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국가 상대 80억원 청구 손해배상 소송 기자회견의 모습. 한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1970∼80년대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건으로 꼽히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30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5월 피해자 13명이 낸 소송에 이어 두 번째다. 형제복지원 관련 손해배상 소송 중 최대 규모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정지원 변호사는 28일 보도자료를 내어 “이동진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회장을 포함해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30명이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 132억원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할 예정인데, 피해자들이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개인별 1년치 위자료(6천만원)의 총합인 18억원을 먼저 청구하고, 앞으로 청구액수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날 제기한 소송 말고도 지난 5월 형제복지원 피해자 13명이 낸 국가배상 소송도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앞선 소송에서 법원은 25억원의 보상안을 제시했는데 법무부가 이 조정안에 이의를 제기해 조정이 결렬됐다. 정 변호사는 “강제조정이 국가의 이의신청으로 무참히 결렬되는 모습을 보고 더는 국가의 자발적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피해자 중에는 일곱 살 때 동네에서 놀다가 친형과 함께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됐는데, 복지원쪽이 아이들을 찾으러 온 아버지까지 강제수용해 일가족의 삶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경우도 있다. 피해자들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살아남았으나, 정부의 무관심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여전히 형제복지원에 감금된 것과 같은 고통 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 30명 말고도 손해배상 청구를 원하는 피해자가 다수 있다. 입소 자료를 확보한 피해자들이 모이면 곧 추가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진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 동안 고아, 장애인 등 시민 3천여명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 학대, 성폭행 등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55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1호 사건으로 접수해 진상규명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이날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30명 상당수는 고령인 데다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이들도 있다. 앞으로 몇해가 걸릴지 모르는 진실 규명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정 변호사의 설명이다.
검찰은 1987년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업무상 횡령·특수감금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4월 위헌적인 내무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은 불법 감금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사건 재조사를 권고했다.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박 원장 무죄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비상상고 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3월 이를 기각했다. 비상상고는 형사사건 판결이 확정된 뒤 법령 위반이 발견될 경우,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다시 재판해달라고 신청하는 구제 절차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