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하(24)씨가 지난 17일 산 에스피시(SPC)삼립의 포켓몬스터 빵. 이진하씨 제공
지난 17일 이진하(24)씨는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벅찬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씨가 나흘 동안 그토록 찾았던 포켓몬스터(포켓몬)빵 2개를 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으로 자가격리 중이던 이씨는 인터넷에서 포켓몬빵이 유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씨는 남동생과 함께 포켓몬스터 만화영화를 보고 도감을 외우고 다녔던 추억을 떠올렸다. 유행에 뒤처지기 싫은 마음도 생겼다. 격리가 끝나기만 애타게 기다린 그는 격리해제 다음날 새벽, 집 주변 편의점을 돌았지만 포켓몬빵을 찾을 수 없었다. 3일 동안 편의점을 들락날락하던 이씨에게 편의점 사장들은 물류차가 오는 시간을 알려줬다. 결국 그 다음날, 이씨는 편의점 앞에 도착한 물류차를 보고 편의점으로 달려가 포켓몬빵을 구할 수 있었다.
에스피씨(SPC)삼립이 16년 만에 재출시한 포켓몬스터(포켓몬) 빵을 구매하기 위한 ‘포켓몬빵 사냥’이 어른들의 새로운 놀이 문화가 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출시 뒤 한 달째 인기가 식지 않는다. 어린 시절 500원짜리 포켓몬빵에 포함된 포켓몬 캐릭터 스티커(띠부띠부씰)를 모으던 어린이는 그사이 어른이 됐지만 열정은 그대로다.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편의점 10곳을 돌아보니 포켓몬빵은 한 개도 찾을 수 없었다. 물량이 부족해 편의점에 1∼2개 정도만 입고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온라인상에 포켓몬빵이 편의점에 입고되는 시간을 공유하고 물류차가 오기 20∼30분 전부터 편의점 앞에 줄을 서 포켓몬빵을 사들인다. 일부 동네 마트에는 이보다 많은 수량이 입고되기도 하는데, 1인당 2개로 판매를 제한한 곳도 있으며 역시 마트가 열리자마자 모두 팔린다.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최근 몇 년간 이 정도 인기를 끌었던 제품은 굳이 찾아보자면 초코츄러스맛 꼬북칩 정도다. 들어오는 손님 8명에 1명꼴로 포켓몬빵을 찾고, 포켓몬빵 있냐고 묻는 전화도 계속 온다”고 말했다. 에스피씨삼립은 포켓몬빵 7종이 처음 출시된 지난달 24일부터 이번달 23일까지 한 달 간 700만개가 팔렸다고 밝혔다.
인기가 과열되다 보니 매장문이 열리자마자 물건을 사기 위해 달려가는 ‘오픈런’과 비슷하게, 포켓몬빵을 실은 편의점 물류차가 도착하면 달려가는 ‘물류런’도 생겨나고 있다.
16년 전 포켓몬빵 열풍 당시 스티커만 모으고 빵을 버리는 풍경을 전한 <한겨레> 1999년11월9일 27면 기사.
어른들이 포켓몬빵에 집착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빵이 아닌 추억을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포켓몬빵은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물건이다. 1999년 인기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가 방영되는 도중 출시된 포켓몬빵은 출시 즉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출시된 후 빵을 산 뒤 스티커만 갖고 내용물을 버리는 일이나, 빵 안 스티커 종류를 확인하기 위해 빵을 뭉개는 일 등은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졌다. 이렇다 보니 구매자도 주로 20대 이상 성인이 많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편의점 직원 이아무개(39)씨는 “주로 30대 이상이 포켓몬빵을 찾는다. 쭈뼛거리며 포켓몬빵 없느냐고 묻는 중년 남성도 봤다”고 말했다. 이진하씨도 “똑같은 스티커가 2개 나와 당근마켓으로 스티커를 거래했는데, 사러 나온 사람이 예상과 다르게 20대 후반 여성이더라. 그분도 초등학생이 파는 줄 알고 (답례로 줄)사탕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유행에서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소외 공포증(FOMO)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그냥 재밌어서’라는 반응도 있다. 애니메이션 인물들이 포켓몬을 사냥하러 다니듯, 포켓몬빵을 찾으러 다니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포켓몬빵을 구하기 위해 직접 차를 운전하며 물류차를 따라다닌 후기를 올리기도 했다. 희귀한 스티커를 얻을 경우 이를 자랑하는 재미도 있다고 한다.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한 리셀(재판매) 열기도 불붙고 있다. 희귀 캐릭터로 꼽히는 뮤, 뮤츠 스티커는 당근마켓에서 최대 4만∼5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편의점 사장은 일부 소비자의 지나친 행동에 곤혹스러워하기도 한다. 온라인에는 “없으면 없다고 욕먹고, 하루에 두 개 들어와서 욕먹느니 안 팔고 말겠다”는 한 편의점 점주의 불매 공지문이 올라오기도 했다. 서대문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하승필(47)씨는 “어떤 손님은 진열되지 않은 물류 박스 사이를 헤집으면서 빵을 찾아 이를 제지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1명에게 1개씩만 파는 식으로 팔고 있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포켓몬빵 사냥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에스피씨삼립 관계자는 “현재 생산라인을 최대한 가동하고 있지만 포켓몬빵 이외의 빵도 만들어야 하고, 스티커 업체와 함께 빵을 제작해야 하는 사정도 있어서 당장 공급을 늘리기는 어려운 상태”라며 “당분간 지금과 같은 수준의 규모로 빵이 공급될 것 같다”고 말했다.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한 편의점에 ‘포켓몬 빵 없음’이라는 종이가 붙여져 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