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여의도 엘지(LG)트윈타워에서 열린 엘지화학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입장하기에 앞서 체온을 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물적분할 제도 손질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적분할 신설 회사가 증권시장에 상장할 때, 모회사 주주에게 우선청약권을 주는 방안을 일단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정치권은 이미 지난해 말 발표한 주식시장 제도 개선 방안에 물적분할 상장 시 주식배정 안을 포함시켰다. 가장 힘센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니 제도 수정 가능성은 이미 높아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상장사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단체가 최신 리포트(물적분할 뒤 동시상장 이슈와 시사점)를 통해 우선청약권 부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신중한 접근을 전제로 달았으나 신주인수권 부여 가능성도 대안으로 언급하였다. 이로써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물적분할 제도는 손질될 것이 확실해졌다.
“모회사 주주 피해” 논란 불구
엘지 배터리 비롯 분할 잇따라
몇년 전만 해도 필자가 기업공시 강의를 다닐 때면 기업분할을 설명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최근 경제 유튜브에 출연했더니, 진행자가 “모든 국민이 기업분할 전문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모든 국민’은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모든 주식투자자’로 바꾼다면 얼추 맞을 듯하다.
모든 주식투자자를 기업분할 전문가로 만든 시발점은 2020년 9월 엘지(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분할 공시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물적분할+상장’은 주주가치 훼손의 상징으로 낙인찍혔다.
기업에서 어떤 사업 부문을 떼내 새 회사를 만드는 것을 분할이라 한다. 분할은 떼낼 사업 부문에 속하는 자산과 부채를 결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엘지화학의 배터리 사업 분할회사(엘지에너지솔루션, 이하 엘지엔솔)는 자산과 부채를 넘겨받고 주식을 발행한다. 주식을 모두 엘지화학에 배정하여 두 회사가 100% 모자(母子) 관계를 형성하면 ‘물적분할’이 된다. 주식을 엘지화학 기존 주주들에게 지분율대로 배정하면 ‘인적분할’이다.
물적분할은 원래 기업이 구조조정이나 사업재편을 위해 많이 활용하는 수단이었다. 해태제과는 2020년 1월 아이스크림 사업을 물적분할했다. 아이스크림 사업 적자 지속으로 전사 재무구조가 악화하자 분할 매각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빙그레가 해태아이스크림 지분 100%를 인수했다. 지분양수도로 간편하게 부실 사업 부문을 정리한 셈이다.
엘지유플러스는 회사 비핵심인 전자결제 사업을 물적분할하여 토스에 매각했다. 건설 업체 아이에스(IS)동서는 폐기물 처리 사업을 미래 주력으로 키우기 위해 요업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했다. 사모펀드에 매각한 자금으로 폐기물 업체를 인수했다.
물적분할은 한편으로 합작회사를 만들기에 요긴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에스케이씨(SKC)가 화학 사업을 물적분할한 뒤 지분 49%를 쿠웨이트 피아이시(PIC)에 매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적분할 회사는 ‘SKCPIC’라는 사명으로 51 대 49 합작사가 되었다.
사실 에스케이씨의 이러한 조치는 동박 사업 진출 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피아이시로부터 받은 5600억원은 에스케이씨가 글로벌 사모펀드로부터 동박 업체를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이 회사가 지금의 에스케이넥실리스다.
물적분할 합작 사례는 드물지 않다. 엘지전자는 지난해 전장 사업 일부를 물적분할하여 100% 자회사를 신설했다. 이 가운데 49%를 글로벌 자동차 부품 업체인 캐나다 마그나에 매각했다. 이렇게 출범한 합작법인이 엘지마그나이(e)파워트레인이다. 글로벌 기업과의 합작으로 전장 사업을 더 키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물적분할이었다.
물적분할과 함께 신설 자회사의 증권시장 상장 계획을 동시에 밝힌 것은 아마 엘지화학이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엘지화학 시가총액에서 배터리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시장에서는 약 70~80%로 평가했다. 당연히 배터리 사업에 대한 기대로 엘지화학에 투자한 주주들이 많았다. 주주 입장에서는 물적분할 때문에 배터리 사업(엘지엔솔)을 간접지배하게 되었으니 상실감이 컸다.
엘지엔솔은 이달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신주 발행으로 약 10조원을 조달한다. 엘지화학과 주주들의 지배력은 그만큼 희석된다. 엘지화학 주주들이 엘지엔솔 주식을 직접 가지기 위해서는 다른 신규 투자자들처럼 공모에 참여하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이렇게 모회사가 상장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회사까지 상장하면, 모자 동시상장에 따른 모회사 디스카운트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엘지화학 쪽은 엘지엔솔이 상장되어 시가총액이 올라가면 엘지화학의 가치도 상승할 것이고, 이는 엘지화학 주주가치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자회사 가치 상승이 모회사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에스케이케미칼이 많이 거론된다.
에스케이케미칼은 백신사업부를 물적분할하여 에스케이바이오사이언스를 설립한 뒤 증시에 상장하였다. 에스케이바이오사이언스 시총이 20조원을 넘어설 때도 지분 68%를 가진 에스케이케미칼의 시총은 4조원 안팎에 머물렀다. 20조원의 68%면 단순계산으로 13조6000억원이다. 여기서 70%를 할인하여도 4조원 수준이다. 에스케이케미칼 자체 영업가치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자회사 지분가치를 무려 70%나 할인하였을 때의 시총에 해당한다. 이 정도면 자회사 지분가치가 모회사에 거의 반영되지 않은 수준이라고 하여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에스케이케미칼에 투자한 싱가포르 헤지펀드는 차라리 에스케이바이오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팔아 주주들에게 배당하라고 요구한다.
기존 주주 우선청약권 등 제안
말 많던 물적분할제 손질될 듯
그래서 주주들은 물적분할에 그치지 않고 상장으로까지 나아갈 경우 주주가치가 크게 훼손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와중에 만도, 씨제이이엔엠(CJENM), 엔에이치엔(NHN) 등이 잇달아 물적분할에 나서자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결국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제도 개선안을 들고나오기에 이르렀다. 여야 정치권의 개선안을 에스케이온(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 회사)에 적용해보자.
에스케이온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 공모 과정에서 기존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주주들에게 공모주 청약우선권이나 공모신주인수권을 부여한다. 청약우선권은 말 그대로 먼저 청약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는 것이다. 청약을 포기하면 그로써 그만이다. 신주인수권증서 부여는 좀 다르다. 청약을 포기하더라도 다른 청약 희망자에게 이 증서를 매각할 수 있다. 상장회사협의회의 제안은 우리사주조합에 공모주식을 우선배정하는 현행 기업공개 방식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신주인수권증권 발행분배도 언급하였으나 적극적인 입장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fnt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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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제전문 미디어 ‘글로벌모니터’ 대표.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