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좋아하는 일이 직업으로 잘할 수 있는 것과 다를수도 있다. 민성이는 게이머 대신 게이머 제작자로 인정받기로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민성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업보다는 게임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다중플레이어 온라인 배틀 아레나 게임’(MOBA·모바)을 좋아합니다. 모바란 인터넷을 통해 여러명이 하나의 온라인 공간에 모여 편을 나누고 승부를 겨루는 게임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게임으로 흔히 롤(LOL)이라고 부르는 ‘리그오브레전드’, ‘카오스’ 등이 있습니다. 민성이는 게임을 할 때 모든 고민이 사라지고 게임 속 캐릭터에 몰입하게 됩니다. 민성이의 게임 실력은 점점 늘고 있지만 모의고사 시험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학원도 가지 않고 게임만 하는 민성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가 집에 있는 컴퓨터를 치워버렸습니다. 이를 안 민성이는 아버지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 자신은 이제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며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집 근처 피시(PC)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며칠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민성이가 있는 피시방을 친구들에게 수소문해 찾아가 보니 아들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보고 우는 어머니에게 민성이는 “저는 앞으로 프로게이머가 될 거예요”라며 더는 자기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니가 민성이를 설득해 함께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뒤로도 민성이는 공부는 하지 않고 하루에 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게임만 했습니다. 유튜브에서 프로게이머로 성공해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의 영상을 찾아보며 자신도 그렇게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민성이는 부모님에게 ‘프로게이머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습니다. 사실 민성이는 중고등학교 때도 공부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도 잘 못하고 존재감이 없는 학생이었지만 오직 게임 하나 잘하는 친구였습니다. 민성이는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눈이 반짝거리고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민성이를 게임 잘하는 친구로 인정해주며 ‘마스터’라고 불렀습니다. 부모님도 민성이가 게임을 좋아하고 프로게이머가 앞으로 비전이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민성이의 뜻대로 게임 학원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민성이는 프로게이머 학원에 가서도 결국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게임을 잘하는 동료들에게 금방 주눅이 들었습니다.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는 게임을 잘하는 편에 속했지만 프로게이머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게임 학원에서도 학교에서처럼 수업도 많이 들어야 하고 타인과의 경쟁이 부담이 많이 되었습니다. 결국 민성이는 학원을 그만두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부모님의 원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너는 잘하는 것이 뭐냐?” “다시 공부해서 친구들 따라갈 수 있겠니?” 결국 민성이는 부모님과 다투고 다시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고 게임만 했습니다. 게임을 하지 않으면 이유 없이 불안하고 초조해져서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게임을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게임을 통해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고, 회사를 차려 새로운 게임을 개발해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것과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양궁에 관심이 있다면 양궁을 가르치는 체육관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양궁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가 되려면 어떠해야 할까요? 보통 수준보다 조금 더 활을 잘 쏜다고 해서 국가대표가 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게다가 남다른 집중력과 담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서는 게임을 좋아한다거나 단순히 잘한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손이 매우 빨라야 하며 타고난 반사 신경과 담력이 필요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한국의 프로게이머를 취재해 유명 프로게이머와 일반인의 뇌를 컴퓨터단층촬영으로 비교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일반인들의 뇌는 게임을 하는 동안 시각을 통제하는 부분만 활성화되었지만 프로게이머의 뇌는 전두엽과 대뇌 변연계가 활발하게 움직였다고 합니다. 컴퓨터를 조작하는 횟수 또한 일반인과 프로게이머를 비교해보면 일반인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1분에 100회 정도 조작하는 데 비해 프로게이머는 그보다 3.7배 많은 370회를 조작했다고 합니다. 이 실험에서 프로게이머는 뇌의 반응과 손의 대응 속도가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서는 후천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선천적인 뇌의 능력이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프로게이머를 꿈꾼다면 직업으로 삼기 전에 그 분야 전문가에게 냉정하게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전문가가 하기 어렵겠다고 조언한다면 그 말을 마음에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민성이는 부모님과 함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했습니다. 심리검사에서 민성이는 뇌의 반응 속도가 느리고 긴장 수준이 매우 높았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프로게이머’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주변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크며 불안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임을 열심히 했던 것도 이를 통해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께도 무언가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공부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민성이의 아이큐(IQ)는 평균보다 높았지만 불안, 초조, 긴장으로 인해 제대로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민성이는 치료를 받으며 불안감이 감소되고 공부를 하면서도 이전보다 집중이 잘되었습니다. 그동안 시험만 보면 평소 실력보다 나오지 않아 실망하는 일이 많았지만 심리 치료와 병행해 시험 전에 미리 실전과 같은 모의시험을 많이 보며 긴장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민성이는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게임을 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공부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제는 게임을 잘해서 인정받기보다는 게임을 만들어서 인정을 받아볼 생각입니다. 대인관계에서도 친구들에게 꼭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친구들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도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민성이는 주변과의 관계가 편해지면서 불안, 긴장이 한층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내가 직업으로 잘할 수 있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