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동해시 괴란동에 있던 김만식씨의 주택이 산불로 타버려 벽체만 남았다.
“와~ 진짜 불이 ‘도깨비불’마냥 와다다다 쏟아졌다니까. 과장 조금 보태서 불기둥이 저기 헬리콥터 높이까지 올라갔어.”
6일 오전 강원 동해시 괴란동에서 만난 김창영(73)씨는 손으로 다 타버린 야산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강릉 옥계에서 시작된 불이 코앞까지 번졌던 악몽 같던 상황이었다. 이 동네 야산들은 군데군데 나무들이 다 타버리고 주택 2채는 불길에 전소됐다. 불이 꺼진 이 날 오후에도 탄내는 사라지지 않았고 눈앞에 재가 날아다녔다. 지난 5일 새벽 1시20분께 옥계 한 주택에서 난 불이 인근 산으로 옮겨붙으면서 산불이 났고, 이 불은 4시간여 만에 동해시까지 번졌다.
김씨는 20년 가까이 일군 포도밭이 불에 다 타버릴까 봐 어제 종일 발을 동동 구르며 직접 밭에 물을 뿌렸다. 김씨는 “포도는 심은 지 4년이 돼야 열매가 나기 시작하는데, 불에 다 타버리면 4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온종일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며 “5일 새벽부터 포도밭에 나가 불이 옮겨붙기 쉬운 냉해 방지용 지푸라기부터 다 풀었다. 생명줄을 지킨다는 심정으로 온종일 밭에 물을 뿌렸다”고 말했다.
동해시 망상동 만우마을의 주택이 산불에 폭격을 맞은 듯 타 버려 뼈대만 남았다.
거센 불길을 막지 못해 다 타버린 집을 보며 망연자실 한 사람도 있었다. 김만식(54)씨는 “태어나고 자란 집이었다. 다 타버렸으니 당분간 시내에 있는 동생 집에 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 뒤를 쫓아온 하얀색 강아지도 온몸이 검은색 재로 얼룩덜룩했다. 김씨는 울먹이며 “강아지 사료까지 다 타버렸다”고 했다.
축사에 소 30여마리를 키우는 한 주민도 불길이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이곳저곳으로 옮겨붙자 축사에 있는 소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물을 뿌리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이 주민은 “불길에 너무 놀랐지만, 축사에 있는 소들을 지키려고 호스로 물을 뿌리며 불이 옮겨붙지 않게 안간힘을 썼다”고 말했다.
동해시 망상동 만우마을에 주차된 차량과 주택이 산불에 타버려 뼈대만 남았다.
동해시 망상동 만우마을에서 만난 주민들도 지난 5일 새벽 상황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만우마을은 옥계에서 불이 난 뒤 불과 1시간30여분인 새벽 2시40분께 대피령이 내려진 동네다.
김영기(78)씨는 “새벽에 대피하라는 안내를 받고 몸만 겨우 빠져나왔는데 해가 뜨고 다시 돌아보니 멀쩡한 집이 별로 없었다. 이게 뭔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옆에 있던 김순우(55)씨도 “진입로가 좁아 큰 소방차는 들어오지도 못했다. 주민들이 물동이를 들고 다니면서 불을 꺼야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산불로 주택 뒷산이 까맣게 타버린 여영구(59)씨는 “인근 동네에서 산불이 났다는 친구들의 연락을 받고 어머니가 걱정돼 평택에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뜨거운 열기와 뿌연 연기로 소방차도 근처까지 왔다가 다 대피했다. 부모님 때부터 살던 고향 집인데 이만하기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논골담길 인근의 산제골 일대 주택이 산불에 뼈대만 남기고 타버렸다.
동해 유명 관광지인 논골담길 인근 산제골 일대도 화마가 활퀴고 간 흔적으로 처참했다. 산불이 옮겨붙어 새까맣게 타 버린 집 곳곳에선 메케한 냄새와 함께 희뿌연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박분옥(80)씨는 “산불이 온다고 다 피하라고 해서 체육관으로 도망치듯 대피해다가 돌아왔다. 전쟁이 난 줄 알았다. 난리통에 세간살이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산불 피해 이튿날인 이날 동해시는 산불 진화헬기 30대 등 장비 273대와 공무원 380명 등 인력 2246명을 동원해 산불 진화에 나섰다. 이날 오후 2시 현재 주택 94곳이 화재 피해를 보았으며 산림 2100㏊가 불에 탄 것으로 동해시는 집계하고 있다. 3년 전인 2019년에도 강릉시 옥계에서 난 산불이 동해까지 번져 산림 1260㏊와 주택 등을 태워 610억원 상당의 피해가 났다.
한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후 4시께 찾은 강원 동해시 국가철도공단 망상수련원에서 강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동해시 주민 임시대피시설인 이곳에 오늘 오후 2시에 입주했다는 강희덕(70)씨는 전 장관을 만나 “어제 새벽 3시50분께부터 집이 있는 만우동에 불길이 강하게 일기 시작했는데도 대기하던 소방차 4대는 호스 연결도 하지 않았다. 물을 뿌려야 한다고 항의했는데도 요지부동이었다”고 항의했다. 이 자리에서 전 장관은 “왜 이런 상황이 나왔는지 확인하고 답변주겠다”라는 답을 했다고 강씨는 전했다.
글·사진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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