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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030 분노와 혐오 선동’한 권력은 무엇을 돌려줄까

등록 2022-02-26 07:59수정 2022-02-26 11:41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극우정치가 힘을 키우는 법

‘헬조선’ 폭발이 탄핵 동력 됐지만
사회적 불만 고스란히 남게 되자
혐오 악용해 정치력 키운 세력에
‘이런 정치가 쉽다’ 교훈 줘선 안돼
지난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연설 예정이던 극우 논객 마일로 야노풀로스를 저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울타리를 치고 항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연설 예정이던 극우 논객 마일로 야노풀로스를 저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울타리를 치고 항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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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2030의 분노’라는 것이 여기저기서 거론된다. 무엇에 대하여 그렇게들 단단히 화가 났는지에 관한 진단은 소위 젠더 갈등, 불공정, 위선, ‘내로남불’, 거주불안에 대한 불만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저 키워드들을 거론하기 전에, 나는 어떤 집단적인 불만이 불거지면 그 불만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사회에서 문제적인 것으로 부각되는 집단적 불만은 크게 잡아 네 가지 부문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사회적 불만, 경제적 불만, 정치적 불만, 문화적 불만이 그것이다.

헬조선→불공정, 이름 바꾼 분노

저 네 가지 성격의 불만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사회적 불만은 사회 구조 자체에 대한 불만이며, 높아지는 고용 문턱, 계층 장벽과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다. 어찌 보면 가장 큰 범주의 불만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 불만은 자신의 불만과 요구를 관철할 경로가 보이지 않고 기성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의지를 결여한 것으로 보일 때 발생한다. 경제적 불만은 나에게 돌아오는 몫에 관련한 불만이다. 문화적 불만은 자신이 추구하는 일상의 삶의 방식이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될 때, 간섭받고 침해당한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이 불만들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불거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서로 조금씩이나마 연관되어 있다. 특히 이른바 2030의 분노는 저 불만들이 모두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문제다.

이른바 젠더 갈등, 불공정이라는 말이 나라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기 이전에, 박근혜 정권 때 유행했던 ‘헬조선’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를 향한 강한 원한과 분노와 불만이 높은 밀도로 응집된 말로 연일 뭇사람의 입에 올려진 바 있었다. 그런데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헬조선 문제가 박근혜 정권 고유의 문제로 급하게 환원되었다. 말인즉 박근혜만 물러나고 정권이 교체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퇴진’은 당장 현실화를 상상할 수 있는 약속이 되어 거대한 숫자의 청년을 촛불시위에 동원하는 기치가 되었다. 이때 헬조선에 대한 사회적 불만은 정권 퇴진 요구로 표상되는 정치적 불만으로 응집했다.

정권 퇴진과 교체는 정치변혁이었기 때문에,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사회적 불만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았다. 문재인 정권 2년차까지 적폐청산이라는 기호가 사회적 불만을 잡아줬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적폐청산 헤게모니’는 20대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고 다시 사회적 불만은 이름을 잃은 채 표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들어 그 불만들에 새롭게 붙여진 이름이 불공정에 대한 성토, 반-위선, 내로남불에 대한 원한, 반페미니즘 등이다.

미국 이야기로 잠시 우회해보자. 변화와 희망의 상징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미국 청년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은 고질적인 의료보험 문제, 대학 등록금으로 인한 빚, 갈수록 심각해지는 인종차별, 고용불안 등에 대한 원한을 키우고 있었다. 민주당 대선 주자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은 오바마 행정부의 장관 출신일 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와 유착한 정치인이라는 인상까지 겹친데다 청년들이 지지했던 버니 샌더스와의 경선에 석연찮은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청년들로부터 강한 반감을 받았다. 이러한 탓에 민주당 경선을 전후로 미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일지라도 힐러리 클린턴을 악마화하고 조롱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됐다.

트럼프의 집권전략 ‘혐오 장사’

그렇게 청년들이 클린턴을 위시한 기득권 리버럴 세력을 향한 원한과 분노를 키워가던 가운데 이러한 시류를 타서 ‘혐오 장사’를 시도하는 사람이 다수 나타났다. 1984년생으로 당시 삼십대 초반이었던 마일로 야노풀로스라는 청년은 극우 성향 인터넷 언론 <브라이트바트 뉴스> 필자였는데, “페미니즘은 암이다”(feminism is cancer)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만들어 팔고, <고스트버스터즈> 리메이크작(2016) 여성 출연진을 향한 집단적 인신공격을 선동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대안우파라는 말을 사실상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리처드 스펜서는 극단적인 이민자 배격 및 백인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설파하고 “평화로운 인종 청소”를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과격파 추종세력을 모았다.

