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극도로 높은 스트레스가 광장공포증, 공황발작을 일으킨 뒤 공황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영씨는 40대 워킹맘으로 두 아들의 엄마입니다. 그런데 3개월 전 회의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다가 갑자기 심하게 어지러워 똑바로 서 있기 힘든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지영씨는 더 이상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자리로 돌아가 앉아 쉬었더니 조금씩 어지러운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좀 괜찮아진 줄 알고 운전하며 퇴근하던 도중 도로가 막히자 갑자기 다시 심하게 어지러워지면서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급히 근처에 차를 세우고 조금 쉬었더니 다시 어지럼증이 가라앉았습니다. 그 뒤부터 조금만 피곤하거나 힘들면 안면 근육이 멍하고 둔한 느낌이 들면서 어지러운 증상이 생겼습니다.
건강검진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지영씨의 어지럼증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귀에 이상이 있을까 싶어 이비인후과에 가서 정밀 검사와 전정신경 검사를 받았지만 딱히 귀에서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지영씨는 의사에게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지영씨는 큰아들 영식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영식이가 친구들을 때려서 문제가 되었으니 피해자 부모들과 만나 합의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영식이가 평소에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영씨는 그간 아들이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담임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피해 학부모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선생님과의 전화를 끊은 뒤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남편은 원래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며 나 몰라라 했습니다. 지영씨는 영식이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데 문제가 될까봐 불안하고 초조해졌습니다. 밤에 자다가도 아들이 친구들을 때리는 것을 말리는 꿈에 시달렸습니다.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친구들이 자신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렸고, 사실 자신은 피해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다가 결국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지영씨는 피해자 부모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피해자 부모들은 지영씨에게 아들을 “깡패처럼 잘못 키웠다”고 삿대질하며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지영씨는 갑자기 심한 어지러움과 호흡곤란을 느끼며 얼굴이 창백해졌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으며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놀란 부모들은 지영씨를 흔들며 정신 좀 차려보라고 깨웠고, 지영씨는 10분 정도 뒤 정신이 들었지만 심한 어지럼증이 지속되어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진료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영씨에게 뇌 자기공명영상과 자기공명혈관조영술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귀나 뇌에는 문제가 없고 정신적인 문제로 인한 어지럼증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어지럼증이 계속되면 이비인후과를 방문해 진료를 받고 이석증이나 전정신경염 등의 질환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영씨처럼 귀나 전정기관, 뇌에 이상이 없는데도 어지럼증을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검사 결과 지영씨는 두 아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발표를 해야 할 때, 차가 막히는 도로나 터널에서 운전을 해야 할 때 특히 어지러움을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영씨처럼 사람들이 많은 곳이나 차가 막히는 도로에서 갑작스러운 심한 불안을 느끼는 것을 ‘광장공포증’이라고 합니다. 광장공포증은 급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있게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의미합니다. 피해자 부모들과 만났을 때 갑자기 심한 어지러움과 호흡곤란을 느끼면서 얼굴이 창백해진 것은 ‘공황발작’이라고 합니다. 공황발작이 반복되면 공황장애로 진단이 됩니다. 자식들로 인한 스트레스는 직장 내 스트레스와 함께 지영씨의 긴장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지영씨는 어지러움을 느낄 때 실제로 긴장이 증가하면서 심박 수가 빨라지고 손이 떨리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커피를 좋아해서 거의 물 대신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하루 10잔 이상 마시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간식으로 초콜릿도 자주 먹고 있었습니다. 가끔 카페인이 들어 있는 두통약을 복용해왔고 최근에는 감기에 걸려서 감기약도 복용했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에 너무 과도하게 카페인을 섭취하고 있었습니다. 커피를 하루에 한잔으로 줄이고 초콜릿과 카페인이 들어간 두통약을 끊기로 했습니다. 처음 며칠은 오히려 더 불안하고 초조하면서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자 괜찮아졌습니다.
코막힘을 완화시키기 위해 지영씨가 복용한 감기약의 ‘슈도에페드린’이라는 성분은 교감신경계에 작용하는데 긴장을 증가시켜 어지럼증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함께 들어 있는 ‘항히스타민’이라는 성분도 졸리고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어 다음번에는 슈도에페드린 성분이 없고 졸리지 않은 3세대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기로 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는 지영씨를 진료할 때 남편도 함께하게 했습니다. 지영씨가 어지럼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편의 도움이 매우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두 아들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때 남편이 맡아서 살펴주기로 했습니다. 다른 학부모들을 만날 때도 남편이 나서니 지영씨는 든든한 느낌이 들었고 어지럼증도 줄어들었습니다. 어지럼증이 심해질 경우에는 넘어져서 다치거나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몸이 힘들 때는 무리하게 일을 하지 않고 운전도 되도록이면 남편이 하도록 했습니다. 두 아들에게도 엄마가 왜 자꾸 어지러워지는지 설명해주고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도 진행했습니다. 남편 이야기는 자신도 어릴 때 학교에서 말썽을 많이 피웠지만 지금은 직장도 잘 다니고 괜찮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그렇게 대처하면 안 됩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아버지가 잘 교육해야 합니다.
지영씨의 가족은 이번 일을 계기로 서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지영씨의 어지럼증도 많이 좋아지고 다시 활기찬 워킹맘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홍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