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검찰총장 시절인 2019년 10월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10일 오전 24만여표 차이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사상초유 ‘서초동’에서 ‘광화문’으로 직행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현실화했다. 가장 큰 격변이 예고되는 조직은 단연 검찰이다. 문재인 정부 후반부터 한직 등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윤석열 라인’이 전면에 재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윤 당선자가 검찰권력 복원과 전 정권 수사를 공언해온 만큼 여소야대 정국에서 측근 검사들을 앞세운 사정 드라이브를 예상하는 이들도 많다. 어느 한쪽도 흔쾌히 손을 들어주지 않는 냉정한 초박빙 민심이 확인된 만큼 윤 당선자가 곧바로 ‘검사본색’을 드러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 내부에서는 예고된 편가르기 인사 태풍에 벌써부터 술렁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윤 당선자의 법무·검찰 인사 구상은 하반기 검찰 정기인사가 있는 오는 8월까지 당선자 본인과 캠프에 대거 포진했던 검찰 출신 측근 등을 통해 뼈대가 잡힐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법무부·대검찰청 업무보고를 받고, 신임 법무부 장관 임명 이후 검찰 인사와 관련한 의견 교환 등이 있겠지만, 일단 정권 초반 검찰 인사의 ‘그립’은 당선자 본인이 확실히 쥐고 놓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자가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믿을 만한 검사’ 가뭄에 시달렸던 문재인 정부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가 비검찰 출신을 통한 검찰개혁을 기조로 잡기는 했지만, 이는 검찰 내부 사정에 어두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박상기 법무부 장관 기용을 통해 ‘윤석열과 그의 라인’이 정권 초반 검찰 조직을 장악하게 하는 ‘패착’으로 이어졌다.
인수위 없이 곧바로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 첫 검찰 인사는 열흘 만인 2017년 5월19일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임명하며 시작됐다. 기수와 서열을 모두 깬 인사였다. 6월8일에는 정기인사 시즌이 아닌데도 ‘우병우 라인’으로 분류되는 일부 검찰 고위 간부들을 대상으로 좌천성 인사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검찰에 확실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고, 법무부는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거 중요 사건에 대한 부적절 처리 등 문제가 됐던 검사들을 수사 비지휘 보직 등으로 전보했다”고 밝혔다. 이어진 7월28일 검사장급 이상 간부 정기인사에서는 조직 안정을 택하는 듯 했지만, 8월10일 중간간부급 정기인사에선 기수와 전공 등 기존 인사 패턴을 깨며 한동훈 등 ‘윤석열 라인’이 주요 보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검찰 내 최측근으로 꼽히는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라인 검사들은 윤 당선자의 입지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윤 당선자가 전임자보다 사법연수원 기수로 다섯 기수나 낮은 파격 인사를 통해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자, 윤 당선자 측근들도 대거 요직에 배치됐다. 윤 당선자와 함께 검찰 내에서 대윤·소윤으로 불리던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 임명됐고, 대검찰정 중앙수사부와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에서 함께 일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은 3차장에 배치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3·4부장에는 신자용·양석조·김창진 검사 등 윤 당선자와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함께 일한 이들로 채워졌다.
윤 당선자가 2019년 7월 검찰총장으로 직행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1·2·3차장검사였던 이두봉‧박찬호‧한동훈 검사는 윤 당선자를 따라 모두 대검으로 이동해 과학수사·공안·반부패강력부장 자리를 꿰찼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지낸 신자용·신봉수·송경호 검사는 각각 1·2·3차장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그해 9월 불거진 ‘조국 사태’ 이후 윤석열 라인 검사들은 비수사 보직이나 지방으로 밀려났다. 2020년 1월 취임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인사가 시작이었다. 명분은 특수통 윤석열 라인이 독식한 검찰 인사를 정상화한다는 것이었다. 2년여에 걸친 윤석열 라인의 주요 보직 독식에 불만이 많았던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무리한 인사는 아니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검찰 안팎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 등에 대한 보복인사라는 비판도 거셌다. 이런 인사 기조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취임 뒤에도 이어졌다.
