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공짜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한국에서 넷플릭스가 기대했던 것보다 화제성이 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지 2년이 지난 2018년.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 본부가 있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리드 헤이스팅스 창립자 겸 대표와 테드 서랜도스 콘텐츠최고책임자는 한국 기자들의 도발적인 질문에 의아해하며 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가입자 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반응은 좋다.”
이들의 대답과 달리 실제 한국에 초기 오티티 시장이 열렸을 때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넷플릭스는 2015년 9월 일본에 이어 2016년 1월7일부터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총매출은 2016년 9조9212억원에서 2017년 13조1355억원으로 뛰었지만, 한국에서는 고전을 거듭했다. 2017년 3월 기준으로 국내 넷플릭스 유료사용자는 6만~8만명 정도. 한국은 케이블방송 가입비가 저렴해, 외국처럼 비싼 케이블방송을 끊고 그에 견줘 저렴하다는 넷플릭스로 갈아타는 ‘코드커팅’(cord-cutting·유료방송 해지)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국내 첫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으로 가입자를 모았다. 넷플릭스 제공
<옥자>가 쏜 신호탄, <오징어 게임>으로 이어져
넷플릭스가 단순 고객 확대 전략을 바꿔 오리지널 한국 콘텐츠 제작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게 이즈음부터다. 2017년 6월, 제작비 582억원을 투입해 만든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영화관 대신 넷플릭스에서 독점공개되면서, 한바탕 화제와 논란이 일었다. 한국형 오리지널 콘텐츠를 활용한 도전은 대성공이었다. <옥자> 오픈 2주 만에 넷플릭스는 가입자 30만500여명을 끌어모았다.
바통을 이은 게 첫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이다. 이 드라마가 공개된 뒤 넷플릭스 국내 가입자는 이전 127만명(2018년 12월)에서 한달여 만에 200만명(2019년 1월)을 돌파했다. <킹덤>은 넷플릭스가 현재 세계 1위 오티티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시기에 등장했다. 2018년 말 디즈니가 ‘디즈니플러스’로 오티티 진출을 선언한 뒤, “넷플릭스에서 모든 디즈니 콘텐츠를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디즈니는 그동안 인수했던 픽사, 마블코믹스, 루커스필름, 21세기 폭스 등의 콘텐츠들을 기반으로 오티티 시장에 뛰어들었다. 초거대 콘텐츠 기업을 경쟁자로 맞아들인데다, 디즈니 콘텐츠마저 모두 잃게 된 넷플릭스로선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맞서 넷플릭스는 시선을 끌 만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주력했다. 때마침 한국에서 등장한 게 <킹덤>이었다. 국내 한 제작사 관계자는 “그즈음 넷플릭스는 아시아, 특히 한국에 공격적인 투자를 했고, <킹덤>이 한국,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의 관심을 끌면서 넷플릭스의 체면을 세웠다”며 “<킹덤>의 성공은 넷플릭스가 이후 오리지널 콘텐츠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이쪽에 투자를 대폭 확대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제시카 리 넷플릭스 아태지역 부사장은 <킹덤>을 두고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시리즈를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킹덤>이 한국형 오리지널 콘텐츠의 존재감을 알렸다면, <오징어 게임>(2021)은 전세계에 한국 콘텐츠의 힘을 증명했다.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 드라마는 전세계 83개국에서 최소 한차례 이상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를 차지했고, 시청자 수만 1억4천여만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2분기 넷플릭스 신규 가입자는 5년 만에 가장 적은 154만명. 한동안 “넷플릭스도 볼 게 없다”는 말이 떠돌았다. 주춤하던 넷플릭스를 단숨에 끌어올린 게 <오징어 게임>이다.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20여일 뒤 넷플릭스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0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배우 오영수(일남 역)가 한국 최초로 남우조연상도 받았다. 미국 경제전문지 <블룸버그>는 “한국 콘텐츠가 할리우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옥자>가 신호탄을 쏘고 <킹덤>을 경유한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의 힘이 <오징어 게임> <솔로지옥> 등으로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프로그램으로 등극한 이후 애플, 디즈니 등 최근 한국에서 오티티 서비스를 시작한 경쟁업체들도 한국 콘텐츠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웨이브는 오티티 전용 오리지널 시리즈 <…청와대로 간다>로 인지도를 높였다. 웨이브 제공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가 글로벌 오티티 시장에서 주목받는 상황에서, 한국이 글로벌 오티티 대전의 격전장이 되고 있다는 건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현재 국내에 오티티 업체만 무려 10여개가 총력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업체 가운데는 넷플릭스 후발 주자로 지난해 디즈니플러스, 애플티브이플러스 등이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고, 올해는 에이치비오(HBO) 나우도 들어올 예정이다. 애플티브이플러스는 영화 <기생충>으로 외국에서도 알려진 이선균이 출연한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 <닥터 브레인>을 첫 작품으로 내세웠다. 후속작은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은 윤여정과 이민호가 주연한 <파친코>다. 디즈니플러스는 제작비 500억원을 들여 만화가 강풀 원작의 초능력 시리즈 <무빙>을 준비하고 있다. <무빙>을 앞세워 넷플릭스와 ‘진짜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글로벌 오티티에 맞서 웨이브, 티빙, 왓챠 등 기존 토종 오티티와 함께 쿠팡플레이, 카카오티브이 등 신규 진입한 업체들도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토종 오티티들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이 끝난 한국 콘텐츠의 위력을 앞세워 자체 제작에 나서고 있다.
