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테이스티훈은 지난해 ‘치즈퐁듀치킨’ 요리 실패 영상으로 역대급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쾌한 실패를 통한 성공과 시선끌기용 혐오 연출은 구분돼야 한다. 유튜브 갈무리
얼마 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마이클 샌델 교수와의 대담에서 ‘먹방 유튜브로 성공하여 기존 방송 엘리트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한국의 경쟁 환경’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것을 반박할 생각은 별로 없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극소수의 성공 사례를 가리키며 ‘저것 봐, 너도 저렇게 하면 된다고’라고 말하던 데서 한 발짝도 못 나간 발언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먹방 콘텐츠가 어느새 레드오션이 됐다는 생각이 떠오른 건 이 대표의 발언 때문이다. 먹방은 이미 외국에서도 많이들 따라 하고 있다. 한국의 먹방 유튜버들은 특유의 과한 리액션과 추임새를 내뱉는 외국 유튜버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미 엄청난 식사량과 화려한 입담을 뽐내던 기성 코미디언들이 취미로 먹방을 시도하면 이들과도 어려운 경쟁을 해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이후 헬스장을 열지 못하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먹방을 시도하다 인기를 끌기 시작한 헬스트레이너 출신 유튜버, 쿡방을 겸하는 셰프들의 먹방과도 경쟁해야 한다. 먹방 유튜버들은 새로운 경쟁에서 승리하느냐, 살아남느냐의 문제뿐 아니라 적어도 그동안 확보해둔 주목도와 조회수를 경쟁자들에게 상당 부분 빼앗기게 되어 그 자체로 상당한 손해를 본다.
먹방으로 성공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성공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이미 포화될 대로 포화된 먹방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길이 없지는 않다. 연예인 버금가는 입담 벼리기, 외모 가꾸기, 누구보다도 더 맛있게 먹기,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희귀 음식 구해서 먹기, 더 많이 먹기, 더 빠르게 먹기, 이색적인 장소에서 먹기, 창의적인 방식으로 먹기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머리를 굴려 새롭고 참신한 방법을 생각해내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아이디어를 실제로 행하기는 곱절로 어려울 테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쉬운 방법으로 대박을 터뜨린 먹방 유튜버가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사람은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도 먹방으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게임 유튜버로 활동하다가 사이드 프로젝트(부업)로 먹방을 시도한 ‘테이스티훈’은 영상 3회차 만에 먹방 역사에 전례 없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퐁듀(퐁뒤) 기계를 사용해 ‘치즈퐁듀치킨’을 만들어 먹으려 했다. 그가 간과한 사실은 이 요리를 위해 별도의 퐁듀용 치즈를 쓰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치즈에 우유나 크림을 첨가해 점성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걸 모른 채 평범한 모차렐라치즈를 프라이팬에 녹인 뒤 그대로 중탕기에 부었다. 끈적끈적한 치즈를 곧바로 기계에 부으며, 이 방식이 맞는지 스스로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끈적한 치즈는 나선형 펌프를 타고 분수 뚜껑을 밀어내며 회오리쳤다. 치즈 회오리는 사방으로 튀면서 테이스티훈의 안면을 강타했다. 예상치 못한 참사에 그는 기계를 끄고 엉거주춤하다가 흩어진 치즈 조각을 수습하고 어설프나마 치즈가 얹힌 치킨을 먹었다.
이 영상은 바이럴(입소문)을 타면서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졌고, 1500만회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테이스티훈은 이 영상으로 일약 가장 유명한 먹방 유튜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테이스티훈의 이 영상이 제대로 먹는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먹방의 본령을 완벽하게 배반한 영상이자 폐기처분해 마땅한 엔지(NG) 영상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한 먹방을 그대로 내보냈고 스타가 되었다. 그의 성공은 ‘성공한 실패’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만 적당히 실패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먹는 모습이 어설프다거나, 음식이 먹음직스럽게 촬영되지 않았다거나, 멘트가 재미없다거나, 전체적으로 지루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중간하게 실패하면 그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고 사라져버린다. 민망해지거나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파안대소부터 터뜨리게 만드는 ‘더 우스꽝스러운 실패’여야 한다.
우스꽝스러운 실패의 역설적인 성공 사례는 영화계에서는 역사가 길다. ‘못 만든 영화’의 대명사 <더 룸>(2003)은 구미의 젊은 네티즌 사이에서 그 자체로 개그 소재가 되고 ‘밈’의 소재가 된다. 개봉 당시에는 본 사람이 거의 없이 대중에게 철저히 외면받았지만, 10년이 지나고 뒤늦게 영화의 ‘우스꽝스러움’이 바이럴을 타면서 컬트 영화로 거듭났고, 이후 주기적인 팬 상영회가 열림은 물론 연극과 비디오 게임, 뮤지컬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훗날 주연배우 중 하나가 <더 룸>의 제작 과정을 회고한 책을 냈는데, 배우이자 감독인 제임스 프랭코가 이 책을 영화화하기도 했다.
우스꽝스러운 실패의 성공 역설 보여
오직 시선끌기용 혐오 연출과 달라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과 <클레멘타인>(2004)은 못 만든 한국 영화의 대명사로 꼽힌다. 둘 다 개봉 당시에는 완전하게 외면당하고 감독의 커리어는 바로 끝장날 정도로 망했지만 몇년 뒤 영화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역시 한국 영화 명작은 클레멘타인이죠”라는 식의 반어적 농담이 유행했다. 뒤이어 몇몇 젊은 네티즌이 해당 영화들에 ‘별점 세례’(별점 테러의 반대 경우)를 퍼부었고, 영화의 우스꽝스러운 연출과 스토리, 연기 등이 농담 소재가 되면서 비슷한 연도에 개봉해 어중간하게 흥행한 영화들보다 훨씬 많이 회자되는 영화가 되었다. 그러니까 망하더라도 시원하게 ‘폭망’하면 어지간한 수준의 콘텐츠보다 훨씬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하면 되겠다. 하나는 창의적인 발상으로, 더 양질의 콘텐츠로 승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누구라도 한번 보면 웃음부터 터뜨릴 수밖에 없는 우스꽝스러운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는 저 우스꽝스러움과 혐오스러움을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조회수만 올리면 된다는 일념으로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는다거나, 혐오스러운 장면 연출로 소음을 일으켜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든 그쪽으로 몰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이편이 훨씬 쉽기 때문일 테다.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서 극단적 도발자들의 ‘나쁜 관종’ 현상을 분석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