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7시40분께부터 ‘대통령후보 장애인권리예산 약속 요청 및 기획재정부 책임촉구 지하철타기 출근선전전’이 서울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 오금행 승강장에서 시작돼 경찰병원역에서 종료됐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장애인단체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어가는 가운데, 불편을 호소하는 비장애인과 장애인단체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장애인을 향한 공격과 혐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사망 사건 이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약속해왔지만 21년 동안 이를 온전히 지키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큰데, 정부는 시민들 사이의 갈등에 손 놓고 있는 모양새다.
지하철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16일 “전날 (15일) 신원 미상의 20대 남성이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전장연 사무실로 찾아와 “불을 지르겠다”는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다. 전장연 관계자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수자라도 시민 불편 안된다’, ‘이들에게 굴복하면 안된다’, ‘지하철 시위를 중단시키자’는 등 장애인 혐오 여론이 커지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장애인 이동권 예산 근거를 명확하게 하고, 대선 후보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약속하면 시위를 멈추겠다는 입장이다. 장애인 단체에 대한 혐오가 증폭되고 있음지만 기재부와 대선 후보 쪽은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지금까지 기재부와 대선 후보들 쪽에서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약속’을 강조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동권 보장 약속을 어겨왔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3차 계획상 지난해 전국 평균 저상버스 도입률은 42%가 돼야 하는데, 28%에 그쳤다. 지난 2015년 서울시는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 시내버스를 모두 저상버스로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대로라면 지난해 75%를 달성해야 했지만 66%에 그쳤다. 지난해 12월 국회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 개정안은 애초 장애인의 시외 이동을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 지원을 국가나 지자체가 ‘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하며 ‘할 수 있다’로 바뀌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기획재정부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는 보조금법 시행령상 국비 지원이 불가한 사업”이라며 예산 지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면서다. 장애인 단체들은 ‘시행령은 정부가 추진해 바꿀 수 있는 법령인데도 이를 핑계로 대고 있다’고 반발한다.
결국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갈등이 더 커지기 전에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나동환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변호사는 “지금까지 정부는 장애인을 동정이나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수준으로만 정책을 만들어왔다”며 “이번 시위에서 드러나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의 시선은 그동안 장애인 이동권을 무시해왔던 정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실제 장애인의 삶과 사회적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예산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도록 정부가 해야 할 적극적인 노력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김민아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장애인은 이동하지 못하면 병원에 갈 수 없고, 돈을 벌 수 없다. 장애인들이 ‘이동권은 생존권’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정부와 정치권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우선순위에 두고 정책을 펼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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