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50년 동안 청와대 이웃 주민으로 살았던 ‘신교동 담배가게 할아버지’ 박종원(83)씨가 자신의 가게에 앉아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벼가 쑥쑥 자라는 들판과 기름진 갯벌에 둘러싸여 자랐다. 편안한 나루라는 뜻을 지닌 전남 강진, 박종원(83)씨는 이 고향에서 오래오래 평탄하게 살 줄 알았다. 면사무소 서기로 2년째 일하던 27살의 박씨는 문득 더 넓은 세상이 보고 싶었다. 나중에 아내와 자녀들을 데려오겠노라 생각하고 무작정 보따리 짐을 챙겼다. 1960년대 중반 어느날 새벽, 그는 서울역에 발을 디뎠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 서울에 먼저 올라온 고향 친구들 집에서 먹고 잤다. 옥인동에 사는 고향 친구가 근처에서 가게를 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1969년 신교동에 자리 잡은 박씨는 청와대 이웃 주민이 됐다.
청와대 서편에서 200m가량 떨어진 신교동 교차로 인근 버스정류장 골목에 들어가면 담배를 팔고 버스카드를 충전하는 작은 가게가 보인다. 박씨는 문방구, 구멍가게, 삼계탕집을 거쳐 30여년 전부터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가게 밖 창문으로 독서대에 올려놓은 책을 골똘히 읽고 있는 박씨가 보였다. 20년 넘게 신·구약성경 필사를 해 왔는데 최근 네 번째 필사를 마쳤고, 이제는 읽고 싶던 <소설 토정비결>을 잡았다. 이 동네에서만 50년 넘게 살았고 통·반장도 거쳐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10명의 대통령이 청와대를 거쳐 가는 것을 봤다.
“어느 날 갑자기 총소리가 여러번 들려오더라니까요. 그 때 총에 맞은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었을 줄이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청와대 주변 청운동, 신교동, 궁정동, 옥인동을 돌다 지난 17일 우연히 박씨를 만났다. 22일 다시 만난 박씨는 청와대를 떠나겠다는 윤 당선자에게 당장 든 마음은 섭섭함과 의아함이라고 했다. “무슨 청와대 때문에 정치를 못 하는 건 아니지 않겠소. 천억을 넘게 들여 옮길 필요가 있겠느냐 이거지. 코로나나 강원도 산불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돈을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지요.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마는….”
‘대통령 집’ 근처에서 자녀와 손주를 모두 길러 냈다는 것은 그에게 자부심이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인생이지만, 청와대 앞에서 산다는 게 제 자랑이고 자부심이에요. 저 땅끝 고향에서도 박종원이는 청와대 앞에 산다고 그러니까.” 이웃 주민으로 청와대에 초청받아 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난 적도 있다. 퇴임을 앞둔 김 전 대통령은 이웃 주민들에게 “(청와대 인근에 사는 것이) 여러모로 괴로웠겠지만 그동안 잘 있다 간다”는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씨와 함께 사진을 찍은 뒤 “이 사진을 오랫동안 보관하실 수 있도록 제가 국정을 잘 운영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노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가게에 걸어놨지만 일부 손님이 “대학도 못 나온 대통령 자격 없는 사람 사진을 왜 걸어놓냐”며 시비를 걸어오는 탓에 내렸다고 한다. “대통령을 그렇게 나쁘게 볼 이유가 뭐가 있을까 생각했죠. 대통령이라는 자리도 참 쉽지 않겠다, 뭘 해도 찬성하고 반대하는 쪽이 나뉘니까 참으로 괴로운 것이 대통령의 운명이겠다 싶었죠.”
22일 오전 50년 동안 청와대 이웃 주민으로 살았던 ‘신교동 담배가게 할아버지’ 박종원(83)씨가 자신의 가게에 앉아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씨의 손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받은 기념품인 넥타이 핀이 들려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씨가 사는 신교동을 비롯해 청운효자동 풍경도 시간이 흐르며 바뀌었다. 군사정권 시절 청와대 주변 경비는 삼엄했고, 동네는 도둑 하나 없이 조용했다고 한다. 경호실 사람들은 폭탄이 들어있을까 수시로 맨홀 뚜껑을 열어보고 테이프로 봉인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 앞길을 개방하자 관광객은 물론이고 목소리 낼 곳 없는 이들이 청와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청와대 앞길이 24시간 전면 개방돼 집회·시위는 더욱 늘었다. 박씨가 좋아하는 스포츠 중계를 보기 위해 TV 볼륨을 최대로 높여도 확성기 소리에 덮였다.
그래도 박씨는 대통령이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모여 목소리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모르고 있던 걸 알게 하는 게 시위니까요. 윤 대통령이 용산으로 이사해도 주변에서 시위는 꼭 하도록 해야 해요. 누구나 자유롭게 대통령 욕도 하고, 원하는 거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 좋은 거 아니요.”
윤 당선자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모든 대통령이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던 목표, 바로 국민이 화합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 “매번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동서가 나누어져 있더라고요. 동서 화합이 참 어려운데 윤 대통령은 그걸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문 대통령도 청와대 떠나기 전에 고마웠다고 이웃 주민들에게 소주나 막걸리 한 잔 대접한다면 참 좋겠습니다만.”
신교동을 비롯한 청와대 주변은 전통 보존과 고도 제한 때문에 5층짜리 건물이 주를 이룬다. 이제는 동네가 개발되겠다며 반기는 소리도 들려온다고 했다. “누군가는 이 동네가 건물도 낮고 후지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정이 있어요. 서로 다 아는 사람이니까 편하게 오가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큰 아파트가 쭉 있는데 이상하게 그런 데는 정이 안 가더라고요. 여기도 이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길을 지나가던 동네 이웃이 박씨 가게에 얼굴을 빼꼼 들이밀었다. 둘은 유리창 사이로 짧은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오늘도 별일 없죠”라는 말 대신.
22일 오전 50년 동안 청와대 이웃 주민으로 살았던 ‘신교동 담배가게 할아버지’ 박종원(83)씨가 자신의 가게에 앉아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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