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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울진 산불에 동물들도 수난…“우리 개, 누렁아 어디갔니”

등록 2022-03-08 08:59수정 2022-03-08 11:18

울진 산불 현장 남겨진 동물들
급하게 몸만 빠져 나간 반려인들은 애태워
7일 울진군 울진읍 온양리의 한 주택에서 키우던 개가 불에 타 죽어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가 살펴보고 있다.
7일 울진군 울진읍 온양리의 한 주택에서 키우던 개가 불에 타 죽어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가 살펴보고 있다.

누런 가죽 아래 뼈 모양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죽어있는 개의 목에 걸린 밴드를 끊자 그 부분에만 하얀 털이 드러났다. 지난 4일 갑자기 닥친 울진 산불에 고령의 주인이 몸만 급하게 피하고 남겨진 개였다. 집이 전소돼 대피소에 있는 시부모님이 키우던 개를 대신 살피러 온 김효선(53)씨는 “우리 개는 통통하고 하얘서 이름이 ‘백구’인데, 목에 있는 밴드를 끊기 전에는 (털이 다 타버려) 다른 황구인 줄 알았다”며 울먹였다.

7일 시민단체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6명은 화재로 피해를 본 동물을 돕기 위해 울진을 찾았다. 활동가들이 김씨의 시부모님 집이 있는 울진읍 온양리의 주택에 도착했을 때 주택과 백구 집은 전소됐고 닭장만 남아있었다. 닭 1마리는 죽었고 살아남은 닭들도 불에 그을려 있었다. 활동가들이 그릇에 물과 사료를 부어서 놓아두자 닭들이 황급히 달려들었다. 그릇에 담긴 생수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목줄이 풀려있던 백구는 개집에서 몇m 떨어진 주인집 주택 대문 옆에서 발견됐다. 김씨는 “죽어가면서도 시부모님이 계시던 집까지 겨우 와서 쓰러진거 아닌가 모르겠다. 15년간이나 시부모님을 지켜주던 개다”고 말했다. 백구를 차마 쳐다보지 못하던 그는 “백구야 미안하다”라며 고개를 떨궜다. 활동가들은 백구를 묻어주기 위해 집 근처 공터를 찾았다. 딱딱하게 굳은 겨울 땅이라 삽도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이날 카라 활동가들은 울진에 도착하자마자 울진에서 가장 큰 이재민 대피소인 울진읍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들렀다. 울진국민체육센터에는 작은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한 이재민들 몇 명이 있었다. 이들은 “다행히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는 했지만,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주변에 눈치가 보인다. 겨우 몸만 빠져나온 터라 반려동물에게 먹일 사료도 없다”고 토로했다.

7일 울진군 울진읍 온양리의 한 주택에서 키우던 개가 불에 타 죽어있다.
7일 울진군 울진읍 온양리의 한 주택에서 키우던 개가 불에 타 죽어있다.

하지만 키우던 동물들과 함께 대피하지 못한 이재민들이 더욱 많았다. 김선녀(59)씨는 “진돌이를 두고 왔다. 집이며 주변이 너무 심하게 타서 접근하기도 어렵다”고 울먹였다. 김씨가 “아들이 어제(6일) 보냈다”며 보여준 사진에는 불탄 나무와 재만 남은 땅 위에 쪼그려 앉아있는 진돌이의 뒷모습이 있었다. 현재 진돌이는 김씨 이웃집에서 보호 중이라고 했다. 카라 활동가들은 이웃집에 사료를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김매화(75)씨는 “우리 개, 누렁이를 잃어버렸다. 나를 얼마나 반기는 이쁜이인데, 그걸 잃어버렸다”고 가슴을 쳤다.

카라 활동가들은 이날 울진국민체육센터에서 동물을 도와달라는 이재민 요청 20여건을 접수했다. 전진경 카라 대표는 <한겨레>에 “한곳 한곳을 돌아다니며 상황을 살피고 다친 동물을 치료하거나 물과 사료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대피소 주차장 등에 동물들을 데려올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큰 동물이라서 데려오지 못하면 행정 인력들이 살펴줘야 한다”며 “생각해보라. 불이 나서 도망 나왔는데 동물을 챙겨주러 전소된 집에 계속 가면 그때마다 가슴을 치게 되고 트라우마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녀(59)씨가 키우는 진돌이가 6일 화재가 난 곳에서 쪼그려 앉아있다. 김씨 제공
김선녀(59)씨가 키우는 진돌이가 6일 화재가 난 곳에서 쪼그려 앉아있다. 김씨 제공

김선녀씨네 닭. 6일 아침 김씨 아들이 촬영. 김씨 제공
김선녀씨네 닭. 6일 아침 김씨 아들이 촬영. 김씨 제공

울진/ 글·사진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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