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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비혼, 돌봄공동체를 꾸리다…“처음부터 우리 모두의 아이였다”

등록 2022-03-02 07:14수정 2022-03-02 19:55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지은이 백지선
“입양 뒤 마침내 세상에 뿌리 내린 느낌”
흔쾌히 돌봄공동체 이뤄준 가족들
“그 어떤 형태든 정상가족”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lt;한겨레&gt;와 만난 &lt;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gt;의 지은이 백지선씨.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의 지은이 백지선씨.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입양, 육아 그리고 비혼. 고정관념 속에 썩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다. 한국 사회는 혼인으로 이뤄진 부모와 혈연인 하나 또는 둘의 자녀로 꾸려진 가족을 ‘정상가족’ ‘건강가정’으로 여기는 경직성을 지녔다. 여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돌봄공동체가 있다.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의 지은이 백지선(49) 작가의 가족 이야기다. 비혼으로 2010년 첫 아이를 입양한 뒤 그의 가족은 돌봄공동체가 됐다.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백 작가는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결혼할 마음은 없었다. 우리 사회가 규정해온 것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의 가족을 꾸리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비혼인 백 작가가 두 아이를 입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10년 3개월 된 첫째를, 2013년 생후 10개월인 둘째를 입양했다. 첫째는 입양기관을 통해 여러 절차를 거쳤다. 입양 심사를 하는 쪽은 백 작가가 비혼이었기에 무엇보다 경제력을 중요하게 따졌다. 백 작가는 자산 내역을 남김없이 제출했다. 그는 “첫째 입양 때 나름대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쳤다고 생각했지만, 둘째 입양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고 했다.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안 시행으로 생모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한 뒤 가정법원의 판결을 거쳐야 입양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법원의 입양 허가를 기다리는 데 10달이 걸렸다.

키즈카페에 간 백지선 작가의 아이들. 사진 제공 백지선
키즈카페에 간 백지선 작가의 아이들. 사진 제공 백지선

아이들은 올해 12살·9살이다. 처음부터 아이 둘을 입양할 생각이었다. 같은 또래면서 같은 환경에서 자란 서로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존재는 백 작가에게도 큰 힘이 됐다. 그는 마침내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린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과거엔 알 수 없는 미래 탓에 현재가 늘 불안했다면, 이제는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장 돌봄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주 중에는 퇴근하고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알림장을 체크하고, 목욕을 시킨다. 주말엔 마트에 있는 문화센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백 작가는 “아이들과 처음 만난 경로만 다를 뿐 일상은 다른 가정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자라면서 더 많은 이들의 돌봄과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이만큼 자라기까지 흔쾌히 돌봄공동체를 이뤄준 가족들이 있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4년간 백 작가는 어머니와 공동 육아했다. 그 뒤 여동생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같이 살았다. 일이 바쁜 언니와 자녀가 있는 오빠도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했다. 백 작가는 “결혼하지 않은 것도, 아이를 입양한 것도 저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며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었지만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커졌다. 가족들과 의논했더니 육아에 도움을 주겠다며 적극 지지해줬다. 사회가 규정한 가족 형태가 아닌 내게 맞는 가족 형태를 꾸릴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그가 아이를 입양한 것은 어머니 때문이기도 했다. 백 작가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이른 나이에 독립을 했다.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이었다. “저와 형제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떠났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셨죠. 노년이 되어서는 곁에 남은 사람이 아버지뿐이니 더 떠나기 힘들어하셨어요. 우리 아이들이 어머니께 집을 떠날 이유를 만들어준 셈이죠.” 어머니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생기를 보였다.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던 탓에 자식들에겐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사랑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느 할머니들처럼 “애가 천재인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떠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면, 백 작가는 아이들과 함께하기로 한 결정이 참 잘한 일이고 생각한다.

첫째 아이를 입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찍은 사진. 사진 백지선 작가 제공
첫째 아이를 입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찍은 사진. 사진 백지선 작가 제공

“아이들이 오고 나서 또 달라진 점은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 가족이 다시 예전처럼 가까워졌다는 거예요.” 원가족의 회복 또한 아이들이 준 선물이다. 독립 뒤 명절 빼곤 남매들끼리도 교류가 적었다. 돌봄이라는 공통의 목적이 생기기 전까진 말이다. 백 작가는 “아이들 덕분에 가족들이 다시 결합하게 됐다”며 “저에게 배우자가 없다 보니 처음부터 가족들은 아이들을 ‘우리 모두의 아이’라고 생각했다. 여동생은 입양하기 전 절차인 가족 상담에서 아이를 같이 키울 거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실제로 입양 뒤 가족들은 돌봄에 전폭적으로 뛰어들었고, 교류가 잦아지면서 멀어졌던 가족 간 관계도 회복됐다”고 했다.

비혼 입양 가정의 장점으로는 아이들을 안정된 환경에서 양육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부부 사이가 나빠지면 아이가 피해를 입는 일이 종종 생긴다. 비혼 입양 가정에선 부모의 갈등을 경험할 일이 없다. “최소한 가정불화로 아이들이 상처받을 일은 없다”는 게 백 작가의 설명이다. 배우자가 없기에 다른 가족이 스스럼없이 집을 드나들며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백 작가는 “핵가족이 보편적이라고는 하지만 수많은 가정이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아 육아를 한다. 내게는 배우자가 없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이 돌봄공동체 구성원 역할을 흔쾌히 해줬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도 큰 어려움 없이 일을 잘해낼 수 있었던 이유”라고 밝혔다.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선 결국 돌봄공동체가 필요하다. 그 형태에는 정답이 없다는 게 백 작가의 설명이다. “그 어떤 형태든 정상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도 다양한 가족 형태 중 하나일 뿐이죠.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누구나 주체적으로 공동체를 꾸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이것이 행복을 얻는 더 확실한 방법일 수도 있고요.” 당부의 말도 전했다. “지금보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됐으면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 가족도 한국 사회에서 더는 특별한 가정이 아닌 날이 오겠죠?”

박고은 기자 euni@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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