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텀블러에 ‘정액테러’ 해도 ‘재물손괴’…비접촉 성폭력 올해도 둘 건가

등록 2022-02-02 17:59수정 2022-02-03 02:33

“‘성적 인격권’ 침해 폭넓게 처벌해야”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 권고
성매매 제안·아바타 폭력도 처벌 필요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 위원장 변영주)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5차 권고안을 통해 ‘성적 인격권’ 개념을 도입을 제안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 위원장 변영주)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5차 권고안을 통해 ‘성적 인격권’ 개념을 도입을 제안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5월 서울 북부지법 형사5단독 홍순욱 판사는 여성 동료의 텀블러에 6개월 동안 6회에 걸쳐 자신의 정액을 넣은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ㄱ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ㄱ씨에게 적용된 죄명은 ‘재물손괴’였다. 재물손괴의 법정형은 3년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성범죄로 처벌할 때(10년-1500만원 이하)보다 가볍다. 성범죄 전과가 남지 않고, 신상정보 등록·고지 대상서도 제외된다.

#같은 달 베트남 국적 여성 ㄴ씨는 택시를 탔다가 기사로부터 “20만원 줄 테니 나와 자자” 등 성매매를 제안하는 말을 들었다. ㄴ씨는 “결혼했고, 아이도 있다”고 했지만 택시기사는 성희롱을 멈추지 않았다. 하차 후 경찰에 신고하자 “적용할 혐의가 마땅치 않다”는 말이 돌아왔다. 현행법상 성희롱은 그 대상이 장애인·노인·아동일 때에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직장 내 성희롱’ 처벌 조항이 있으나, 그 대상은 사업주이지 가해자가 아니다. 결국 해당 택시기사는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신체 접촉이 없다는 이유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성폭력 사례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위 사례에서처럼 피해자는 분명한 불쾌·위협·공포감을 느끼지만, 가해자를 “처벌할 법이 마땅치 않다”고 한다. 현행 성폭력 처벌법의 한계 때문이다. 현행법은 신체 간 ‘접촉’을 기본 전제로 만들어져, 피해자의 물건·아바타 등을 대상으로 한 간접 형태의 성폭력이나 언어적 성희롱 같은 ‘비신체적’ 성폭력은 처벌하기 어렵다. 미국 언론이 “한국의 법체계에는 변태들이 엄벌을 피할 수 있게 하는 여러 허점이 있다”(<바이스>, 지난해 8월)고 꼬집을 정도다.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 위원장 변영주)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5차 권고안을 통해 이러한 법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성적 인격권’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성적 인격권이란, 개인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헌법 10조 ‘일반적 인격권’ 조항은 ‘성적 인격권’ 개념도 포괄하고 있지만, 별도의 독립 법익으로 설정해 이에 대한 침해 행위를 보다 폭넓게, 확실히 규제하자는 게 이 권고안의 요지다. 구체적으로 전문위는 현행 성폭력 처벌법에 성적 인격권 침해 시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예컨대 ‘원치 않는 성적 표현을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해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유발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면 물리력이 없는 비신체적 행위라도 처벌하자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는 △모욕적·굴욕적으로 타인의 존엄성을 훼손하거나 △위협적·적대적·공격적으로 성적 또는 성차별적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성적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처벌한다. 우리와 달리, 언어만으로 이뤄지는 성적 괴롭힘도 명백한 성폭력으로 보는 것이다.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 위원장 변영주)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5차 권고안을 통해 ‘성적 인격권’ 개념을 도입을 제안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 위원장 변영주)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5차 권고안을 통해 ‘성적 인격권’ 개념을 도입을 제안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문위는 최근 급증하는 온라인상 성적 가해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이런 조항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게임, 메타버스 등에서 여성 캐릭터를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하거나, 유저가 여성임을 확인하고 성적 대화를 유도하거나 모욕, 욕설, 스토킹을 하는 등 온라인상 성적 괴롭힘 유형은 다양화”되고 있다. 10∼20대 여성이 주된 피해자다. 그런데도 언어적·비신체적 행위라는 이유로 처벌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문위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은 주변인들에 대한 신뢰 또는 일상생활의 안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는 등의 피해를 경험한다”며 “피해자 보호와 추가 피해 방지를 위해 가해 행위를 효과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위는 또 성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준수사항에 ‘불법촬영물 소지·보관·시청 금지’ 조항을 추가하라고 권고했다. 법무부가 강간·강제추행·공중밀집장소 추행 등 각 죄명별로 재범률을 분석했더니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자의 재범률이 가장 높았다(<2020 성범죄백서>). 전문위는 “야간 시간대 외출 제한, 특정 장소 출입 금지 같은 기존의 준수사항만으로는 성범죄 재범 요인을 제거하기 어렵다”며 “온라인 활동에 대한 금지를 (보호관찰 준수사항에)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혐의 부인’ 윤석열 담화…법조계 “재범 위험, 신속 구속해야” 1.

‘혐의 부인’ 윤석열 담화…법조계 “재범 위험, 신속 구속해야”

윤석열 담화에 시민들 ‘충격과 분노’…“이번주 무조건 끝내야 한다” 2.

윤석열 담화에 시민들 ‘충격과 분노’…“이번주 무조건 끝내야 한다”

[단독] 도이치 주범 “주가조작은 권오수·김건희 등 합작품인 듯” 3.

[단독] 도이치 주범 “주가조작은 권오수·김건희 등 합작품인 듯”

저속노화 교수 “그분, 고위험 음주로 인지 저하…작은 반대에도 격분” 4.

저속노화 교수 “그분, 고위험 음주로 인지 저하…작은 반대에도 격분”

10명 중 9명 혈액에 미세플라스틱 검출…1㎖당 4.2개 5.

10명 중 9명 혈액에 미세플라스틱 검출…1㎖당 4.2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