지상파 공영방송이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사기업 소유의 종합편성채널인 제이티비시는 해당 사항이 없다. 장애인방송이라고 해야 “종합편성이나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인정하는 방송시간 중 폐쇄자막방송 100%, 화면해설방송 10%, 한국수어방송 5%에 해당하는 장애인방송물을 제작·편성하여야 한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가 먼저였으리라. 그마저도 제대로 편성이 안 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러니 <썰전 라이브>가 테이블을 고스란히 둔 것은, 별다른 악의가 아니라 아예 경험 자체가 없어서였으리라. 장애접근성에 대한 고려 또한 평상시에 휠체어 장애인과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랬으니 장애인 의제를 놓고 일평생 관련 의제에 투신해왔던 장애 당사자와, 관련 의제에 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비장애인 직업정치인이 함께 토론을 하는 기울어진 구도가 성사된 것일 게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의 삶을 ‘방해하지’ 말고 한쪽으로 비켜 있으라는 주장을, 장애인들을 한쪽으로 배제해왔던 방송사가 중계하는 구도가.
이준석 대표와 박경석 대표는 5월 초 2차 토론을 한다. 인터넷으로만 중계된 1차 토론 2부를 마치며 이준석 대표는 진행자에게 “1층 로비 말고 스튜디오를 하나 내달라”고 말했고, 진행자는 “저희가 특설 무대라도 준비하겠다”고 웃으며 화답했다. 우리는 지켜볼 것이다. 휠체어의 높이에 맞는 테이블이 준비되는지, 그래서 방송사라도 장애인의 삶을 배제했던 오랜 습성을 반성할 것인지 말이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