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 국가장 영결식에서 김부겸 총리가 조사를 마친 뒤 좌석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씨의 국가장 영결식이 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평화의광장에서 엄수됐다.
이날 노씨의 영결식은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1988년 개최된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올림픽공원에서 오전 11시부터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영결식에는 유족과 친지, 장례위원회 위원, 국가 주요인사와 주한외교단 등 50인가량이 참석했다. 아내 김옥숙씨는 고인 영정에 헌화와 분향을 한 뒤 영결식 내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노씨의 국가장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부겸 국무총리는 조사를 통해 “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북방외교의 새 지평을 열었고, 토지 공개념 도입으로 경제 민주화에 기여 했다”며 노씨의 재임기간 중 성과를 높게 평가했지만 “고인께서 대통령 재임 기간동안 많은 공적 있었음에도 오늘 우리가 애도만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노씨의 ‘과’에 대해 언급했다. 전두환(90)씨와 함께 12·12 군사쿠데타를 주도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관여한 노씨의 국가장에 대해 반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김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이) 우리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큰 과오를 저지른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며 “우리는 국가장에 반대하는 국민들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어떤 사죄로도 5.18과 민주화과정에서 희생하신 영령들을 다 위로할 수 없음을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의 가족들의 사과 대신) 고인이 병중에 들기 전 피해자와 유가족을 만나 직접 사죄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덧붙였다.
노태우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노재봉 전 총리는 추도사에서 노씨를 여러 번 ‘각하’라고 부르며 울먹였다. 노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 등) 육군사관학교 1기 졸업생들은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현대 문명을 경험한 엘리트였다. 그런 분들이 보는 한국 정치는 난장판이었던 것”이라며 “그것이 (이들이) 통치 기능에 참여하게 하는 계기였고 이 장교들의 숙명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며 12·12쿠데타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 국가장 마지막날인 30일 발인을 마친 뒤 영구차량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장으로 이동할 채비를 하고 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영결식장 주변에는 고인의 마지막을 지켜보려는 시민 수백명이 모였다.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검소한 장례를 바란 노씨의 뜻과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해 영결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인근 주민 송아무개(70)씨는 “(노 전 대통령이) 군인 티를 내지 않고 보통 사람처럼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펜스 없이 나 같은 보통 사람들도 보게 할 줄 알았는데 막아놔서 섭섭하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국가장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이날 장례식장과 영결식 현장에 온 시민들은 ‘국가장은 당연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희동 주민인 조영구(56)씨는 “누구든지 공과 과가 있다. 국가에 헌신했으니 현충원 안장까진 아니더라도 국가장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했다. 김순이(65)씨는 “아들이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빌었고. (노 전 대통령이) 몸이 아파서 직접 못 한 점을 이해한다”고 했다.
한편 택시기사 김광묵(67)씨는 “국가장에 반대한다. 전남도민이라 참혹한 현장을 많이 봤다. 당시 앞집 아주머니가 머리를 다쳐서 전남대병원을 갔어야 했는데 못 가게 막아서 돌아가셨다”라고 말했다. 유민호(59)씨는 “사과는 아들이 한 거고 본인이 한 게 아니니 지금 이렇게 여론이 싸늘하지 않나. 호남과 연고는 없지만 자국민에게 총칼을 겨누던 5·18 광주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범죄자 노태우의 국가장을 반대하는 청년온라인공동행동’ 회원들이 30일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의 국가장이 열리는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 앞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사죄없이 용서와 화해를 말할 수 없다. 우리는 학살자이자 반민주 범죄자 노태우씨의 국가장에 반대한다”라고 외쳤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영결식이 시작 되기 전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 세계평화의문 앞에서는 노씨의 국가장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청년단체 ‘범죄자 노태우의 국가장을 반대하는 청년온라인공동행동’은 기자회견을 열어 “(노씨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하고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했다. 광주민주항쟁 당시 벌어진 학살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문재인 정부의 국가장 결정은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명백한 배신행위다. 정부의 국가장 결정은 역사적 용서와 화해가 아닌 정권의 비겁함”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영결식에 앞서 열린 발인식에서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유족들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200여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유해는 아침 8시56분 노씨가 별세 직전까지 머물렀던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으로 이동했고 유족들은 마당에서 30분가량 노제를 지냈다.
이주빈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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