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장 오른쪽) 등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에 앞서 서울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인근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20년 넘는 시간 동안 똑같이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해왔는데, 아직도 바뀌지 않았어요.”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난 6일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막기 위해
서울교통공사가 혜화역 2번 출구 앞 엘리베이터를 폐쇄한 데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에게 혜화역 엘리베이터는 ‘삶의 전부’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 학생이던 그는 1999년 6월28일, 혜화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탑승하려다 전치 6주의 중상을 입었다. 혜화역 2번 출구 앞 보도블록 바닥에는 지금도 이를 기억하기 위한 동판이 설치돼 있다. 동판에는 ‘혜화역 장애인(장애인이동권연대 투쟁국장 이규식) 휠체어 추락사고 이후, 여기서 이동권을 외치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이제 이 대표는 물론 고령층, 유아차를 모는 양육자, 목발을 짚는 이 등 모든 교통약자에게 ‘삶의 전부’가 됐다. 서울교통공사가 시위가 예상된다며 엘리베이터를 출근시간대 1시간30분가량 폐쇄한 것은 ‘모두의 엘리베이터’를 정지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수도권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저상버스가 도입된데에는 장애인들의 희생과 투쟁이 있다. 엘리베이터 대신 서울·수도권 지하철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는 2001년~2017년 사이 장애인 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2001년 1월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2002년 5월 5호선 발산역, 2006년 9월 인천1호선 신연수역, 2008년 4월 1호선 화서역, 2017년 1·5호선 신길역 등에서 20~60대 장애인이 추락사고로 숨졌다. 이 대표도 혜화역 사고 뒤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에 함께 했다. 이들의 투쟁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2005년·교통약자법),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2007년·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등 입법으로 이어졌다. 아직도 서울 지하철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이 22곳(승강장까지 연결되는 엘리베이터 미설치)가 있다. 앞서 2015년 서울시는 2022년까지 ‘서울시 지하철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를 약속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앞에 있는 ‘장애인 이동권 요구 현장’ 동판. ‘1999.6.28 혜화역 장애인(장애인이동권연대 투쟁국장 이규식) 휠체어 추락사고 이후, 여기서 이동권을 외치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장현은 기자 mix@hani.co.kr
혜화역 엘리베이터 폐쇄에 대해 이 대표는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동수단인데 그걸 폐쇄했다. 추락하고 다치고 그런 투쟁의 결과로 만든 엘리베이터인데 그걸 막은 데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에 “왜 장애인 단체의 시위를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폐쇄했냐’는 취지의 시민들의
민원이 70여건 접수되기도 했다.
장애인들이 최근 거리에 나선 이유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넘어 모든 교통약자들의 온전한 이동권을 위한 입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현재 국회에는 시내버스 대·폐차 시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로 교체를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상정돼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개정안이 국토교통위원회 법안 소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연내 개정을 촉구한다.
이날 전장연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엘리베이터 폐쇄에 대해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진정에 앞서 이 대표와 장애인들은 혜화역 승강장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알리는 선전전을 진행한 뒤 지하철을 타고 인권위 앞으로 이동했다. 일부 시민들은 이들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냈다. 이 대표는 “그나마 장애인들이 이렇게 해야 쳐다보고, 무슨 일인지 관심이라도 가진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바로가기:
‘장애인 이동권’ 선전만 해도 불법?…엘리베이터 일시 폐쇄한 혜화역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2147.html
장애인 시위 막는다며 엘리베이터 폐쇄한 혜화역에 항의 빗발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24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