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사건과 관련해 정치권 창구로 지목된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3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조사를 받은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 상황과 조건 때문에 직접 고발하기 어려운 제보자.”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고발 사주 정황이 담긴 자신의 음성 녹취파일이 공개된 뒤에도 ‘기억나지 않는 제보자’로부터 고발장을 받았을 뿐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3일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때도 같은 주장을 했다.
앞서 지난 2일 먼저 조사받은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 역시 ‘기억나지 않는 제보자’가 고발장을 보내와 반송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공수처는 두 사람이 주장하는 제보자 존재 가능성을 낮게 본다. “고발장 초안을 저희가 만들어 보내드리겠다” 등 김 의원 녹취파일 속 발언, 고발장 전달 당일 손 검사 지휘를 받는 검사 2명이 고발장과 함께 전달된 판결문을 검색한 사실 등에 비춰볼 때 자신들의 혐의를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설령 김 의원과 손 검사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두 사람이 언급한 제보자는 전·현직 대검찰청 간부에게 범여권 인사 등에 대한 고발을 텔레그램 메시지로 직접 부탁할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이 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은 공수처 조사를 마치고 나온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 4월) 당시 수많은 제보가 왔다. 당시 야당 정치인에게 오는 제보는 (제보자가) 여러 상황과 조건 때문에 직접 고발하거나 문제제기가 어려우니, 정치권에서 문제제기를 해달라고 오는 제보다. (고발 사주 의혹도) 그런 수많은 것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검찰 관계자 제보도 있었는가’란 질문엔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이를 두고 검찰 일부에서는 ‘여러 이유로 직접 고발하기 어려우니 대신 고발해 달라’는 쪽이 누구였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김 의원이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쪽에 전달한 고발장은 범여권 인사와 일부 언론이 짜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부인 김건희씨, 장모 최아무개씨, 윤 총장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 등에 대한 악의적 허위보도를 하고 있다며 이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 검찰 간부는 4일 “검찰 조직은 인지수사가 가능하지만 당시 상황상 직접 수사에 나서기 어렵고, 먼저 수사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사안도 아니었다. 정치권을 통해 고발장을 받아 수사에 나서려 했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김 의원은 “그런 제보는 당연히 고발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을 고발 사주로 이름 붙이면 모든 제보는 고발 사주가 된다”는 주장도 했다. 이번 의혹 핵심은 수사 및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적대적인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제1야당에 고발을 사주했다는 것인데, 이를 마치 일반인들의 고발 민원과 같은 성격으로 물타기를 한 셈이다. 공수처는 김 의원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손 검사에 대한 추가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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