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가 3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간담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임기가 2년 남은 김진욱 공수처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권 출범 전부터 대통령과 그 가족, 국회의원, 검사 등에 대한 수사권을 가진 공수처 독립성을 흔들기 시작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등 문재인 정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와 처벌을 촉구해온 윤석열 당선자 쪽 입장과도 배치된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인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공수처 간담회 뒤 브리핑에서 “김진욱 처장의 거취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국민적 여론이 있다고 (공수처에) 말했다”고 밝혔다. “국민 의사를 전달한 것이지 거취를 압박한 것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그간 윤 당선자가 “정치적 중립성을 잃었다”며 공수처 수사기능 축소를 공약하고, 그래도 안 되면 기관 폐지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윤 당선자나 ‘윤핵관’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간담회에는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참석했다. 공수처는 곧장 기자회견을 열어 “김 처장은 임기와 관련해 이미 입장을 말한 바 있다”고 밝혔다. 앞서 김 처장은 지난 16일 내부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초대 처장으로서 공수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끝까지 소임을 다할 생각”이라고 했다. 2024년 1월까지인 본인 임기를 모두 채우겠다는 것이다.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조한 인수위가 공수처장 거취를 먼저 언급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지난 1년간 공수처 수사능력과 운영에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이유로 독립기구인 공수처 수장의 퇴진을 언급하는 것은 인수위 권한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특히 공수처와 윤 당선자는 아직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검사-피의자’ 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수위는 공수처가 그동안 어떤 일을 했고, 어떤 부분이 미흡했는지, 개선할 부분은 어디인지 파악하는 곳이다. 공수처가 그동안 아쉬운 행보를 보인 것은 맞지만, 이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임기가 정해져 있는 공수처장 거취까지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직권남용에 해당할 여지도 있다”고 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는 제도의 문제와 운영의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 지난 1년간 전문성·효율성·정치적 중립성 차원에서 김진욱 처장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 거취를 결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도적으로 공수처는 인원이 부족했고 미흡한 부분이 있었는데 시행착오를 거쳐서 내부 규정을 다듬어 새로 태어나고 있다. 제도 보완을 바탕으로 김 처장이 공수처를 운영할 기회를 더 줘야한다”고 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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