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에 대한 불법 대북송금 혐의를 공소기각 판결한 원심을 확정한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건물에서 유우성씨가 나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검찰이 불법 대북송금 등 혐의로 한차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를 뒤늦게 기소한 것은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공소기각한 원심을 대법원이 확정한 첫 사례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4일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기진 유씨 상고심에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하고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유씨의 대북 송금업무를 대행한 혐의를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은 2010년 그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탈북자 대북송금을 주선해주는 일명 ‘프로돈’ 사업을 통해 13여억원을 북한으로 밀반출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였으나, 유씨의 가담 정도가 경미하고 초범이라는 점을 고려한 처분이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부장 이두봉)는 한 보수단체 고발을 받고, 2014년 유씨를 같은 혐의로 기소했다. 유씨가 2013년 별도의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가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유씨의 출입경 기록을 위조했다’는 사실을 중국 당국의 확인을 거쳐 밝혀내고 국정원 직원들과 담당검사를 고소한 뒤였다. 당시 유씨 변호인 등은 “검찰이 간첩 사건 증거조작이 밝혀지자 갑자기 과거 기소유예 처분했던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보복성 기소이고 공소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검찰은 유씨를 재판에 넘기며 재북 화교 출신이면서도 탈북민이라고 속여 ‘탈북자 전형’으로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고 탈북자 정착금을 부당하게 받은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도 함께 적용했다.
유우성(가운데)씨가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건물 앞에서 대법원 선고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혜윤 기자
2015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선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배심원 7명 중 4명이 ‘검찰 공소권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 아니다”라며 두 혐의 모두 유죄로 판단해 유씨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형사5부(당시 부장 윤준)는 2016년 유씨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두고 “검사가 현재 사건을 기소한 것은 통상적이거나 적정한 소추재량권 행사라고 보기 어렵다. 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보여지므로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평가함이 상당하다”며 검찰의 권한 남용이라 판단해 위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 기각했다. 다만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부분에 대해선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날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 뒤 4년이 지난 2014년 현재 사건이 기소됐다.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번복하고 다시 기소할 의미있는 사정변경이 없다. 재수사 단서가 된 보수단체 고발은 각하됐어야 했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공소를 기각한 원심판결이 확정된 최초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유씨는 국가보안법상 간첩 등 혐의로 기소된 별도의 재판에서 2015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유씨 재판 과정에서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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