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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부동산 ‘불장’ 3년,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아파트 주인이 됐다

등록 2021-12-31 04:59수정 2021-12-31 22:02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⑨] 10살 집주인들
“부자들은 돈이 안된다고 비웃을 수 있지만…”
부동산 불장 3년, 중하위 계층으로 번진 ‘갭투자’
문산아파트 376세대 전수조사…10대 집주인 10명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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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탐사기획팀은 언론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취업해 서민들을 자극해 땅을 사라 노골적으로 떠미는 부동산 기획의 세계를 밀착 보도했다. 잘 드러나지 않는 기획의 세계도 있다. 1천만~2천만원만으로 갭투자 아파트를 사도록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이 올해 많았다. 부자들은 돈 안 된다 비웃어도 처지에 맞게 투자하라는 안내는 적어도 어떤 중하위 계층에겐 복음이고 믿음이었다. 그들을 만났다. 2022년에도 희망은 희망일 수 있을까.

“서울에 어마어마한 집들 투기한 사람도 많은데, 나는 파주 끝자락 문산에 돈 천만원 주고 겨우 집을 샀는데… 왜 취재를 하는 거죠?”

지난 11월 말, 서울 마포구 한 다세대주택 앞에서 만난 양회승(가명·40대)씨는 말끝을 흐렸다. 양씨는 2012년생, 2016년생 4살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운다. ‘문산에 돈 천만원 주고 집을 산 사람’이란 그의 말은 절반만 사실이다. 갭투자로 1천만원 남짓을 주고 아파트를 산 것은 맞다. 하지만 명의상 집을 산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의 아이들이다.

채 10살도 안 된 양씨의 아이들은 파주 아파트의 ‘집주인’들이다. 게다가 다주택자다. 양씨는 올 5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당동리의 ○○아파트 10층과 11층을 각각 아이들 이름으로 샀다. 9월에는 그 아파트에서 3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아파트 5층을 나란히 또 갭투자 방식으로 샀다. 총 4채의 아파트를 사는 데 5천여만원을 긁어 썼다.

‘미성년자 자녀가 있으시면 선물하기 좋은 아파트입니다’. 가입자가 176만명에 이르는 한 인터넷 부동산 투자 카페에 게시된 글 제목이다. 부동산 세제 개편을 앞두고 있던 올 초부터 갑자기 늘기 시작한 유형의 부동산 호객이었다. 지난 9월에 올려진 글은 지난달까지만도 조회수가 3만여회에 달한다. 자세한 문의를 원한다는 댓글도 160개 달렸다. 이 글뿐만 아니다. 다른 부동산 카페에도 ‘미성년 아파트’, ‘미성년 증여’, ‘미성년 투자 유망’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관련 게시글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문재인 정부 내내 부동산 ‘불장’이 이어졌고, 정부는 분기마다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은 진정되지 않았다. 자산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사이 중하위 자산계층을 특히 자극할 만한 투자 방법이 시장에서 나돌기 시작했다. 2015년 개정된 증여세 면제 한도(미성년 자녀 2천만원, 성년 5천만원)가 여력이 되는 이들의 ‘갭투자’ 전략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다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며 기저층으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증여세 면제 한도 내에서 자녀 명의로 수도권 저평가 아파트나 서울 구옥 빌라에 ‘갭투자’하는 양태가 더해지기까지 부동산 기획자들의 움직임 또한 기민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한겨레>가 확인한 부동산 투자 카페 게시글은 가격대별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서울 구로구(6억대, 캡투자 1억원 안팎), 경기 남양주시(3억대, 캡투자 5천만원 안팎), 파주시(1억 중반, 갭투자 2천만원 안팎), 강원도 양양(1억 이하, 단기임대 가능)까지 4개 아파트 단지를 “미성년 자녀 선물 아파트”라고 소개하며 이 가운데 파주 당동 아파트를 특히 미성년이 등기하기 좋은 아파트라고 소개한다.  ‘1:1 채팅’으로 직접 문의도 가능하다며 “필요하다면 법률 상담도 무료로 제공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곤 방점을 찍는다.

“부자들은 돈이 안 된다고 비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없는 이들은 1, 2천만원의 수익도 절실합니다. 부자들이 말하는 상급지도 좋지만 돈 상황에 맞는 투자도 필요한 때입니다.”

게시글 작성자는 소개한 아파트 가운데 한 곳을 본인도 직접 초등학생 자녀 명의로 샀다고 밝혔다.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크지 않아 1천만원 남짓의 갭투자로 구매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증여세는 200만원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향후 “정말 장점이 많아 시간이 지나면 (아파트 가치가) 천지개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한겨레> 기자가 취업한 데를 포함해, 호재와 미래 가치를 강조하며 “돈 없는 사람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하려고 쪼개서 파는 것”이라거나 “너무 좋은 땅이라 내 가족도 이미 샀다”며 욕망을 자극하고 고객을 유인하는, 숱한 기획부동산의 흔한 영업방식과 유사하다.

