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에 따라서는 큰 유행을 일으켰다가 사라지는 종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2015년 우리나라에서 큰 유행을 일으켰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지만, 중동 지역에서는 여전히 유행 중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어떻게 될까?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고, 그 규모도 메르스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기 때문에 코로나19는 수년 동안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결국 ‘위드(with) 코로나’, 즉 단계적 일상회복 단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의 종착지가 될까? 우리는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완전히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9월 서울 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접종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부는 코로나19 방역대책을 11월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고령층 90%, 일반 국민 80% 정도가 예방접종을 받은 뒤, 2주가량이 지난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큰 폭으로 늘고 있지만, 정부 입장은 마찬가지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8일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하루 확진자가 3천명대를 기록하더라도) 의료체계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며 “그 상황에서도 (단계적 일상회복) 전환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위드 코로나는 말 그대로 사람과 코로나 바이러스가 함께 살아가는 상태를 말한다. 확진자 수를 관리하기보다 중증 등으로 입원하더라도 치료받을 수 있는 대응체계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방향이 바뀐다. 앞으로는 치명률이나 중증 발생률 등이 감염 유행의 판단에서 더 중요한 지표라고 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른 방역 정책의 판단 기준 변경도 필요하다.
위드 코로나 단계로의 진입이 확진자의 급격한 감소나 마스크와의 작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우리나라는 위드 코로나를 한달여 앞둔 추석 직후 하루 확진자 수가 3천명을 넘기는 등 코로나19 유행 뒤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싱가포르 등 이미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한 나라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는 아시아권 나라 가운데에는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다. 백신 최종 접종을 완료한 ‘완전 접종률’이 80%를 넘기는 가운데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급증하고 있다. 지난 26일 싱가포르 보건부의 발표를 보면 하루 확진자가 지난 20일까지는 1천명 아래였으나, 이후 꾸준히 증가해 26일에는 1939명으로 코로나19 유행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한 영국 등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방역 규제 완화 이전보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 국가는 계속 위드 코로나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중증이나 사망은 예방접종 이전보다 매우 큰 폭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즉 감염은 계속되고 있지만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들이 대다수라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이 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예방접종은 바이러스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계가 바이러스를 알아차려 중증이나 사망으로 가지 않도록 막는 능력을 배양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4차 대유행 기간이던 지난 7월 서울 명동 거리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가게들마저 문을 닫았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중증 환자 규모는 계속 감소 추세다.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8월25일 기준 하루 평균 약 1781명에서 9월25일 주에는 하루 2029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중증 환자 수는 같은 기간 404명에서 324명으로 80명 줄었다. 코로나19 사망자 비율도 지난해 유행 초기에는 2.2%가량이었지만 이후 계속 감소해 올해 1월에는 1.43%, 3월 0.6%, 5월 0.53%, 7월 0.29%로 내려왔다. 새로워서 치명적이었던 감염병에서 이젠 인류가 대처할 수 있는 감염병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서울 홍제천 야외체육시설에 출입통제선이 설치돼 있다. 자전거 강사인 김정례(70)씨도 몇달째 교육을 못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렇다면 위드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우선 감염이 사망으로 이어지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도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기존의 다른 바이러스와 비슷해지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 평화는 영구적이지 않아 병원체, 숙주, 매개체 등의 조건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위드 코로나는 퇴치나 종식보다는 숙주와 바이러스의 공존이다. 사람과 코로나가 공존하지만, 언제든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다시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위드 코로나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숙주와 병원체의 크고 작은 전쟁은 지속된다. 원래 사람은 각종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와 함께 살아왔다. 이 속에서 중요한 점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생명의 희생을 줄이는 것이다.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는 누가 제일 많이 피해를 보게 될까? 바로 건강 취약층이다. 노인층이나 만성질환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30대 이하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접종을 받지 않아도 거의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감염됐어도 흔한 계절 감기처럼 지나갔다는 이들도 적지 않으며, 심지어는 아무런 증상도 없었다는 젊은층도 많다. 하지만 60대 이상 고령층이나 만성질환 등을 앓고 있었던 이들은 달랐다. 사망률이 훨씬 높았다. 2020년 국내 사망 통계를 보면 코로나19 사망자의 55%는 80살 이상이었다. 나이대별 코로나19 사망률을 보면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30~59살은 0.2명에 그쳤지만, 고령층에서는 급격하게 증가해 60대는 1.8명, 70대는 7.5명, 80대는 27.3명을 기록했다.
예방접종으로 사망 및 심각한 후유증 발생 위험이 크게 낮아졌지만, 여전히 건강 취약층은 존재한다. 이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중환자실 등에 입원해 여러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가며 감염을 극복해야 한다. 예방접종을 해도 중증으로 악화될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중환자 등이 많아지면 코로나19에 감염되어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다시 생길 수 있다. 위드 코로나는 건강 취약층을 치료하고 돌보기 위한 의료 자원, 즉 의료진, 격리병상, 치료제와 증상 해소를 위한 각종 약물 등이 충분히 확보돼 있는 것이 전제다. 지난해보다는 여건이 다소 나아졌지만 최근 확진자 수가 크게 늘면서 중환자를 위한 병상은 9월 말 기준 서울 등 수도권이 55%가량 채워진 점은 눈여겨봐야 한다. 중환자실의 마련도 중요하며 동시에 이제는 건강한 사람은 자택이나 생활치료센터 등에서 스스로 이겨내고 중증 악화 가능성이 보이면 재빠르게 대처하는 방안도 준비해야 한다.