클린턴과 민주당 리버럴 세력은 뚜렷한 의제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정치적 올바름의 측면에서 트럼프 및 공화당과 차별화하고자 애썼다. 사회적 문제와 불만을 호명하는 데 소홀한 채 ‘최초의 여성 대통령’ 강조와 젠더별 화장실 이용, 불법 이민자들을 온정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머무르며, 이에 동조하지 않거나 시큰둥한 유권자들에게는 ‘명예 남성’ 혹은 ‘명예 백인’처럼 인종주의자 낙인을 붙이기에 바빴다. 마침 비디오게임을 즐겨 하던 일부 이십대 남성 사이에서는 전부터 정치적 올바름 등이 자신들만의 문화에 간섭하고 훼방을 놓는다는 불만을 키우고 있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상당수 청년이 정치적 올바름과 페미니즘, 이민자 등에 대한 증오 캠페인을 선동하는 자들에게 동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휩쓸린 여성도 적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청년들이 수년간 누적해온 사회적 불만, 경제적 불만, 정치적 불만은 문화적 불만으로 치환되고 표현되게 되었다. 그리고 문화적 불만만이 청년들의 불만의 전부인 양, 언론은 보도했고 논단은 비평했다.

야노풀로스는 자신과 트럼프를 팻 뷰캐넌과 비교했다. 뷰캐넌은 1992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를 위협했던 정치인으로, 냉전 종식 이후 적은 내부에 있으며 자유주의자, 즉 리버럴들이 바로 그 적이라고 주장하는 연설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리버럴들의 문화적 자유주의 의제, 즉 자유로운 낙태, 여성 해방, 동성애자의 권리 증진과 무신론자의 증가 등이 ‘하느님의 나라’에 엄청난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미국 정치가 ‘문화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야노풀로스는 트럼프와 함께 자신을 뷰캐넌이 벌이고자 했던 문화전쟁의 새로운 선봉장으로 정의하며 그의 혐오 선동을 현대판 문화전쟁의 전투로 포장했다. 다만 뷰캐넌의 문화전쟁이 분쇄하려던 적은 페미니즘과 소수자의 권리 증진으로 인한 분방함, 방만함이었다면, 현대판 문화전쟁의 적은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으로 인한 자유의 침해다. 그 자유는 물론 혐오할 자유다.

여하튼 트럼프가 승리했다.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이 전부 문화전쟁 때문에 투표한 것은 아니었을 테다. 어찌 됐건 야노풀로스, 스펜서 같은 사람이 열렬히 응원했던 트럼프가 당선됐고, 이들은 더 기고만장하며 영향력과 세를 키웠다. 정치적 올바름을 두고 대학생들은 더 심하게 분열했고 혐오 범죄, 인종차별은 더욱 심각해졌다. 세계 곳곳에서 ‘여자 사냥’ 일지를 블로그에 기록하는 매우 악질적인 여성혐오 콘텐츠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던 자칭 ‘픽업 아티스트’ ‘루시 브이(V)’는 트럼프의 당선에 뛸 듯이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드디어 나와 같이 여자들을 외모로 평가하며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기는 대통령을 맞이하게 됐다.”

극우주의가 결집하는 방식

5년쯤의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도 매우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극우 포퓰리즘 연구자 카스 뮈더(무데)에 따르면 극우주의가 결집하는 논리는 주로 문화적 반발이다. 이름 없이 표류하는 사회·경제적 불만을 특정 집단을 향한 불만으로 전환시켜 그 집단을 향한 혐오와 공격을 선동하는 사람이 세를 넓힌다는 이야기다. 지금 한국의 몇몇 정치인들이 이런 식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증폭된 문화적 불만에 영합하여 손쉽게 대중의 지지와 득표율을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정치인을 열렬히 응원하는지를 봐야 한다. 그들이 응원하고 지원했던 정치인이 당선됐을 때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더 설쳐대고 기고만장할지 상상해봐야 한다. 혐오하고 배제하는 정치가 쉽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교훈을 줘서는 안 된다.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 이어 <급진의 20대>를 썼고, <인싸를 죽여라>를 번역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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