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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0만분의 1의 사고 확률까지 미리 걱정하는 사람

등록 2022-03-05 09:59수정 2022-03-05 10:39

[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완벽 혹은 강박

정밀부품 검수만 10년째 민철씨
꼼꼼한 성격이 강박으로 바뀐 뒤
이어지는 불안감 멈춰지지 않아
에너지 고갈, 우울증으로 갈 수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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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철씨는 정밀한 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불량이 있는지 최종적으로 검수하는 일을 합니다. 10만분의 1밀리미터의 오차가 나더라도 불량이 생기는 일입니다. 사람의 안전과 관련된 기계에 불량품이 들어간다면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부품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을 합니다. 민철씨가 이 일을 한 지도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회사에서도 인정받아 팀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평소 민철씨의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 덕분인지, 민철씨 손을 거치는 부품은 불량도 거의 없었습니다. 민철씨 덕분인지 회사도 수출이 크게 늘어 국가에서 상도 받았습니다.

지나친 꼼꼼함이 강박, 불안으로

민철씨가 회사에 가기 위해서는 긴 터널을 하나 통과해야 합니다. 민철씨는 매일같이 자차로 출퇴근을 하는데 그 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우회하면 30분 이상 시간이 더 걸립니다. 어느 날 터널에 진입했는데 그날따라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고 어둡게 보이면서 막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호흡이 어려워지고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핸들을 꽉 붙잡고 운전을 하는데 앰뷸런스 소리가 크게 들리며 터널이 무척 시끄러워졌습니다. 터널 중간에 추돌사고가 나서 사람이 다친 모양이었습니다. 그 사고로 인해 터널에 앞뒤로 차가 꽉 막혀 민철씨는 오도 가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등이 오싹하는 불안한 느낌이 들면서 차를 버리고 탈출하고 싶어졌습니다. 호흡이 막혀오면서 자신이 이 터널에서 빠져나갈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결국 사고는 수습되고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마치 옷을 입고 목욕한 것처럼 젖어 있었습니다. 아내가 민철씨를 보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데도 민철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고 귓가에 앰뷸런스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습니다. 민철씨는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날 직장에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민철씨에게는 이전에 없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민철씨는 터널을 통과하는 길로 가지 않고 우회하는 길로 가 출퇴근 시간이 왕복 1시간 정도 더 길어졌습니다. 출근을 하면 이전보다 너무 꼼꼼하게 검수를 진행해서 검수 시간이 늦어지는 일이 자주 생겼습니다. 주위 동료들은 민철씨의 이런 행동에 힘들어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철씨는 작은 일도 쉽게 넘어가는 일이 없었고 무척 예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같이 자신의 피시(PC)와 노트북, 스마트폰에 있는 모든 파일을 외장하드에 백업을 하고 나서야 퇴근을 했습니다. 혹시 바이러스에 걸리거나 지워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도 생겼습니다.

민철씨는 집에 와서도 자신의 집이 아파트 5층인데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갇힐 위험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어 항상 계단으로 걸어 다녔습니다. 타고 다니는 차도 한 달에 한 번씩 전체 점검을 받고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습니다. 음식점에 갈 때면 수저를 싸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다른 사람이 먹은 찌꺼기가 깨끗하게 세척되지 않아 병에 걸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경과 신발, 시계, 가방, 지갑 등을 모두 하나씩 더 구입했습니다. 만약 분실할 경우에 바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살 때는 깨알같이 쓰여 있는 식품첨가물을 모두 검색해 문제가 되는 성분이 있는지 확인을 하고 나서야 구입합니다.

이러한 행동이 지속되자 가족들도 모두 민철씨에게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민철씨가 자신이 하는 행동을 가족들도 함께 하지 않으면 짜증을 냈기 때문입니다. 민철씨는 10만분의 1의 확률로 생길 일도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직장에서도 민철씨가 하는 일이 너무 지연되고 민철씨가 주위 동료들을 힘들게 하자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민철씨는 가족들의 간곡한 권유로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했습니다.

민철씨는 진찰 결과 ‘불안’이 매우 높은 상태로 평가되었습니다. 민철씨가 심한 불안을 느낀 것은 터널 속이었는데, 이때 느낀 불안의 원인은 ‘광장공포증’으로 진단되었습니다. 광장공포증이란 급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도움 없이 혼자 있게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주 증상으로 하는 질환입니다. 터널뿐만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비행기, 문이 앞에만 있는 고속버스, 어두운 극장 등에서도 잘 생깁니다. 동시에 민철씨는 무척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강박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박적 성격은 매우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입니다. 하지만 융통성이 없고 필요 이상으로 확인을 많이 하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그 일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합니다. 특히 민철씨처럼 불안이 동반되면 자신이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자체 탓에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생각이 자꾸 나는 것은 다시 불안을 유발하게 됩니다. 모든 일을 통제하면 편해지지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면 정신적으로 지쳐가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우울증으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민철씨의 부모님도 두 분 다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이었고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따뜻한 감정적인 교류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민철씨는 자신도 아내와 자녀들에게 따뜻한 말을 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안 피할 ‘안전기지’ 만들어야

어린 시절의 경험과 부모와의 관계는 평생에 걸쳐 예민성을 줄이는 데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그런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현재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뇌는 현재의 좋은 기억을 통해 과거를 극복하는 새로운 신경망의 형성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과 일을 찾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약 자신이 찾은 직업이나 배우자, 취미, 좋아하는 책, 아니면 치료하는 의사가 이와 같은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되는데 이를 ‘안전기지’라고 합니다.

민철씨는 불안과 광장공포증에 대해서 치료를 받으면서 강박적인 성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자신만의 ‘안전기지’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주말마다 인근 산을 등산하고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부인과 자녀들에게 따뜻한 미소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불안이 찾아오면 민철씨는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담당 의사가 있고 가족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뒤 민철씨의 불안과 강박적 성격이 점점 안정되면서 가족에게도 직장에도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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