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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러시아 팽창전략의 부활, 체스판 한복판에 우크라이나

등록 2021-12-19 10:52수정 2021-12-19 10:58

[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
러시아의 힘, 어디까지 뻗치나

러시아 팽창 전략은 ‘안보 방벽용’
우크라이나가 러 부활 열쇠 구실
실제적으로 러 세력권 안에 있어
서방 무력대응 현실적으로 어려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지난 12일 우크라이나군 탱크가 러시아 접경 루간스크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지난 12일 우크라이나군 탱크가 러시아 접경 루간스크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겨냥해 병력을 구축하며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는 소련의 붕괴 이후 ‘세력권’ 문제 때문이다. 30년 전인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그중 한 공화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독립했으나,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독립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간주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세력권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당시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 하자, 미국은 소련과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위기가 고조됐다. 미주 대륙, 특히 쿠바가 있는 카리브해는 미국에게는 안보에서 사활적인 세력권이어서 ‘독립국가’인 쿠바에 대한 소련의 미사일 배치를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소련이 물러나고 미국은 소련을 겨냥해 터키에 배치된 미사일을 철수하는 이면 타협을 했다.

쿠바 위기와 우크라이나 위기

소련 붕괴 뒤 서방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이 소련 위성국이던 동유럽 국가를 넘어서 소련의 공화국들인 발트3국까지 진행됐다. 급기야 2013년 말 우크라이나가 서방 동맹으로 가는 전단계인 유럽연합(EU) 가입을 시도하면서 친러 정권이 붕괴되자, 러시아는 2014년 초에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러시아계 주민이 사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내전을 촉발했다.

러시아와 서방은 민스크 협정을 맺고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는 특별지위를 주기로 합의했다. 그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반러 성향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선되고, 민스크 협정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젤렌스키 정부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보전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는 올해 봄부터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병력을 구축하며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처음부터 최대 영토 국가로 부상했음에도 끊임없이 확장을 추구했다. 러시아의 역사는 팽창 추구의 역사이고, 그 과정에서 수축과 확장을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자연적 경계와 방벽이 없는 유라시아 대륙 북쪽의 평원지대에서 발원한 러시아는 끊임없이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왔다. 중세 때까지는 몽골족으로 상징되는 초원유목세력들, 근대 이후에는 나폴레옹과 히틀러 등 유럽 세력들의 침략에 시달렸다.

러시아의 팽창은 이에 대한 안보 대응이다. 주변의 이민족들을 복속시키는 한편 자연적 방벽이 있는 곳까지 확장해 안보 방벽을 만들려고 했다. ‘전략적 종심’의 확보이다. 모스크바 등 중심에서부터 변방까지의 거리를 최대한 넓게 만들어 완충지대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전략적 종심의 위력은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모스크바 직전까지 진군했다가 보급과 추위 문제로 몰락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러시아의 팽창은 소련 시절에 절정에 올랐다. 소련 봉쇄의 철학을 제공한 조지 케넌은 소련의 팽창과 체제를 러시아 역사 내내 지속된 안보 불안과 이에 대처하려는 전제주의의 합성물로 봤다. 그는 2차대전 직후 미국 국무부에 보낸 그의 유명한 외교전문인 이른바 ‘롱 텔레그램’에서 “세계 문제에 대한 크렘린의 신경강박적인 견해의 근거에는 러시아의 전통적이고 본능적인 안보 불안감이 있다. 사나운 이웃 유목민족들에게 노출된 광대한 평원에서 살아가려는 평화로운 농경민족의 불안이다”며 “그들은 끈질기게 안보를 추구하나 경쟁세력들이 완전한 파괴를 위해 싸우며 결코 협약이나 타협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케넌은 봉쇄가 지속되면 소련은 내재된 불안과 모순으로 붕괴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러시아는 안보 불안을 타개하려고 끊임없이 팽창하나, 그 팽창은 안보 불안의 근원이 되는 딜레마를 겪어왔다. 즉, 팽창된 영토 내에 있는 이민족의 저항, 물류체계 미비 등 광활한 영토를 관리하는 높은 비용은 러시아 체제의 운명적인 부담이 됐다. 소련의 붕괴도 동유럽 위성국을 관리하다가 실패하면서 초래됐다.

‘팽창 사이클’로 복귀하려는 러시아

그럼에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는 분리될 수 없는 사활적 안보완충지대이자 역사적 일부로 간주된다. 러시아와 동의어인 슬라브 문명이 우크라이나에서 발원했다. 크림반도 남서단 헤르소네스 해안에 있는 세인트블라디미르 성당은 988년 키예프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동방정교회 세례를 받고 국교로 받아들였다. 슬라브 문명이 시작된 원점이고, 키예프공국은 러시아의 기원이다. 몽골족의 침략으로 키예프공국이 망하자, 모스크바 인근에서 모스크바대공국이 세워져 15세기 이후에 러시아로 진화했다.

모스크바-페테르부르크 중심의 북부와 키예프 중심의 남부는 러시아를 구성하는 양대 축이었다. 소련 시절에 우크라이나는 중공업지대이자 곡창지대였다.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인 레온 트로츠키, 니키타 흐루쇼프 전 공산당 서기장 등이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 현재 러시아 인구의 20%는 우크라이나 주민들과 친인척 관계이다.

소련 붕괴로 러시아는 17세기 예카테리나 여제 이전의 영토로 돌아갔다. 소련 붕괴를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규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적어도 소련 영역에 대한 세력권을 주장하며, 러시아의 역사 사이클을 팽창으로 돌려놓으려 한다. 미국의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안보보좌관은 <거대한 체스판>에서 러시아의 부활에서 우크라이나는 그 전제조건이라며 이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우크라이나를 무장시키지 말라’(<뉴욕 타임스>)는 기고에서 우크라이나를 나토 영역에서 제외한다는 보장이 없는 한 러시아는 내전 개입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 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크림반도 합병에서 보듯이 옛 소련 영역에서 러시아가 군사행동을 결단한다면 서방이 이를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옛 소련 영역은 러시아 안보의 중추인 전략적 종심 안에 있어서, 서방이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침공 정도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없다. 이는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세력권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옛 소련 영역서 군사대응 어려워

지난 7일 푸틴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화상회담을 하고는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바이든은 강화된 경제제재를 경고했고,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허 등 나토의 확장 중단을 요구했다. 이튿날 바이든은 미군 파견은 “테이블 위에 있지 않다”고 배제하며, 나토 문제를 놓고 러시아와 주요 나토 4개국과의 협상을 발표했다. 푸틴은 소련 영역의 문제는 러시아와 상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놓고 중국과 세력권 다툼을 벌이는 미국이 옛 소련 영역을 놓고 러시아와 세력권 다툼을 벌이는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미국에게 옛 소련 영역이 인도·태평양 지역만큼이나 중요한 세력권일까? 미-중 대결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유동적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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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국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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