부동산 투자 카페 등에서 ‘미성년자 자녀 선물 아파트’로 소개된 아파트 가운데 하나인 파주 문산 당동리 ○○아파트를 진짜 구매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한겨레>가 이 아파트 376가구의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한 결과,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10대 이하(0~19살)는 양회승씨의 아이들을 포함해 모두 10명이었다. 이 어린 집주인들의 실거주지는 서울 양천·구로구, 용인 수지구, 충남 논산시 등 다양했는데 이 가운데 6건이 2021년 5~8월 사이에 집중 거래됐다. 보이지 않은 기획의 손짓들이 이어지던 때다. 때마침 정부는 7·10 부동산대책을 시행하며 1억원 미만 매입 주택은 취득, 양도, 종부세 중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주택 수 산정에서도 빼고, 비조정대상지역의 경우 양도세 중과도 면제했다. 결국 정부가 바란 서민주거안정은 서민 투자, 서민 투기로도 연결됐다. 파주 문산 당동리 ○○아파트에서 가장 어린 집주인은 양씨의 5살 둘째아이로, 전체 10명 가운데 8명이 10살 미만의 어린이였다.

양씨는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와 구로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서 20년 이상 일했다. 서울에 살며 “내 집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그는 지금도 마포 소재의 다가구주택에 전세로 산다. 양씨는 왜 본인 이름이 아닌 아이 이름으로 파주에 집을 산 것일까. 같은 갭투자로 그나마 더 가깝고 ‘부동산 불패’라 얘기되는 서울권에서 단 한 채라도 모색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양씨는 고개부터 저었다. “집값이 너무 올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양씨는 “서울에서는 도저히 집을 살 수가 없다”며 “아이들 태어나고 2년 반 동안 겨울이면 씻길 때마다 입김이 나오는 집에 살았다. 지금 신촌, 마포 아파트들이 15억, 20억씩 간다. ‘넘사벽’이다. 나는 못 산다. 우리 부부는 바둥거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아이들은 나랑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 마음으로 돈 천만원씩 겨우 들여 파주 끝자락 문산에 아파트를 산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 지역에서 주목을 받았던 운정새도시. 2012년 파주운정새도시 공사현장으로, 2015년 들어 광주 태전지구, 수원 권선동 등과 함께 그해 상반기 수도권 청약시장 기상도를 결정짓는 ‘빅4’로 꼽히곤 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경기도 파주 지역에서 주목을 받았던 운정새도시. 2012년 파주운정새도시 공사현장으로, 2015년 들어 광주 태전지구, 수원 권선동 등과 함께 그해 상반기 수도권 청약시장 기상도를 결정짓는 ‘빅4’로 꼽히곤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부동산 투기 생태는 비교적 일관된 흐름을 보인다. 상위 20%들이 주목하는 강남 재건축에서 땅값은 꿈틀대기 시작한다. 언론이 주목하고 흐름은 강남 전체, 이윽고 서울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부동산 문제로 온 사회가 떠들썩해지고, 정부가 투기지구를 지정한다, 규제를 강화한다 나서지만 보통 늦었다. 이미 수도권 전역에서 아파트값이 들썩인다. 정부가 강경책을 추가하면 투기지구 지정이 안 된 수도권 경계지로까지 투기 심리가 모여든다. 풍선처럼, 속절없이 번져가는 먹물처럼, 땅이 부풀어 오르고 생존과 투기의 욕망에 물들어간다. 개발 전망이 불투명한 지역조차 들끓고 만다. 중상위층만 움직인 탓은 아니다. 파주 지역 부동산중개업자는 “부동산 ‘불장’이 이어지며, 소득 계층을 가리지 않고 아파트 투자가 확산됐다. 비과세 증여를 통해 공시지가 1억 이하의 주택을 사주는 투자가 늘었다. 올해 들어 나타난 특이한 현상인데, 이런 주택들의 특징은 장기 보유 시 가격 상승을 노려볼 만하단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액의 갭투자라도 할 수 있는 이들을 자극해 ‘부동산은 어디든 승리한다’는 믿음을 주입해주는 이들은 대놓고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기획부동산이 더 개인화하고 진화한 형태이기도 하다. 소득 기준으로만 보면, 언제 실현될지 모를 ‘미래 이익’을 목적으로 ‘오늘’ 부동산에 투자하는 덴 더 많은 논리와 설득이 요구되지만, 이 세계에선 그렇지 않다. ‘장기적인 호재가 있는데 아직 가격은 저렴하다’ 같은, 시장 질서에서 공존하기 힘든 조건을 섞어 사람의 마음을 부추긴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거나 논의가 진행 중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계획이 단골처럼 강조되고, 인근에 조성된 배후도시와의 직선거리 같은 숫자들이 또 다른 스펙이 된다. 이들의 유인에 따라, 저소득층이 끝물에 오를 때 바로 부동산 투기의 한 주기가 마무리되고, 즈음해 서울의 부동산값은 떨어지기도 한다.

