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감시네트워크 회원들이 3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정보위의 국가사이버안보법 논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국가정보원의 권한 강화와 그에 따른
사이버 사찰 가능성이 제기된 ‘국가사이버안보법안’과 ‘사이버안보 기본법안’에 시민사회는 물론, 국내 주요 아이티(IT) 기업들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4일 두 법안에 대한 첫 논의를 시작하는데, 대선을 앞둔 어수선한 시기에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졸속으로 관련 법안이 통과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아이티 기업 목소리를 대변하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대선 캠프에 각각 두 법안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검토의견서를 제출했다. 국회 정보위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를 하루 앞두고 업계의 우려를 전달한 것이다.
<한겨레>가 확보한 이 의견서를 보면, 협회 쪽은 “사실상 권한을 보유한 행정청(국정원)의 주관적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해 권한이 행사되도록 법안이 구성돼 있다”며 “규제 대상은 정부의 의지에 따라 (IT·금융 이외에) 에너지·제조·의료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전 분야의 디지털 서비스로 무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고 반대했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디지털 데이터에 대한 평가는 정부의 관리·감시·통제·검열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이로 인해 성장성 및 투자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국정원 출신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국가사이버안보법안’은 긴급한 사이버 보안 위험이 발생했을 때 국정원이 법원 허락 없이도 민간기관은 물론 개인의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독소조항이 포함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의 반발을 불렀다. 기존에 발의된 ‘사이버안보 기본법안’(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안)보다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고, 디지털 정보 수집의 근거를 마련한 법안으로 평가된다. 정부 안에서도 국정원을 제외한 국방부·경찰청·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은 사이버 안보 대응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국정원의 권한 확대를 우려해 두 법안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안을 심사하는 정보위 법안소위 위원 6명(하태경·김병기·노웅래·윤건영·홍기원·조태용 의원) 가운데 2명(김병기·조태용 의원)이 법안을 발의한 당사자이고, 소위원장인 하태경 의원도 법안 처리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법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보다 신속한 통과에 무게가 실리는 것 아니냐는 게 시민단체와 업계 등의 우려다.
이에 대해 하태경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경제전쟁 시대에 사이버 안보는 중요하고, 현재 민관군으로 나뉘어 있는 대응 채널을 통합한 ‘원팀’이 필요한 것은 맞다”며 “특정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킬 생각은 없지만, 여야 이견이 없으면 (2월 안에 처리)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여당 간사이자 법안을 발의한 김병기 의원 쪽은 지난해 11월 <한겨레>에 “국회 예산안 심의가 끝난 뒤 법안 공청회를 열어 관련 입장을 내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두 달 넘도록 공청회는 진행되지 않았다.
한 여당 관계자는 “(논란이 되는 법안인 만큼 심사가) 한 번에 결론이 나진 않을 거고, 형식적으로라도 두세 번 조율을 거치게 될 것”이라며 “현재까지 공식 당론은 없지만, (여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의 뜻이 강해) 만약 표결을 한다고 하면 법안소위 통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전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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