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평화적 해결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국가를 부르며 러시아에 항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됩니다. 그곳에는 탱크가 들어오고, 폭음이 들린다고 합니다. 푸틴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시작한 전쟁을 당장 멈춰야 합니다”
28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평화적 해결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에 참여한 우크라이나인 유학생 카트리나(25)는 서툰 한국어로 현지에 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을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기가 새겨진 마스크를 쓰고 기자회견에 참여한 그는 가족 6명이 수도 키예프에서 차로 7시간 떨어진 드니프로(Dnipro) 있는데도 폭음이 끊이질 않는다고 말한다며 러시아는 당장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지난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침공한 이후 국제적인 반전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참여연대, 전쟁없는세상 등 391여개 시민사회단체는 2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쟁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반인륜적인 범죄”라며 “러시아의 침공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한 선제공격이며 우크라이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시민들은 기자회견에서 “평화가 길이다”, “전쟁에 반대한다”, “푸틴은 전쟁을 중지하라”,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라”라는 구호를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외쳤다.
이날 기자회견엔 급하게 한국으로 귀국한 현지 교민 30여명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유학생, 한국 시민 등 2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러시아가 당장 군사적 행동을 중단하고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외쳤다.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선제공격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있는 지금, 러시아는 당장 침공을 중단하고 협상테이블에 앉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8월 한국으로 유학 온 우크라이나인 카트리나 역시 “전쟁에 단호하게 반대한다”며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싸워 평화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급하게 우크라이나를 떠나온 현지 교민들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현지인과 결혼해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30여명의 교민들을 걱정하며 급박한 현지 소식을 전했다. 우크라이나에서 30년간 무역업을 해오다 지난 17일 한국으로 귀국한 김평원(60)씨는 “지금도 수도 키예프에서 40km 정도 떨어진 마을에 사는 교민들이 탱크가 불타고, 총소리가 들리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동영상을 보내고 있다. 폭격이 예고 없이 이뤄져 위험한 상황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17년간 우크라이나에서 살다 지난 17일 한국으로 귀국한 신지윤(26)씨는 “현지에 있는 친구들이 폭음과 총소리에 매우 불안해하며 피신해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며 “전 세계가 동참해 당장 전쟁을 멈추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28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평화적 해결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들이 한국어와 러시아로된 피켓을 들고 있다. 고병찬 기자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 3800여명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조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한국 정부는 한국에 있는 3800여명의 우크라이나인의 출국 기간을 미뤄주는 임시조치를 넘어 전면적인 난민 심사와 비자 발급, 재정착 등을 신속하게 고려해 평화를 지지하고 난민 보호를 천명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임재훈(17)씨는 “매체를 통해 러시아군의 탱크가 민간인의 차를 짓밟고 유치원을 폭격하는 등 끔찍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오늘부터 1인시위를 하며 러시아정부를 규탄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라며 “한국 정부도 서방과 연대해 러시아를 규탄하고, 한국이 가진 소프트파워를 이용해 전 세계적인 반전여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동아시아에서도 나비효과처럼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성균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은 “러시아가 침공한 날 중국이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고, 27일엔 북한이 동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동아시아에서도 민감한 시기에 공격적인 군사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우려스럽다”며 “러시아를 비롯해 모든 국가들은 군비증강의 악순환을 야기하는 일체의 공격적인 군사행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시민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오전 11시35분께 전쟁으로 고통받아 온 사람들을 상징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한 후 전쟁에 저항하는 모든 시민과 연대할 것을 밝히는 입장문을 주한 러시아대사관 직원에게 전달했다.
2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평화적 해결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맡은 뭉치 전쟁없는세상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28일 오전 11시35분께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평화적 해결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전쟁으로 고통받아 온 사람들을 상징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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