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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권고사직 않자 “다른 회사 지원하고 증거 제출해라” 지시

등록 2022-02-24 15:11수정 2023-03-16 10:27

“적정 범위 넘어서는 업무 지시, 직장 내 괴롭힘 해당할 수 있어”
게티이미지 뱅크
게티이미지 뱅크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정식으로 징계를 받고 싶습니다. 잘 해내면 원래 업무로 복직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왔지만, 지난 2년 동안 저는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2011년부터 서울에 본사가 있는 건축 자재 기업 ㄷ사에서 일해온 김아무개(40)씨는 지난 2020년 2월 인사발령 뒤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부동산 개발 및 분석을 하던 그는 ‘업무혁신 티에프티(TFT)’라는 부서로 동료직원 6명과 함께 인사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발령 4개월 안에 김씨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은 모두 퇴사했다.

김씨는 부서의 관리자인 상무가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제안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사실상 퇴사를 압박했다고 주장한다.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은 직원에게 독후감을 쓰게 하거나, ‘회사가 나아가야 할 길’이나 ‘나의 혁신’이라는 주제로 사실성 반성문 쓰기와 가까운 업무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실제 김씨가 지난 2020년 3월11일 작성한 업무일지를 보면, ‘나는 지금 왜 권고사직을 받았는가’ ‘왜 나는 비웃는다는 표정 같다고 지적을 많이 받는가’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김씨를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이 모두 퇴사한 뒤 압박은 김씨에게 집중됐다. 김씨는 상무가 “당신이 잘한다면 다른 회사에서도 뽑아줄 것이라며 다른 회사에 지원하고, 그 증거자료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본인의 표정이 보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니 면접을 통해 표정 관리를 연습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지난 2020년 7월29일∼9월14일 김씨가 작성해 회사에 제출한 업무일지를 보면, 김씨가 10개 이상의 기업에 입사 지원을 하거나 면접을 봤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김씨가 더는 지원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상무는 김씨에게 ‘본인과 같은 저성과자를 위한 책을 쓰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지난 2020년 11월부터 지역에 있는 공장에 배치된 상태다. 김씨는 “공장에서 직장 동료에게 ‘4년제 대학교를 나왔으면 머리를 써라’는 말을 들으며 허드렛일을 한다. 최근 온종일 하는 일이라곤 철골 관련 작업자가 몇 명인지 세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회사의 지시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봤다. 근로기준법(제76조의2)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한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사실상의 우월한 지위를 활용해 회사가 직원이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비상식적인 지시를 하는 것 자체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설명했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적정범위를 넘거나 차별적으로 경위서, 시말서, 반성문, 일일 업무보고를 쓰게 하거나, 업무상 필요성이 없는 독후감을 쓰게 하는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의 한 유형”이라고 말했다.

회사 쪽은 <한겨레>에 서면으로 김씨가 발령받은 업무혁신 티에프티(TFT)에 대해 “근무 태도 및 업무수행능력 등의 개선이 필요한 직원들에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고, 교육 및 전환 배치를 검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답했다. 회사는 “변화 혁신 교육의 일환으로 자기계발과 관련된 도서를 읽고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현시점에서 본인의 이력서를 작성해 취업시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직무역량에 대한 고찰을 수행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3월11일 김씨가 작성한 업무일지. 이날 김씨는 “나는 지금 왜 권고사직을 받았는가”, “‘왜 나는 비웃는다’는 표정 같다고 지적을 많이 받는가” 등을 적었다. 김씨 제공
지난 2020년 3월11일 김씨가 작성한 업무일지. 이날 김씨는 “나는 지금 왜 권고사직을 받았는가”, “‘왜 나는 비웃는다’는 표정 같다고 지적을 많이 받는가” 등을 적었다. 김씨 제공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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