케이비(KB)국민은행 주택매매가격 월간 시계열 통계를 살펴보면, 경기도 아파트값의 올해 누적 상승률은 10월까지 26.48%를 기록했다. 이미 지난해 연간 상승률 13.21%의 갑절을 뛰어넘었다. 지역별로 보면, 오산이 44.43%로 가장 높았고 이어 시흥 39.66%, 동두천 37.77%, 의왕 33.36%, 의정부 32.33%를 기록했다. 상위 5개 지역에 갑자기 인구가 늘진 않았다. 서울로 출퇴근하기엔 꽤 먼 지역들이다. 공통점은 아직 비조정대상지역인 수도권 끝자락들이란 점이다. 의정부 지역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실수요자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구축 아파트에 대한 갭투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이 부류에조차 양씨의 동네는 아직 포함되지 않고 있고, 2002년 이후 최대폭으로 상승했다는 2021년 전국 아파트값은 당장 서울에서 내림세로 돌아선 구역들이 이달부터 생겨나고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양씨는 “아이들 이름으로 아파트를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 정부 탓”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돈 없는 사람들은 집 사려고 해도 대출을 다 막아놓고, 몇 년 전에 8억 주고 산 아파트는 15억, 20억을 만들어서 서민들은 하늘만 쳐다보게 됐다”는 것이다. 옆에서 듣던 양씨의 부인은 “돈이 없어서 몇억원으로는 못 하지만 2천만원 이하 투자면 할 수 있는 건 하는 게, 행여 잃더라도 경험치가 쌓이니 안 하는 것보단 낫다는 마음으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씨만의 선택일 리는 없다. 2019년 332건이었던 10대 이하 주택 구입 건수는 2020년 728건으로 늘었고, 자료가 집계된 올해 8월 기준으로는 이미 지난해보다 많은 946건을 기록(올 국정감사 공개자료,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했다. 물론 이 중 갭이 적은 아파트를 자녀 명의로 ‘저렴하게’ 증여한 경우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파주 문산의 한 공인중개사가 들려준 얘긴 이렇다.

“(올 초) 보유세 강화 얘기가 나오고 나서 올해는 이상할 정도로 (이 동네에서) 어린이 명의로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올해 이런 거래만 10건 가까이 했다.”

어린 집주인들의 아파트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한겨레>가 전수조사를 진행한 파주 문산 당동리 ○○아파트의 경우 주로 노인들이 세를 살고 있었다. 세입자들은 한결같이 취재를 거부하거나 말을 아꼈다. 한 노인 세입자는 “일없다”며 “‘얼라집’에 사는 게 뭔 자랑이겠냐”고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어렵게 통화가 닿은 또 다른 노인 세입자 쪽은 “문제가 없다고 해서 계약은 했지만 솔직히 불안했다”며 “사는 게 가능했으니까 샀겠지만, 문산에 어린이 명의로 집을 산 것을 보면 돈 많은 사람도 아닐 텐데 이렇게도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파악한 결과, 이곳에 노인 세입자들이 많은 이유는, 출퇴근 지장 없이 실거주하는 대신 무주택자로 수당 등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곳의 집값이 오르면 역으로 이러한 수요자들에게도 매력이 줄게 된다. 오히려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단 얘기다. 어떻게 될까. 일단 문산 지역은 지난 수년 동안 시세변동이 크지 않았다.

아이 이름으로 부동산 갭투자를 시작한 양씨는 올해 본격적인 ‘매물 사냥’에 나서며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었다. 하루에 몇번씩 부동산 투자 카페에 드나들며 투자 정보를 구한다. 파주 문산 당동리 아파트를 아이들 이름으로 사고 “괜찮은 방식”인 것 같아 지인에게 추천하고 있다고도 했다. 20년 넘게 회사에서 일했던 양씨는 이제 직접 이름 없는 부동산 기획자로 거듭나는 중이다. 아이 이름으로 갭투자를 계속할 계획인지 물었다. 양씨는 확신해 말했다.

“공급이 확 풀리려면 10년이 흘러갈 텐데, 그땐 우리 아이들에게 답이 있을까요? 가만있으면 바보 되는 것 아니에요?”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끊어지고, 노동소득으로 자산소득을 쫓을 수 없는 사회. 중하위 계층에겐 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들이 차라리 오늘만큼은 희망을 주는 이들인지도 모른다.

김완 장필수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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