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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청소년들의 ‘엑시트’ 지금은 안녕, 시즌2를 부탁해

등록 2021-11-10 04:59수정 2021-11-10 17:29

사진기획
6일 새벽 1시, 서울 관악구 봉림교 인근에 자리한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에서 활동 시간이 끝나자 활동가와 엑시터들이 함께 정리를 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부천, 안산, 수원, 신림등에서 청소년들의 주거·생계·복지 등을 함께 고민했던 엑시트 지원 활동은 12일을 마지막으로 종료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봉림교 위. 출구를 뜻하는 영어 단어 ‘엑시트’(EXIT)가 적힌 버스 옆으로 초록색 천막이 세워졌다. 매주 금요일 저녁 8시에 나타나 새벽 1시에 사라지는, 소설 <해리 포터> 속 ‘필요의 방’과 같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석이나, 설날이나”, 천막 들머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코로나19로 2020년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전국 13곳의 거리 청소년 지원(아웃리치) 버스는 비대면으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대면 활동을 하는 데는 바로 이곳,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이하 엑시트)뿐이다.

▶관련기사: ‘거리 청소년’ 위한 단 하나의 천막, 설에도 쉬지 않는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2099.html)

2011년 문을 연 ‘엑시트’는 경기 안산시, 수원시, 부천시와 서울 신림동 등에서 24살 미만의 탈가정 청소년들을 만나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지원 활동을 해왔다. 활동가들은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을 찾고 긴급 서비스를 지원해,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게 위기 상황을 넘길 수 있도록 함께해왔다. 또한 병원, 학교, 집 구하기 등에 필요한 긴급 출동 및 서비스를 제공했다. `평화와 셀프의 공간’이라는 지향점 아래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뿌리내린 곳이다. 여러 활동 중에서도 활동가들이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밥이다. 엑시트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청소년들이 탈가정 이후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표적인 항목 중 하나가 배고픔이다. 2019년 7934명, 2020년엔 5176명이 버스에 타 배고픔을 해결했다.

10년의 활동을 이어온 엑시트는 아쉽게도 재정적 지원이 끊겨 이번주 금요일(11월12일)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다만, 연말까지 청소년 지원 활동은 계속할 예정이다. 올해 초부터 이 상황을 인지한 활동가와 엑시터(엑시트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은 긴 시간 묵묵히 이별을 준비했다.

지난달 29일 열린 10주년 기념식에서 활동가와 엑시터들이 남긴 메시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시행으로, 길에 오가는 사람이 이전보다 늘어난 지난 5일 저녁 8시쯤 엑시터들이 하나둘 천막을 찾았다. 익숙하게 천막 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한 뒤 체온을 잰다. `메뉴판'이라 하는 작은 종이에 먹을거리, 놀거리, 상담거리 등을 적어 낸다. 활동가들은 이를 통해 엑시터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지 파악한다. 매콤달콤한 떡볶이 냄새와 활동가·엑시터의 왁자지껄 웃음소리로 천변의 쌀쌀한 날씨와 달리 천막 안은 훈훈하다. 활동가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엑시터들과 시간을 보낸다. 누구는 한없이 들어 주고, 또 누구는 친구처럼 장난스럽게 다가서고, 또 다른 누구는 산책을 청한다. 하지만 누구든,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하더라도 잘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알려준다. 엑시터들이 처한 문제를 논의할 때도, 정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법을 제시할 뿐이다. 엑시터가 ‘나 이거 해볼래, 나 이거 할게'라고 결정하면 엉킨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내듯 위험 상황에서 빠져나가도록 함께해준다.

10년 전 부천에서 엑시트를 처음 만났다는 하나(24)씨는 “비상시 출구예요. 제가 중 1·2 때 떠돌아다녔거든요. 그런데 어느 시설을 가도 제 얘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들 규칙도 많고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지내기 어려웠어요. 그때 엑시트는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더 좋은 출구로 안내해줬어요. 엑시트가 없어진다는 게 아직 실감 나지 않아요”라고 했다. ‘엑시트’의 의미를 뚜렷이 얘기한 만큼, 이별은 아직 실감 나지 않는 듯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날 56명의 엑시터들이 천막을 찾았다. 엑시트와 가장 오래 함께한 활동가 인성씨는 멋진 안녕을 고민한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센터장을 맡은 윤경씨는 엑시트의 또 다른 시작을 꿈꾼다. “돌이켜보면 힘들기도 했지만, 사람들에게 ‘아, 엑시트 좋은 곳이었지!’라고 가슴에 남았으면 좋겠다”며 “여전히 엑시트와 같은 공간과 사람이 필요한 청소년들이 있는데, 이곳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된다. 그렇지만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즌1 정리다. 누구라도 시즌2를 원한다면 엑시트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멈춰진 일상은 회복됐다. 달리던 버스도 계속 달려야 한다.

한시간에 한번씩 방역작업을 하는 동안 엑시터와 활동가들이 천막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날 방역지킴이 역할을 담당한 수연님이 거리두기를 당부한다.
한시간에 한번씩 방역작업을 하는 동안 엑시터와 활동가들이 천막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날 방역지킴이 역할을 담당한 수연님이 거리두기를 당부한다.

오랜만에 천막 안에 간식이 등장했다. 매콤달콤한 떡볶이 냄새가 천막 안 온도를 높인다.
오랜만에 천막 안에 간식이 등장했다. 매콤달콤한 떡볶이 냄새가 천막 안 온도를 높인다.

엑시트 버스 안에서 활동가 찬욱님이 청소년들에게 나눠줄 생필품을 정리하고 있다.
엑시트 버스 안에서 활동가 찬욱님이 청소년들에게 나눠줄 생필품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21년 11월 10일치 <한겨레> 사진기획 지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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