윤 당선자는 측근 검사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을 ‘적폐’로 규정해 왔다. 검찰 안팎에서는 윤 당선자가 취임 이후 ‘측근 구하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양홍석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는 “검찰 인사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좌천됐던 특수통 인사들을 주요 자리에 복귀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측근들을 주요 보직에 전진 배치하는 인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윤 당선자 취임 이후 주요 보직에 발탁될 가능성이 있는 대표적 측근으로는 한동훈 검사장이 꼽힌다. 한 검사장은 2020년 1월 대검에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발령 난 뒤 비수사 부서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전전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달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한동훈 검사장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할 수도 있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검사장이 “피해”를 보면서도 문재인 정권에 맞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평가했다.
임기가 시작되면 우선 국민의힘에서 친정부 성향이라며 공격해 온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 교체 등 원포인트성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열흘 만에 ‘돈봉투 만찬’ 논란 당사자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밀어내고 윤 당선자를 앉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그때까지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하는 배우자 및 장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인사를 통한 수사외압’으로 비칠 수 있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칫 ‘검찰공화국’ ‘검찰통치’ 우려를 키울 수도 있어 지방선거 이후 정기인사 시즌에 맞춰 연쇄적으로 검찰 인사가 단행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검찰 출신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공동취재사진
윤 당선자가 첫 법무부 장관으로 누구를 임명할지도 관심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낙마한 안경환 교수를 포함해 교수(박상기), 청와대(조국) 및 정치인(추미애·박범계) 출신 등 비검찰 장관을 줄곧 기용해 왔다. ‘비윤석열 라인’의 인사 반발을 다독이고 거대야당을 상대로 검찰권력 복원과 전 정권 수사 등을 시도하기 위해 검찰 출신 인사나 검찰을 잘 아는 정치인을 임명해 이런 작업을 맡길 수 있다. 정치인 중에선 ‘윤핵관’으로 불리는 검찰 출신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적절한 시점에 법무부 장관을 맡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당내 기반이 취약한 윤 당선자가 권 의원을 섣불리 내각으로 빼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김오수 검찰총장의 거취 문제도 있다. 임기제(2년) 취지를 살려 최대한 내년 5월까지 총장직을 수행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간 국민의힘은 김 총장의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된다며 공격해왔다. 윤 당선자 임기가 시작되는 5월10일 전후로 검찰총장 흔들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문에 김 총장이 문 대통령 퇴임 직후 스스로 자리에 물러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김수남 검찰총장의 경우 임기 7개월을 남겨뒀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틀만에 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당선자는 검찰 인사와 수사 등 사정업무를 총괄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두고 보수정권 시절 줄곧 검찰 출신이 맡았던 민정수석을 통하지 않고도 검찰 조직을 직접 통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린 공약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내각 구성을 위한 인사검증 업무 등을 이유로 공약 이행이 흐지부지되거나, 폐지하더라도 유사 기능을 가진 조직이 생길 수도 있다.
“대통령까지 검사동일체되나”…검찰사유화 막아야
검찰 안팎에서는 인사 때마다 반복돼 온 편가르기 인사가 검찰총장 출신인 윤 당선자 취임 이후에도 되풀이 된다면 검찰 사유화 논란이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검찰 간부는 “2019년 검찰총장 취임 직후 때처럼 윤석열 라인을 또다시 주요 보직에 배치시킨다면, 이번엔 대통령이 검찰을 사유화하겠다는 얘기가 된다. 대통령에게까지 검사동일체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검찰총장 재임 시절 정부와 각을 세우며 검찰 독립과 중립을 외쳐온 사람이 정작 인사권을 쥐고 측근을 주요 자리에 앉힌다면, 자신이 외친 말들은 결국 정치적 수사였다는 것을 자인하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개혁입법특별위원장인 김남근 변호사는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청와대에 줄 선 검사들이 승진하고, 청와대가 비공식 라인을 통해 수사를 지휘·통제하는 검찰의 정치화다. 검찰총장 시절처럼 자신의 측근인 특수부 검사들을 검찰 지휘라인에 배치시키고 승진시키는 인사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탕평·통합 인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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