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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0년째 식물인간’ 동생과 사는, 말 못하는 불안이죠

등록 2022-01-22 11:17수정 2022-01-22 12:50

[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_ 건강염려증

생명만 유지하는 동생을 둔 민식씨
‘나도 저렇게?’ 공포가 염려병으로
부모님도 말못할 불안·불면 시달려
심리치료 통해 현실과 맞닥뜨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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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씨는 35살 남성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족이지만 이들에게는 무거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민식씨의 동생인 민우씨가 10년째 음식을 넣는 콧줄과 가래를 빨아내는 흡입기에 의존하며 집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10년 전 당시 대학생이던 민우씨는 갑작스러운 40도의 고열과 의식 소실로 응급실을 통해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원인 불명의 뇌염으로 진단되었고 뇌의 절반이 손상되어 ‘식물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식물인간이란 대뇌의 손상으로 의식과 운동 기능은 상실되었으나 나머지 신체 기능은 유지하고 있는 환자를 의미합니다. 민우씨는 목에 구멍을 뚫어서 응급 호흡을 유지해 겨우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신체는 건강했기에 그날 이후로 집 안 침대에 누워서 눈만 껌뻑이는 삶을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불안이 높아 올라간 혈압

민식씨는 오랜 시간 동생을 간병하느라 지친 부모님을 보면 항상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생이 살아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불쑥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의 건강했던 사진을 보면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지고 집에만 들어오면 무거운 한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동생의 간병비와 치료비는 부모님이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상태라서 이제는 민식씨도 일부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민식씨는 부모님에게 이제는 동생을 요양병원으로 보내자고 설득해 보았지만 부모님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민식씨는 가끔 어머니가 바쁠 때 동생의 코에 있는 줄로 약을 넣어주거나 ‘석션’이라고 불리는 가래 제거기로 목을 청소해주기도 합니다. 어쩌다 동생과 눈을 마주치면 동생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웃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치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목에 자극을 주어 반응하는 것인데 민식씨는 무척 놀랐습니다. 밤에 침대에 누워 있는 민우씨를 보면 갑자기 일어나 방 밖으로 걸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식씨는 밤에는 민우씨 방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졌습니다.

민식씨는 며칠 전 야근을 한 뒤부터 이유 없이 열감이 생겼습니다. 체온을 재보면 높지 않은데 오한이 느껴졌습니다. 밤이 되자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심한 두통이 생겼습니다. 이유 없이 불안해지고 자신이 큰 병에 걸린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검사에서도 음성이 나왔지만 혹시 큰 병이 있는데 발견을 못 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여러 의원을 방문해서 이곳저곳 검사를 해봐도 병원마다 몸에는 큰 문제는 없지만 혈압이 높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민식씨는 혈압이 160/120으로 올라가고 심박수도 두배나 증가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행히 부정맥은 없었지만 고혈압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민식씨가 불안이 너무 높아서 혈압과 심박수가 올라간 것이 아닐까 하는 소견으로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연결해주었습니다.

민식씨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 결과 우울, 불안이 높은 상태이며, ‘건강염려증’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건강염려증이란 사소한 신체적 증세 또는 감각을 심각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고 확신하거나 두려워하고, 여기에 몰두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오랫동안 침대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민우씨를 보며 자신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건강염려증을 만들었습니다. 민식씨뿐 아니라 부모님도 불면증과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민식씨 가족은 민우씨가 처음 병으로 응급실에 가던 그날에 시계가 멈추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고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볼 수도 없었습니다. ‘포기’라는 말은 입 밖으로 차마 꺼낼 수 없는 단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가능성 없는 희망을 붙든다는 것

가족 중에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자신도 그 병에 유전적인 소인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환은 유전적 요인 말고도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예를 들어, 민우씨가 뇌염으로 사지마비가 왔기 때문에 민식씨 또한 뇌염에 걸려 사지마비가 올 위험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민식씨가 자신이 질병에 걸릴 위험을 과도하게 불안해하면 일상적으로 흔히 경험하는 두통, 열감 등도 심각한 병의 초기 증상으로 지나친 걱정을 할 수 있습니다.

민식씨의 부모님은 회복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비현실적인 면이 있습니다. 민우씨의 현재 상태는 뇌손상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의 회복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이 너무 과도하면 다른 가족들을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회복할 수 없는 병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희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가족이 병의 경과와 예후에 대해서 정확히 공유하고 같은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울과 불안이 심하면 현실감이 떨어지고 불안, 초조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당장 회복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치료에 휘둘리게 되고 경제적인 손해를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불안, 초조로 약해진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비과학적인 치료 방법을 경계해야 합니다.

민식씨는 심리치료를 통해 처음으로 가족들과 자신의 오랜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누구도 차마 입을 열지 못했지만 이제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온 가족을 힘들게 만든 것은 간병 자체보다도 비현실적인 회복에 대한 믿음과 자신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__________
전홍진 |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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