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체 치매 증상의 하나인 ‘렘수면 행동장애’로 인해 잠결에 꿈 내용을 소리 지르거나,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루이체 치매
철민씨는 건강하게 살아온 70대 남성입니다. 반년 전부터 잘 때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을 심하게 쳐 아내인 영주씨가 깨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데 철민씨가 자면서 하는 행동들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가족들은 자다가도 철민씨가 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달려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철민씨는 잘 자고 있었습니다. 자면서도 마치 자신이 꾸는 꿈을 방송이라도 하듯이 중얼거리며 허공에 펀치를 날리고 발길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걱정은 되었지만 평소에도 잠버릇이 심한 편이라서 그냥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국 일이 벌어졌습니다. 잠꼬대로 주먹질을 하다가 옆에서 자고 있던 영주씨의 가슴을 때려 갈비뼈를 부러뜨린 것이었습니다. 철민씨는 자신이 절대 일부러 한 것은 아니라고, 꿈속에서 산에서 나온 곰을 때려잡으려던 것이었는데 영주씨가 맞은 것이라며 심한 죄책감에 시달려 했습니다. 그럼에도 영주씨는 더 이상 철민씨 옆에서 자는 것이 무서워 철민씨와 같은 방에서도 잘 수가 없었고, 결국 각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밤마다 철민씨가 중얼거리거나 소리를 질러서 다른 방에서 자도 자꾸 깨기 일쑤였습니다.
꿈-현실 오가며 망상과 행동장애
환시·파킨슨·인지기능 약화 겪어
철민씨에게는 다른 변화도 있었습니다. 검은 고양이가 집 안을 빠르게 지나다닌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고양이를 키운 적이 없었습니다. 고양이뿐 아니라 강아지, 심지어는 말이나 사슴이 집 안을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인다고 했습니다. 영주씨가 지켜보니 철민씨는 식사를 할 때도 손을 심하게 떨었습니다. 걸어 다닐 때도 종종걸음으로 걸어서 자주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가족들은 철민씨의 이런 증상을 보고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하다가도 철민씨가 갑자기 좋아지기도 해서 갈피를 잡기 힘들었습니다. 철민씨의 행동은 이전보다 무척 느려진 것 같았습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멍하게 있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창밖에 있는 나뭇가지를 보면서도 아이들이 그네를 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철민씨는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골절은 되지 않았지만 철민씨의 걸음걸이는 점점 더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갈수록 증상이 심각해져 철민씨는 가족들과 함께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철민씨가 자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고 걸음걸이가 불안정한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담 결과 철민씨는 자기만의 망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사는 곳은 아파트가 아니라 동물을 키우는 농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자꾸 자신을 잡으러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동물을 많이 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철민씨의 눈에는 온갖 동물들이 실제로 보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눈에 보이는 것을 ‘환시’라고 합니다. 몸이 경직되고 떨리며 느려지는 것을 ‘파킨슨 증상’이라고 합니다. 하루에도 오전·오후로 기억력, 집중력,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파악 능력이 변화하는 것을 ‘인지기능의 변동’이라고 합니다. 환시, 파킨슨 증상, 인지기능의 심한 변동을 보이는 병을 ‘루이체 치매’라고 합니다. 이것은 ‘알츠하이머 치매’하고는 다르며 ‘루이체’라고 하는 물질이 뇌에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치매로, 국내에서 전체 치매 환자 수의 3.4%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이체 치매에서 보이는 가장 흔한 증상이 ‘렘수면 행동장애’입니다. 잠을 잘 때 꿈을 꾸는 렘수면과 꿈을 꾸지 않는 비렘수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정상적으로는 렘수면 중에는 호흡근을 제외하고 온몸의 힘이 빠지면서 심한 움직임이 없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렘수면 행동장애가 생기면 근육의 힘이 빠지지 않아 꿈의 내용을 말하기도 하고 꿈의 내용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철민씨에게 신경인지기능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철민씨는 단기 기억력도 떨어져 있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각적 기억력과 판단력이 크게 떨어진 점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철민씨를 보고 놀란 것은 철민씨가 시계를 보고도 몇시인지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철민씨에게 시계를 본 뒤에 종이에 다시 그려보라고 하면 보았던 시계 모양을 거의 그리지 못했습니다. 시각적인 파악 능력이 루이체 치매로 인해 크게 떨어져서 사물의 모양이나 원근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철민씨는 마치 한쪽 눈을 감고 세상을 보는 것처럼 멀리 있는 물체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알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문지방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습니다.
근육힘 못 빼 꿈대로 행동하기도
루이체 치매 아닌지 의심해봐야
철민씨는 루이체 치매로 치료를 받으면서 이전보다 기억력도 다소 나아지고 보행도 더 좋아졌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 내과 등 여러 과의 전문의 간 협진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간병인은 루이체 치매가 있는 분들이 음식을 먹다가 사레에 잘 걸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루이체 치매가 있는 분들은 음식을 삼켜 넘기는 기능이 떨어져 음식이 쉽게 기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흡인성 폐렴에 걸리게 됩니다. 음식을 먹고 나서는 등을 두들겨주고 30분 정도는 눕지 말고 앉아 있도록 해야 합니다. 떡이나 젤리는 피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루이체 치매가 있는 분들은 원근감을 파악하는 능력과 균형 감각이 떨어져 넘어지거나 미끄러지기 쉽습니다. 목욕탕 바닥에 미끄럼 방지 스티커를 붙이거나 매트를 까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자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것은 약물 치료를 하면 많이 좋아지지만 어떤 약은 루이체 치매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철민씨는 치료를 받으면서 이전보다 멍한 것도 줄어들고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밤에 소리를 지르거나 발길질을 덜 하게 되어서 영주씨도 옆에서 잘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기 발견과 치료를 한 덕분에 많이 호전되어 가족들도 안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