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폐지되면 대체 어떤 부처가 저 같은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까요?”
8살 딸을 혼자 키우고 있는 김지환(45·미혼부)씨는 말했다. 김씨는 지난 2013년 갓난아기였던 딸 사랑이(가명)를 혼자 키워야 할 처지에 놓였다. 출생신고라는 첫 관문부터가 벽이었다.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는 가족관계등록법 46조2항 때문이었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닐 수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는 재판을 거쳐 1년4개월 만에 사랑이의 출생신고를 마쳤다. 2015년 국회에선 미혼부의 출생 신고 절차를 간소화한 ‘사랑이법’(가족관계등록법 57조)이 통과됐다.
김씨는 사랑이법 도입과 개정에 여가부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아이들이라도 제도권 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여가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미혼부와 그 아이들이 처한 문제를 이야기할 때 유일하게 귀 기울여준 부처가 여가부다. 사랑이법도 지금까지 여가부가 관련 정책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여가부가 사라진다면 미혼부뿐 아니라 한부모 가정, 입양 가정 등 수많은 소수자가 사회에서 더 주변부로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선거 전후 김씨의 한숨만 깊어진 건 아니다. ‘윤석열 후보’는 20대 대선기간 내내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 나온 주장을 이어받아 여가부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지지층 결집을 도모해왔다. 명시적으로 폐지를 공언한 유일의 정부 부처다. 당선과 함께 공약의 이행 여부를 두고 여가부와 여가부 산하 기관들에 의탁해온 많은 이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가부가 운영하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의 도움을 받아 창업에 성공한 방태숙(48)씨도 그중 하나다. 39살에 아이를 가진 방씨는 지난 2012년 출산하면서 하던 일을 그만뒀다. 방씨는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4∼5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가 꿈꾸던 삶이 이게 아닌데’ ‘이 나이에 뭔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란 불안으로 가득했는데 새일센터를 다니게 되면서 삶이 바뀌었다”고 했다.
방씨는 새일센터에서 만난 10여명의 동료와 2019년 정리 수납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정리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새일센터의 직업훈련 프로그램과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 교육, 상담 프로그램 등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전히 많은 여성이 출산·육아로 경력단절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인데 여가부 폐지라니요. 꼭 필요한 정책들도 뒷전이 될까 걱정이에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등 젠더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에도 ‘빨간불’이 켜지게 된다.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센터)에서 최근까지 근무한 ㄱ씨는 “지금도 예산이 적어 센터 직원들이 한 사람당 피해자 180여명을 맡고 있다”며 “피해자가 의지할 곳은 이곳밖에 없는데 여가부가 폐지되면 센터 지원이 더 쪼그라들지 않겠나. 정치싸움에 애꿎은 피해자들이 고통받게 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2018년 문을 연 센터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상담지원, 성착취물 삭제지원, 수사·법률·의료지원연계와 유포현황 모니터링 등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바닥 민심을 반영하듯 여성계는 10일 여가부 폐지 공약 등을 폐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명서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무고조항 신설’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구조적 차별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할 뿐 아니라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강화하고 용인하는 위험한 정책”이라며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새 정부의 ‘여가부 폐지’ 방침 외 향후를 가늠해볼 정보는 드물다. 폐지 뒤의 구체적 대안을 윤 당선자가 내놓진 않았기 때문이다. 2030 여성 유권자들 다수는 동세대 남성들과 극명히 대비될 정도로 윤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아 새 정부의 젠더 정책 이행 과정에서 더 큰 갈등이 예상된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