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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부동산 오르든 내리든, 왜 모두 기분 나빠 할까

등록 2021-12-19 09:52수정 2021-12-21 16:54

[한겨레S] 이원재의 경제코드
대부분 화나는 부동산 급등

앞사람을 못 따라가 좌절하고
뒷사람이 쫓아와서 초조한 구조
집 있는 서민은 세금 많다 화내고
집 없는 이들은 ‘낙오자’라고 분노
부동산값이 모든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한다는 명제는 성립할까? 사진은 아파트로 가득 찬 서울 도심을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부동산값이 모든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한다는 명제는 성립할까? 사진은 아파트로 가득 찬 서울 도심을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데이터의 시대다. 자료도 해석도 넘쳐난다. 하지만 신호가 많은 만큼 소음도 많다. 소음을 걸러내고 꼭 맞는 신호만을 찾아내기 위해, 직접 원자료에 접근해 분석하는 방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작업의 많은 부분을 직접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야 하니 까다롭다. 하지만 입맛에 꼭 맞는 통찰을 찾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글의 문패가 ‘경제 코드’인 이유다.

기분 나쁠 수밖에 없는 자산 분포

첫번째 분석 대상은 부동산이다. 최근의 부동산값 급등으로 ‘모두가 기분이 나쁘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왜 그럴까? 원자료를 분석해 알아내려 했다. 사실 이 명제는 직관에 어긋난다. 집값이 오르면 집을 가진 사람은 행복해지는 게 맞다. 우리나라에 자기가 소유한 집에 사는 사람은 60%를 넘는다. 게다가 집을 갖지 않았으나 구매할 계획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집값이 오르면 3분의 2 이상은 기분이 좋거나 그저 그런 상태가 될 것 같은 수치다.

불평등 때문일까? 불평등이 원인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평등한 사회가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그런데 명백해 보이는 문제도 막상 구체적으로 정의하려면 쉽지 않다. 모든 사람의 부동산 자산이 얼마나 비슷하면 평등한 것일까? 모두가 다 똑같은 게 이상적일까? 최상위 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억제되어야 할까? 어느 정도까지 억제되면 평등한 것일까?

따지다 보면 계층별 평균이나 일부 계층이 차지한 비중과 같은 부분적 분석만으로는 ‘평등’이라는 이상적 분배 상태를 정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평등을 정의할 수 없다면 불평등 정의도 어렵다. 결국 불평등은 전체 부동산 자산의 분포가 어떤 모양인지를 통해 정의해야 한다.

나는 정규분포(그림 1)가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소득 및 자산의 분배 상태라고 본다. 종을 엎어놓은 것처럼 가운데는 불룩하고 양쪽 꼬리는 얇은 그래프를 떠올리면 된다. 소득이나 자산이 중간 정도인 사람은 아주 많고, 상위층과 하위층은 존재하기는 하지만 소수인 형태의 곡선이다.

무엇보다도 중간이 두껍다는 게 장점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동질감을 느끼며 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정규분포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양쪽 꼬리가 존재한다는 점도 어쩌면 장점이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큰 부를 쌓는 소수로 올라설 기회가 있다. 또한 성실하게 살지 않으면 뒤로 처질 수도 있다. 그런 어려움은 소수에게만 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정규분포는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정규분포는 그래서 안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집값 급등이 모두를 기분 나쁘게 만든 이유도,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부동산 자산의 분포를 살펴보며 짐작할 수 있다. 부동산 관련 통계자료를 제공하는 쪽에서 분포 전체를 분석해 보여주는 일은 흔치 않다. 보도자료나 언론에서는 평균이나 특정 계층 집중도나 상승률 정도를 보여줄 뿐이다. 그것도 전체 부동산 시장이나 아파트 정도로 뭉뚱그려 보여준다.

전체 부동산 자산의 분포를 보려면, 원자료를 직접 찾아 가구별 자산을 파악해 그림을 그리면서 판단해야 한다. 직접 코드를 짜서 원자료를 분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구 부동산 자산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 통계청에서 1년에 한번 실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 원자료를 내려받아 분석했다. 전국 2만여가구의 소득과 자산 실태를 주로 알아보는 설문조사 결과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조사는 2020년 3월 조사다. 원자료에 접근해 가구 부동산 분포를 보면 그림 2와 같다. 가구 보유 부동산 자산은 앞서 언급했던 정규분포와는 거리가 멀다. 가장 자산 규모가 작은 계층의 수가 가장 크다. 자산이 커질수록 수는 점점 작아진다. 그래서 자산이 가장 큰 계층의 수가 가장 작다. 계층이 올라갈수록 보유자산 규모는 거듭제곱으로 커진다. 흔히 ‘기하급수적’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분포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모두가 기분이 나빠진’ 이유가 바로 이 ‘지수분포’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분포 아래서는 바로 앞사람과 나 사이 거리는 나와 내 뒷사람 사이 거리에 일정한 수를 제곱하면 나온다. 즉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2미터, 2×2=4미터, 2×2×2=8미터, 2×2×2×2=16미터와 같은 식으로 벌어진다. 따라서 내 뒷사람과 나의 거리보다, 나와 내 앞사람의 거리가 일정한 수의 제곱만큼 더 멀다. 이 분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같은 처지다.

우리나라 모든 가구를 부동산 자산 보유액을 기준으로 한줄로 세워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꼭 한칸 뒤에 있는 집과 우리 집을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은데, 나와 나보다 한칸 앞서 있는 집을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적으로 가격이 오르면 어떻게 될까? 나와 내 뒷사람 사이의 거리는 크게 멀어지지 않는 것같이 느껴지지만, 나와 내 앞사람 사이의 거리는 훨씬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앞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 좌절스럽고, 뒷사람이 따라오고 있어 초조해지는 구조다. 집 가진 사람들은 내 앞사람 집이 저리 비싼 걸 보니 나는 서민임이 분명한데 세금만 더 낸다고 화를 낸다. 집 없는 사람들은 낙오자가 되었다고 화를 낸다. 이게 바로 내 집값이 올라도 오히려 더 화가 날 수 있는 구조다.

당장은 집값 낮추고, 분배 정책 바꿔야

지수분포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만 나타나는 법칙은 아니다. 토마 피케티가 모은 세계 각국의 소득 및 자산 데이터를 보면, 최근 대부분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상위 계층 내부에서만 조금 다른 분포가 나타난다. 지수분포보다 더욱 불균등한 형태다.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혐오의 정서도 이 분포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자산가격이 오르면서 모두가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분포 곡선은 보여준다. 이런 사회의 해법은 뭘까? 당장은 너무 앞만 바라보며 살지는 않도록 노력하는 게 좋겠다. 앞만 바라보면 목이 꺾이며 주저앉기 쉽다. 앞사람이 점점 더 높이, 멀리 도망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만일 집값이 다 같이 떨어진다면 앞사람과의 거리는 좁혀질 것이다.

물론 더 좋은 방법은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 예컨대 자산분포를 지수분포에서 정규분포로 바꾸는 것이다. 정책의 역할이다. 다만 단기 미봉책으로 분포의 변화까지는 일어나기 어렵다. 모두가 기분 나쁜 일이 원천적으로 생기지 않으려면, 분배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다.

LAB2050 연구활동가 wonjae.lee@lab205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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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연구활동가. 다음세대 정책싱크탱크 ‘LAB2050’ 대표. <소득의 미래>,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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