티빙은 2023년까지 4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올 한해 오리지널 콘텐츠만 30편을 제작한다. 쿠팡플레이도 오래전 <티브이엔>에서 방영한 <에스엔엘(SNL) 코리아>를 선보인 뒤 국내 오리지널 드라마 <어느 날>로 주목도를 높였다. 지상파 3사가 판을 키운 웨이브, 씨제이와 <제이티비시>(JTBC)가 손잡은 티빙, 국내 첫 오티티 왓챠 등도 채널을 각인시키는 방법으로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를 앞세우고 있다. 주로 티브이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창구로 활용했던 티빙은 지난해부터 자체 제작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2021년만 드라마 6편, 예능 12편, 영화 등을 포함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총 24편 선보였다. 실제 티빙 쪽은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선보인 후 유료가입자는 256% 증가했다”며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가 티빙의 고성장을 견인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6월 시작된 예능 <환승연애>가 공개부터 11월까지 총 12억분 넘는 시청 시간을 기록했고, 10월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은 한달 동안 4억분이 넘는 시간을 시청했다”고 한다. 웨이브 역시 인지도가 급상승하게 된 것은 오히려 오티티에서만 선보인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가 화제를 모으면서다. 주인공으로 출연한 김성령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촬영을 할 때는 주변에서 웨이브라는 플랫폼을 모르더라. 방영이 되면서 인기를 끌고 나서는 잘 알게 됐다”며 “콘텐츠 반응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웹드라마로 ‘우리끼리’ 시작해 국내 오티티 왓챠의 대표 상품이 된 <좋좋소>. 왓챠 제공
사실, 규모는 작지만 아이디어 하나로 오티티 시장을 파고 든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좋좋소>(좋소좋소기업)가 있었다. 콘텐츠 제공에 집중했던 왓챠는 1~2년 전 처음으로 드라마 공모전을 하는 등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시작했다. 총 600여편이 응모했고 대상작 <공단>의 제작을 추진 중이다. 배우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이 연출한 옴니버스식 드라마 <언프레임드>도 공개했다. 그러나 왓챠의 명성을 높여준 콘텐츠는 오는 18일 네번째 시즌을 방영하는 <좋좋소>다. <좋좋소>는 2021년 1월6일부터 유튜버 ‘이과장’ 채널에 올라온 웹드라마가 회당 조회수 100만건을 웃돌며 화제를 모았다. 아이디어 하나로 인기를 끌 수 있는 시대를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이다. 왓챠는 창의력 있는 좋은 콘텐츠를 키우려는 의미로 시즌2부터 <좋좋소>에 제작 지원을 했고, 시즌4부터는 아예 투자 및 제작을 도맡았다. 왓챠 쪽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창작자들이 더 커나갈 수 있게 돕고 싶다”며 “외국 오티티의 국내 시장 진출 및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됨에 따라, 왓챠만의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1 지난해 12월 타이 방콕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 복장을 한 시민들이 한국 전통놀이 줄다리기 체험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국내 콘텐츠들이 글로벌 오티티 시장에서 몸값을 높이면서, ‘헐값’ 취급돼온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가 제값을 받을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 보도를 보면, 넷플릭스에 막대한 이익을 안긴 <오징어 게임> 제작비가 200억원가량인데, 넷플릭스의 또 다른 대표작들인 <기묘한 이야기>와 <더 크라운> 제작에는 각각 회당 94억880만원과 117억원을 투입했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해 방영 이후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을 무려 12조원이나 끌어올렸다. 한마디로 한국은 가성비 좋은 나라로, 아무리 잘 만들어 성공을 해도 초반에 정해진 제작비 이상의 금액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러 의견이 나온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한국 콘텐츠를 글로벌 오티티에 공급하기 시작하던 때부터 지적됐던 문제다. 예전 예능프로그램 피디들이 중국에 돈을 받고 노하우만 다 넘겨주고 한한령을 핑계로 다 잘린 것과 다를 바 없다. 일은 우리가 하고, 돈은 넷플릭스가 번다. 왜 여기에 아무도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느냐”고 말했다.
