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지난 3일 저녁 울산시 울주군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한 뒤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과 같은 인권유린 범죄는 우리 모두에 대한 반문명적, 반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을 가지고 근본적 대응 방안을 강구하라.”
2020년 3월24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엔(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일자 신종 디지털범죄에 대한 강력 대응을 지시했다. 곧바로 서울중앙지검에 엔번방 사건을 전담하는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티에프(TF)가 구성됐다. 보름 뒤인 4월9일 대검찰청은 처벌 기준을 대폭 강화한 ‘성착취 영상물 사범 사건처리 기준’을 마련해 전국 검찰청에 시달했다. △조직적 성착취 영상물 제작 사범은 가담 정도를 불문하고 전원 구속하고 주범은 죄질에 따라 법정최고형인 무기징역까지 구형한다 △광범위한 피해를 야기한 유포 사범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10년 이상을 구형한다 △성착취 영상물을 단순 소지한 사람도 기소한다는 내용이다. 대검은 “성착취 영상물은 지속적인 수요에 따라 공급이 이뤄지는 면이 있으므로 공급자뿐 아니라 소비자에 대해서도 엄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기존 처리방식만으로는 신종 디지털 성범죄에 효과적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사건처리 기준을 강화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장은 사뭇 달라졌다. 성착취 영상물 유포·소지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지난 10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엔번방 방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에 대해 “
검열의 공포”를 언급했다. “불법 촬영물 유포나 디지털 성범죄와 같은 흉악한 범죄는 반드시 원천 차단하고 강도 높게 처벌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이에 대한 최소한의 조처인 엔번방 방지법을 검열이란 딱지로 무력화할 경우 어떤 방법으로 성착취물 유통을 차단할 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윤 후보는 “통신비밀 침해”라고 했는데, 사적 대화도 아닌 공개된 오픈채팅방에서 이미 불법으로 분류된 촬영물을 걸러내는 것을 통신비밀 침해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당시 대검찰청이 내놓은 n번방 사건 관련 후속 조처.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이준석 대표는 13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통신비밀 보장에 위배된다”며 엔번방 방지법 재개정 뜻을 거듭 밝혔다. 앞서 지난 10일엔 엔번방 방지법이 “분노한 여론을 타고 통과된 이슈”라고 했다. 2020년 5월20일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50명이 찬성한 엔번방 방지법에 대해 여론에 편승한 과잉입법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엔번방 방지법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 중에는 윤석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중책을 맡은 이들이 여럿이다. 김도읍(공동선대위원장), 권성동(종합지원총괄본부장), 윤재옥(후보전략자문위원장), 임이자(직능총괄본부장) 의원 등이다.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 속 주장을 정치권 공론장으로 끌고들어온 이준석 대표 주장에 윤 후보가 올라타면서 국민의힘 다선의원들은 졸지에 여론에 편승해 마구 찬성표를 던지는 정치인이 됐다.
윤석열·이준석 두 사람 행보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이 내놓았던 “디지털 성범죄와 전면전 선포” 메시지와도 정면 충돌한다. 당시 미래통합당 선대위는 공식 논평을 통해 “왜곡된 성인식이 아이티(IT) 매체와 결합돼 나타난 새로운 사회악” “디지털 성범죄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제도적 문제”라며 “제2, 제3의 엔번방 사건을 방지할 수 있는 예방책 마련에 힘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법 개정을 통해 불법영상 제작 및 운영자뿐만 아니라
제작·유포·구매자까지 강력히 처벌하고, 상습 시청자 처벌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미래통합당은 “25만명에 육박하는 엔번방 참여자들 대부분이 아무 처벌도 없이 우리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이 두렵다. 법 개정을 통해
단순 스트리밍이나 시청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재원 희망공약개발단 총괄단장(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맡은 중앙당 총선 공약에는 영상 이용 협박도 성폭력 처벌 대상에 포함시키는 공약이 포함됐다.
“검열 공포”를 말하지만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강화된 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불법 촬영물 외에 다른 유해 정보까지 유통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사업자로 하여금 지체없이 이를 삭제하도록 하거나, 유통 방지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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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등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미래통합당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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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착취 N번방 처벌, 미래통합당이 앞장서니, 여당도 뒷짐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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