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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없는 기다림의 끝…드디어 수술 받다

등록 2021-11-21 09:20수정 2021-11-21 09:29

[한겨레S] 양선아의 암&앎
수술, 곽청술 그리고 통증

“양선아님” 수술장 가는 호명
몸이 떨리고, 눈물까지 찔끔
수술 잘됐지만, 곽청술 못 피해
6시간만의 물, 그 달콤함이란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세번째 수술이라고 했다. 오후 2시 정도면 수술장에 들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오후 1시 반에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가 호명됐다. “○○○님 수술장 가실게요.” “네번째라고 했는데, 제가 먼저 가는 건가요?” “네, 교수님이 부르시네요. 수술장 사정으로 순번이 바뀌기도 합니다.”

천안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기쁜 표정으로 이송 침대에 누웠다. 부러운 눈빛으로 할머니를 바라봤다. 병실 사람들은 한마음이 되어 할머니께 “파이팅! 수술 잘 받고 오세요!” 했다. 수술 순번에 따라 환자들의 희비는 엇갈린다. 다들 빨리 해치우고 싶어 한다. 나와 할머니의 수술 순번이 바뀌었다. 할머니는 가슴 조직을 늘려주던 확장기를 빼고 그 자리에 보형물을 집어넣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성형외과에서 진행한다. 내 경우는 유방외과 의료진이 왼쪽 가슴을 전절제하면, 성형외과 의료진이 들어와 확장기를 삽입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 두 과의 스케줄이 맞아야 하는데 유방외과 수술이 늦게 끝나는지 수술 순번이 바뀐 것이다.

오후 5시 반, 드디어 이름이 불렸다

꼬르륵꼬르륵…. 전날 자정부터 금식을 했으니 오후 5시가 넘어서니 허기가 느껴졌다. 배고픔은 견딜 만했지만, 온종일 대기하는 시간이 지루하고 힘들었다.

“양선아님, 수술장으로 이동합니다!”

오후 5시 반이 되어서야 간호사는 내 이름을 불렀다. 드디어 수술한다!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침대에 올랐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술장 앞 보호자 대기석도 사라졌다. 보호자는 엘리베이터 앞까지만 동행할 수 있다. 친정엄마가 병실에서 대기했고, 남편은 아들과 함께 면회실에서 내 얼굴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와 남편에게 내가 수술하는 동안 읽으라며 편지를 내밀었다.

수술장으로 가는 그 길이 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눈을 감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복식호흡을 하면서 출렁거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엄마 걱정하지 마~ 울지도 말고~ 잘하고 올게~ 엄마 사랑해~.”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나니 엘리베이터 문이 철컥 닫혔다. 울지 않으려 입술을 꽉 물었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수술장 안에는 수술하고 나온 환자 3명이 회복 중이었다.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다. 잠시 대기하고 있으니 주치의가 어떤 문 안으로 침대를 끌고 들어갔다. 좁고 긴 골목을 따라 에이(A), 비(B), 시(C) 등으로 표기돼 있는 방들이 보였고, 나는 이원(E1) 방으로 옮겨졌다. ‘수술장은 어떤 모습일까?’ 눈을 크게 뜨고 쭉 둘러보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수술장보다는 공간이 더 좁아 보였다. 각종 철제 도구들이 보였고, 수술 침대 너비도 매우 좁았다. 의료진이 바쁘게 오가고 수술 준비가 끝났다며 한 의사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잠시 뒤 마취과 의사가 들어왔는데 여성이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의사가 “좀 따끔해요”라고 하면서 혈관에 꽂힌 주삿바늘 쪽을 부드럽게 만져줬다. 이상하게 편안함을 느꼈다. 그 뒤로 나는 의식이 없었다.

“양선아님, 수술 잘 끝났습니다. 10분 정도 있다 병실로 이동합니다. 심호흡하세요.”

한숨 푹 잘 잔 느낌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시선이 시계 쪽으로 향했다. 밤 10시다. ‘어라? 자정이 다 돼 끝날 줄 알았는데 빨리 끝났네? 림프 전이가 안 됐나?’ 기분이 좋았다. 복식호흡을 열심히 했다. 내 옆에 있던 할아버지 환자는 마취에서 잘 깨지 못하셨다. 간호사가 계속 할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마취에서 잘 깨어난 것만도 감사했다.

잠시 뒤 이송 침대에 실려 병실로 향했다. 병실 사람들이 “고생했어요”라고 말하며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를 맞이하듯 환영해주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엄마.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세상에, 수술하고 돌아오면서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환자는 처음 봐요.” 간병인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말도 못 하고 나를 보기만 했다. “엄마 안 울었어? 나 수술 잘됐대. 걱정 마.” “엄마가 왜 울어. 엄마 안 울었어. 괜찮아? 아이고, 고생했어. 수술 잘됐대.” 옆에서 나를 부축해주던 간호사가 말한다. “쪼끔 우셨대요. 제가 어머니 우시는 거 봤지롱!” “그럴 줄 알았어요. 이렇게 수술 잘하고 올 걸, 왜 울어.”

간호사의 부축으로 이송 침대에서 내 침대로 겨우 몸을 옮겼다. 물에 흠뻑 젖은 솜처럼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교수님 밑에 있는 분이 수술 중 나와서 전해줬는데, 암이 전이된 림프 3개 중 1개에서 암세포가 나왔대. 그래서 림프 떼고 있는데, 자기는 수술 중에 나와서 몇개나 뗐는지 모른다고 하더라.” “정말? 수술 빨리 끝나서 림프 안 뗀 줄 알았는데, 흑.”

수술 뒤엔 칼에 베인 듯한 통증

곽청술은 안 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 기대도 무참하게 꺾였다. 겨드랑이 쪽 살을 도려내는 곽청술이 진행됐고, 나중에 의무기록지를 떼어 확인해보니 림프절을 16개나 뗐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전에 림프 부종에 대한 걱정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계속할 수 없을 만큼 수술 후 통증은 심했다. 병원에서는 마약성 진통제를 주었다. 버튼을 누르면 진통제가 1㏄씩 혈관을 따라 투입됐다. 진통제를 계속 눌러도 어깨나 등이 너무 아파 침대에 기대는 것조차 힘들었다. 푹신푹신한 큰 베개를 뒤에 놓고 거의 90도 가깝게 침대를 세워 앉아 있었다. 가슴과 겨드랑이 살을 도려냈는데 어깨와 등이 스치기만 해도 칼에 베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수술 직후엔 4시간 동안 절대 자면 안 된다. 수술하는 동안 폐가 쪼그라들어 다시 폐 기능을 복원시키려면 심호흡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몸은 아픈데 눈꺼풀이 무거워 자꾸 눈이 감겼다. 수술 후 6시간은 금식이라 물조차도 안 준다. 비몽사몽 중에 목은 타들어갔다. 간병인이 물에 적셨다 꽉 짠 가제 손수건을 입에 물려주어 버틸 수 있었다. 새벽 2시까지 겨우 버티다 까무룩 잠들었다. 정말 푹 잤다. 아침인가 싶어 눈을 떴는데 정확히 새벽 4시다. 기가 막히게도. ‘아! 물을 먹을 수 있다!’ 간병인이 물통에 빨대를 꽂아 물을 주는데 그 물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살 것만 같다. 물을 잔뜩 먹고 다시 또 까무룩 잠들었다. 사회정책부 기자

기자이며 두 아이의 엄마. <자존감은 나의 힘>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공저) 등의 저자. 현재는 병가 중이며,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알게 된 암 치료 과정과 삶의 소중함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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