디즈니플러스, 애플티브이플러스 등 글로벌 오티티가 쏟아지듯 들어오고, 들어올 예정이되면서 콘텐츠 제작사가 플랫폼 업체보다 우위에 서는 역전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한 방송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외국 진출을 하려면 까다로운 여러 절차와 검증을 거쳐야 했는데, <오징어 게임>에서 보듯 좋은 콘텐츠 하나를 만든 것으로 전세계에 제작 역량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한국 콘텐츠들의 제작 역량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이 끝났다고 보고, 이제는 우리가 오티티 플랫폼을 고를 수 있는 지점까지 왔다. 한때 넷플릭스 좋은 일을 시켰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걸 발판으로 역량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할리우드에 진출하려고 직접 미국에 건너가 배우 오디션이나, 제작사 협상 등의 논의 과정 등 중간 단계는 사라지고 넷플릭스로 인해 <오징어 게임>처럼 드라마 한편으로 ‘월드 스타’가 되고, 감독 등 제작진, 한국 제작사의 위상이 단번에 높아지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제작비의 39배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진다. 넷플릭스 제공
국내외 오티티들이 한국형 오리지털 콘텐츠 확보를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참신한 콘텐츠 아이디어와 드라마 제작 역량이 필수지만, 아직까지는 현재 콘텐츠 산업에서 자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티빙의 <술꾼도시여자들>처럼 소규모 자본으로 시작한 드라마들도, 흥행에 성공하고 난 뒤 시즌2를 만들려면 배우나, 제작진 개런티가 2~3배 높아지는 등 바로 비용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오티티 관련 업체 핵심 관계자는 “오티티가 많아지면서 (자체 제작이 아닌) 국내외 콘텐츠를 수급하는 비용도 2~3년 전에 견줘 4~5배가 올랐다. 거기에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콘텐츠 확보를 위한 경쟁이 더 심화되면서 가파른 제작비 상승이 전체 시장의 성장보다 빨라질 경우, 오티티 시장이 침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무턱대고 글로벌 오티티에 맞서려고 파이만 키워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현재 국내에선 지상파 방송까지 티브이용 드라마 제작을 줄이는 대신, 그 돈으로 오티티 투자에 나설 준비를 하는 등 시장이 무한경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관계자는 “머니게임 형식이 아닌 새로운 콘텐츠 제작의 모델을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제작 현장에서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티티 시장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만큼,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새로운 콘텐츠 소재나 연출 기법 등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업계에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편수와 편당 제작비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오티티 업체뿐 아니라 콘텐츠를 제작하는 국내 제작사들도 수익 일부를 콘텐츠에 재투자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지속가능한 상생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인터뷰 예고] <오징어 게임> 이전 <좋좋소>가 있었다
한국 콘텐츠의 창의성을 보여준 프로그램 중에는 왓챠의 대표 콘텐츠 <좋좋소>가 있습니다. 2021년 1월 유튜브에서 선보였는데 1회 방영 2주 만에 조회수 100만회를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죠. 29살 조충범이 중소기업에 취업해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극 중 이 과장이 실제 중소기업을 다니면서 겪었던 내용을 담아 현실감이 99.99%. 취준생, 직장인의 공감을 얻었죠. 규모는 다르지만 <오징어 게임>이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에서 주목받은 것처럼, <좋좋소>도 아이디어 하나로 국내 토종 오티티를 사로잡은 것이죠. 오는 18일 시즌4부터는 왓챠가 제작을 도맡습니다. 이젠 모시기 어려운 분들이 ‘될’ <좋좋소> 식구들을 <한겨레>가 <단독>으로 만났습니다. 시즌4 첫방까지 기다리느라 손이 근질근질했습니다. 너무 어렵게 만난 분들이라, 너무 아쉬워서, 예고편을 내보냅니다. 다음주 <좋좋소> 팀과의 인터뷰를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