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위에서 헬리콥터처럼 떠다니며 자녀의 모든 일에 간섭하려 드는 부모를 ‘헬리콥터 부모’라고 합니다. 요즘은 손자 손녀의 일에 신경 쓰면서 학업, 학원 관리, 나아가서 사생활까지 챙기는 조부모가 많아졌습니다. 이분들을 일컬어 ‘헬리콥터 조부모’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맞벌이로 바쁜 자녀들의 아이 육아를 담당하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자 손자 손녀의 개인 매니저까지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에는 사연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애씨는 남편과 사별 후 혼자 살고 있는 70대 여성입니다. 자식들은 모두 잘 자랐습니다. 민애씨는 손자 손녀가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돌보아 주었습니다. 유독 큰손녀를 애지중지했는데 최근에 그 손녀 때문에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손녀가 직장에 들어가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민애씨가 보기에 영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손녀가 남자친구에게 여러번 돈을 빌려주고 아직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남자친구는 빌린 돈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해서 거의 다 날렸다고 합니다
.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큰손녀는 남자친구가 자신을 사랑한다며 그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남자친구는 대기업에 멀쩡하게 다니고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잘생긴 ‘훈남’입니다.
민애씨는 매일 손녀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헤어지라고 하고, 큰아들 부부에게도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합니다. 손녀는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는 일이 반복되다 아예 민애씨를 수신 차단했습니다.
아들 부부가 걱정이 되어서 손녀의 남자친구를 직접 만나 확인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능력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남자친구는 올해 안에는 빌린 돈을 모두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다만 코인 생각이 나면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는 각별히 주의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민애씨가 생각하기에 돈을 빌려서 위험해 보이는 투자를 하는 남자를 만나는 손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은 손녀 남자친구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그에게
손녀와 당장 헤어지라고 전화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손녀의 남자친구 직장에 찾아가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손녀의 남자친구는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을 것이고 죄송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민애씨는 그 뒤로도 너무 불안해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이미 수신 거부된 손녀의 휴대폰에 계속 부질없는 전화를 걸고 있었습니다.
민애씨에게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민애씨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한량’이었고 돈 한푼 스스로 벌어 오지 않았습니다. 주로 노름을 하거나 술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성격은 호탕해서 돈을 펑펑 썼기 때문에 동네에 따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부모에게서 꽤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음에도 이내 탕진했고 민애씨의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애씨의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면서 민애씨와 형제들을 어렵게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밤늦게 노름을 하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어머니를 때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큰딸인 민애씨는 동생들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못 보게 하려고 일찍 자도록 했고, 어머니의 신세 한탄과 아버지에 대한 욕을 듣는 것은 어린 민애씨의 몫이었습니다.
이런 어린 시절이었지만 민애씨는 성실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여상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노름이나 폭력과는 거리가 먼 성실한 사람이었고, 민애씨는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었습니다. 민애씨는 자신의 과거가 대물림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무척 안도했습니다. 민애씨는 ‘돈을 함부로 하는 것과 사람을 때리는 버릇’은 절대 안 변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녀가 민애씨 어머니의 신세처럼 될까 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손녀가 결혼 후에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이혼하는 모습이 꿈에 나타나 식은땀을 흘리고 깨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민애씨의 트라우마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손녀 남자친구가 돈을 빌려 코인에 투자해 손해를 보았다고 하는 모습에서 민애씨는 도박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고 폭력을 일삼았던 아버지의 모습까지 연상된 것입니다. 1960~70년대 우리나라는 가부장적인 사회였고 가정폭력이 만연하였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가정에서 폭력을 쓰더라도 직장생활을 잘하고 돈을 잘 벌어오면 모든 것이 용서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속에서 가정폭력의 트라우마가 만들어졌고, 2021년 현재에도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폭력이 있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 중에는 민애씨처럼 트라우마를 가지고 사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답습하여 폭력을 따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름·폭력 일삼던 아버지 연상돼
과거 자신 떠올라 우울·불안 겪어
폭력이 있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는 ‘권위를 가진 존재에 대한 분노’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권위를 가진 존재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 직장상사, 선배까지 권위를 가진 존재는 많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회상시키게 될 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강한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이 분노가 자신으로 향할 때는 스스로의 가치가 낮아 보이고 희망이 없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민애씨는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해서 자신의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대해 상담을 받았고, 손녀를 통제하고 조정하려 할수록 손녀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민애씨가 손녀의 남자친구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민애씨가 손녀에게서 느끼는 심한 우울감과 불안의 근원은 손녀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이가 어머니의 곁을 떠나서 유치원에 갈 때 떨어지지 않으려고 우는 것을 ‘분리불안’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오래 양육한 조부모의 경우에 반대로 손자 손녀와 분리되는 것에 대한 ‘분리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손녀도 할머니의 기억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겠지만 진심으로 공감해보면 좋겠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행동 뒤에는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