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_ 주요우울증
언스플래시
민지씨는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거나 초인종 소리가 나기 전까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다시 생각에 빠져드는데 최근에 체중이 늘면서 무릎에 무리가 갔는지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민지씨는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떠올라 자신도 관절염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생각을 하면 얼른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문득 이번주에 입사 면접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민지씨는 면접 볼 생각을 하면 이전 회사 면접에서 자기에게 매몰차게 질문을 했던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고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지씨는 자신의 고향 친구가 유방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민지씨는 서울에 온 뒤 사귄 친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친구는 민지씨가 어릴 때 고향에서 친하게 지내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서울에 와서 연락을 한 적은 몇번 없었지만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민지씨는 그 이후로 계속 ‘죽음’이라는 것에 관해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사람은 어차피 죽는데 자신이 이렇게 취업 준비를 하면서 고통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해지면서 통증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자신도 유방암에 걸린 것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검색을 통해 유방암 위험 요인에 가족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자신의 사촌이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미래가 온통 고통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민지씨는 이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날 방법은 없을지 다시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민지씨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습니다. 평가 결과 민지씨는 자신의 생각에 빠져드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집중력, 반응속도, 과제 전환 능력과 같은 뇌의 다른 능력도 저하되어 있었습니다. 단어연상검사를 해보면 우울, 죽음, 피해, 고통 등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로 생각이 연결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민지씨는 ‘주요우울증’으로 진단되었습니다. 우울증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늪처럼 빠져들어가는 경향을 강화시킵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다거나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흔히 동반됩니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생각의 진행에도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때 ‘생각 흐름의 왜곡’이나 ‘피해의식’ 같은 것이 흔히 동반됩니다. ‘생각 흐름의 왜곡’은 자기가 보는 것, 듣는 것 등 외부의 지각을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생각으로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민지씨는 친구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죽음’에 몰두한 이후에는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플 때도 죽으면 아프지 않을 텐데 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흐르게 됩니다. ‘피해의식’은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이나 말이 자신에게 해를 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면접관이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자신을 떨어뜨리려고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뇌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 오감의 자극을 받아들이면서 조율을 통해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게 됩니다. 마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어 노이즈를 없애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민지씨처럼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혼자만 지내면 뇌는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둔감해지고 자신의 내부 자극에만 집중하게 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 오면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외부 자극에 대한 판단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집중력이 더욱더 떨어지게 됩니다. 과거의 기억은 더 생생해지는데 주로 상처를 받거나 힘들었던 기억이 현재와 연상되어 자꾸 떠오르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면 결국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 지나치게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민지씨는 치료를 받으면서 집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집에만 있는 것은 마치 동굴에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캄캄한 우울의 동굴 속에서 과거에 상처받은 자기 그림자를 계속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컨디션이 저조할수록 집 밖에 나가서 햇볕을 쬐면서 산책도 하고 상점에도 들르면서 외부 활동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민지씨는 이제 공부도 집에서 혼자 하지 않고 도서관에 가서 하기로 했습니다. 필요할 때에는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과 상담 치료를 통해 외부의 자극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연습했습니다. 그러자 자기 신체에서 느껴지는 자극을 병으로 과도하게 해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에 깊이 빠져들어갈 때는 담당 선생님을 더 자주 만났습니다. 민지씨는 표정도 밝아지고 현실감이 생기면서 취직에도 성공했습니다.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만의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드는 경향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자신이 한때 집이라는 동굴에 갇혀 죽음에 대한 생각에 집착하고 세상을 온통 두렵게 느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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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진 _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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