지난 7월 경기도 화정역 인근 임시선별검사소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고양/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코로나 입장에서 일상회복 단계를 해석하면 위드 코로나에 대한 이해가 쉬울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원래 어떻게 자신들의 종족을 유지해나갈 것인가에 총력을 쏟는다. 어쩌다 보니 숙주인 사람이 죽거나 심한 합병증에 시달리는 것이지, 사람을 괴롭히는 게 바이러스가 노린 진짜 목적은 아니다. 만약 숙주인 사람이 코로나에 걸려 죽으면,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좋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숙주가 없으면 바이러스도 없다. 바이러스 입장에선 숙주는 많을수록 좋고, 이들이 돌아다니면서 되도록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실제 바이러스 입장에서, 메르스 사태를 돌아보면 바이러스 치명률이 20~30% 정도로 너무 높아 숙주인 사람이 사망해버리거나 중환자실에 너무 오래 격리돼 있는 문제가 있었다. 역설적으로 치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이 메르스보다 규모도 크고 오래 유지되는 이유다.
결국 사람들의 일상회복 단계인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면 바이러스 입장에서도 종족 번식에 더 유리하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더 많이 활동하면 바이러스도 더 잘 퍼지게 된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 ’ 등의 약화로 숙주끼리 더 많이 접촉하니 역시 바이러스의 종족 유지와 번식에 훨씬 유리하다 . 거의 모든 국민이 예방접종을 받으면 코로나 19가 퇴치될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예방접종이 많이 이뤄진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 19 확진자가 오히려 더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또 다른 예로는, 최근 유행인 델타 변이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족 번식에 더 유리한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변이 이전의 바이러스를 사람의 면역계가 인식해 방어에 나서자, 진화한 바이러스가 유력 종족이 돼 다수를 점한 상태다. 그래도 예방접종의 효과가 변이 바이러스에도 나타나기 때문에 중증 및 사망 위험은 줄어든다. 다만 예방접종이 감염 자체를 획기적으로 줄이지는 못하므로 위드 코로나 단계에서 확진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흔히 걸리는 감기의 원인 바이러스 가운데 하나는 코로나이며,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우리가 잘 대처하면 감기 수준의 바이러스로 남을 수 있다.
초등학교 대면수업이 확대된 9월6일 서울 강북구 번동초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위드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감염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시민의 자발성이다. 그동안 많은 피해를 겪으면서 시민들이 충분히 배운 만큼 앞으로도 정부의 규제가 있을 때만 움직여서는 곤란하다. 스스로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해서 예방접종, 손씻기, 마스크 쓰기 등이 필요하다. 자신의 건강뿐 아니라 혹시 모를 위험에 빠지기 더 쉬운 취약층을 위해 모든 사람이 습관을 지키는 자율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자율적인 습관의 효용은 이미 수치로 확실히 드러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호흡기 결핵, 만성 하기도 질환, 폐렴으로 인한 사망률은 이전 해보다 각각 18%, 8.2%, 4% 줄었다. 결핵으로 인한 사망은 지난해 1223명으로 코로나19 사망자 수인 950명보다 많다. 이처럼 호흡기 질환 사망률이 감소한 데에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 착용이나 손씻기 등 위생수칙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는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과 같은 정책의 결정에 관련 전문가는 물론 시민 참여가 절실하다. 백신 접종 뒤에는 거리두기 인원에서 제외하거나 마스크 쓰기의 면제 등처럼 정부가 어떤 규제를 푼다거나 혜택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규제가 의미 없도록 시민 스스로의 건강 습관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9월17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들의 국회 앞 합동분향소에서 관계자가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아울러 우리의 경우,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의료진이 최전선에서 싸웠고, 많은 이들이 일부 부작용을 감수하고 예방접종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 심지어 생업의 위협을 인내하면서 영업에 제한을 둔 방역 정책을 따르는 등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동참했다. 반면 미국의 경우 한 항공사에서 백신을 맞지 않았다며 수백명을 해고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부작용에 대한 걱정을 비롯해 어떤 사유로 백신 접종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적인 차별이나 혐오를 받아서도 곤란하다. 감염병 재난은 함께 살아야 함, 즉 공존으로 벗어날 수 있다. 혐오와 차별, 배제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된 지금, 다른 나라의 감염 상황 역시 우리의 미래의 재난으로 연결된다. 경제적 이유 등으로 예방접종을 하지 못한 나라의 상황을 개선해야 결국 우리의 재난도 짧게 끝낼 수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양중 전 <한겨레> 의료전문기자·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