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한겨레>와 만난 108살 김목난 할머니. 할머니는 지난 4일부터 나흘간 산불을 피해 읍행정복지센터에 머무르다 이날 강원 삼척시 원덕읍 집으로 돌아왔다. 고병찬 기자
108살 김목난 할머니는 지난 4일 인생 두 번째 피난길에 올랐다. 할머니는 2000년 4월에도 동해안을 휩쓴 산불을 피하기 위해 이웃의 리어카에 실려 집을 떠나야만 했다. 13년째 홀로 노모를 모시고 있는 76살 아들 강대일씨는 긴박했던 4일 오후 대피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강씨 옆에 있던 김 할머니는 말없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왼손 엄지를 잃은 할머니의 손엔 상처가 가득했다. 모자는 대피장소인 원덕읍행정복지센터에서 나흘간 머무르다 7일 강원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모자는 경북 울진에서 번진 산불이 마을 주변으로 바짝 다가온 지난 4일 오후 4시30분에 집을 나왔다. “당시 상황이 너무 급박해 어머니 신발도 신겨드리지 못하고 대피했어요.” 강씨는 “이장의 대피방송에 밖으로 나가보니 산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혼자 살았다면 좀 더 지켜봤을 테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있으니 정신없이 대피부터 했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산불을 피해 피난길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0년 4월에도 산불은 할머니의 집을 덮쳤다. 당시엔 불이 아주 거세 할머니의 집이 통째로 타버렸다. 당시에도 거동이 불편했던 할머니는 이웃의 리어카에 실려 읍으로 대피해 일 년 가까이 임시 컨테이너에서 살았다. 지금 사는 집은 당시 전소된 집을 철거하고 새로 지은 것이다. 강씨는 “2000년 당시엔 제가 서울에서 경찰관으로 일할 때라 바로 내려와 볼 수 없어서 애만 태웠다”며 “이번 산불에도 집이 타버리면 말씀도 하지 못하시는 노모를 모시고 어찌 살아가야 하나 막막할 뻔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번 산불은 할머니의 집을 피해갔다.
김목난(108) 할머니의 아들 강대일(76)씨는 홀로 고령의 어머니를 모시며 지역 사회에 ’효자’로 소문났다. 강원도는 지난 2017년 강씨에게 이 공로를 인정해 표창장을 수여했다. 고병찬 기자
13년째 홀로 어머니를 지극히 모셔온 강씨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계속 눈물을 훔쳤다. 강씨는 지난 2006년 총경으로 경찰에서 명예퇴직한 뒤 2009년부터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를 13년째 홀로 모시고 있다. 지역 사회에서는 강씨를 ‘효자 중의 효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2017년 강원도는 강씨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효행을 실천”했다며 표창장을 수여했다. 강씨는 “1997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홀로 농사를 지으시며 고생하셨다. 밭일하다 기계에 엄지손가락이 끼어 손가락을 잃는 등 평생 고생만 한 어머니가 산불로 또다시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는 사실에 산불이 야속하기만 하다”고 했다.
원덕읍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의 배려로 할머니는 나흘간 대피생활 동안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강씨는 “원래 대피장소가 행정복지센터 옆 복지회관 2층이었는데 직원들이 바닥이 너무 차다며 온돌이 있는 당직실로 어머니를 옮겨줬다”며 “읍사무소 공무원들이 어머니가 타고 있는 휠체어를 들어 2층에서 1층으로 옮겨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세심하게 배려해 준 덕에 나흘간 그나마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씨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김 할머니는 앉아서 아들의 말을 가만히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중간중간 미소를 지었다. 강씨는 “어머니가 너무 고령이시라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지만 젊은 사람이 오면 손자가 온 줄 알고 미소를 지으신다”고 말했다. 떠난다는 인사를 드리자 할머니는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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