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청년은 누구이며 어떻게 정의되고 있을까? 한쪽에선 경제적 빈곤과 주거 불안에 시달려 분노하고 절망하는 존재로 그려내지만, 다른 한쪽에선 주식과 비트코인에 열광하고 ‘플렉스’(과시)하는 철없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우리 사회가 정치·상업적 목적에 따라 각자의 입맛대로 청년을 규정하고 해석을 남발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청년 권리를 보장하고 청년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청년기본법’이 제정됐다. 이에 근거해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은 법정기념일인 ‘청년의 날’로 지정된다. 오는 18일은 제2회 청년의 날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청년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접근하고
있을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다음달 20일 열리는 제12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청년들이 직접 청년담론을 논의하고 해법을 찾아보고자 ‘청년포럼’을 마련했다. 이승윤(41) 중앙대 교수(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 부위원장)가 좌장을 맡고 20~30대 청년 활동가인 변재원(27)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이슬아(29) 헤엄출판사 대표, 조소담(30) 미디어 닷페이스 대표,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를 쓴 천주희(35) 문화연구자가 패널로 참여한다. 지난 6월부터 세차례에 걸친 화상회의를 통해 청년담론에 대한 토론을 벌였고, 추가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청년들의 다양한 모습과 시도를 보려는 노력을 상실했다”며 “일상 속에서 청년들이 바꿔나가는 사회 활동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청년 이슈가 뜨겁다. 지금 논의되는 청년담론을 어떻게 보나?
이승윤 세대주의로 설명되는 청년담론을 비판한다. 경험의 차이에서 나오는 세대 차이는 인정해야 하지만,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착취한다거나 하나의 세대를 묶어 담론을 형성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고용 불안 문제를 기성세대와 청년의 갈등으로 설명하거나 사회적 격차를 남자와 여자의 싸움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
천주희 ‘88만원 세대’가 등장한 2000년대 중반부터라고 생각하면 청년담론은 제법 오래 논의됐다. 청년이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이고, 사회재생산의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논의가 시작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개인으로 존재하던 청년이 사회적 집단으로서 호명됐다.
변재원 정말 청년에 관심을 가진 걸까? 우리 사회는 청년의 삶을 너무나 쉽게 정의한다. ‘이대남’, ‘이대녀’라는 표현은 특정 정당 지지율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면 언급되지 않는다. ‘엠제트(MZ)세대’도 상품 소비자로서만 호명된다.
―담론을 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언론·정치권의 책임을 지적하는 것인가?
조소담 정책에 청년의 목소리를 담으려는 시도 자체는 환영한다. 다만 이 과정에 일부 청년의 자리를 만들어 ‘구색 맞추기’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청년 정책 관련 회의에 간 적이 있다. 참석자는 대부분 연구나 분석을 업으로 하는 중장년 교수, 전문직 종사자였는데, 과연 이 구성원들이 청년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천주희 담론은 언어를 통해 형성되기에 현실을 잘 언어화할 수 있는 특정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긴다. 한국에서 청년담론이 남성, 대학생, 수도권, 비장애인을 중심으로만 논의되는 이유다. 담론의 주된 생산자들이 새롭게 질문을 만들어가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담론은 우리의 일상과 정책, 제도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담론을 만드는 주체들이 좀 더 신중하게 어떤 청년의 이야기가 배제되고, 과잉 대표되는지 살펴야 한다.
이슬아 청년이 마주한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들도 분명 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청년의 사랑과 우정에 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가. 사랑과 우정 때문에 삶이 많이 바뀌기도 한다. 청년들이 어디에서 사람을 만나 우정을 맺고 관계의 지평을 넓히는지도 관심을 두면 좋겠다.
6월9일 청년포럼 참가자들이 화상회의를 통한 첫 모임에서 청년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 위부터 이슬아 헤엄출판사 대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회의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이승윤 중앙대 교수(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 부위원장), 천주희 문화연구자, 조소담 미디어 닷페이스 대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과거 정치 형태와는 다른 소규모·일상 정치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는데?
이승윤 이전 세대가 민주화, 독재 타도 등 좁고 힘이 모일 수 있는 사회 운동을 했다면, 지금 청년들은 다양한 주제와 방식을 활용해 사회 운동을 한다. 운동가보단 활동가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동안 정당에 들어가 정책화하는 경로에 익숙했다면, 이제는 시민사회·공동체 속에서 대안을 마련하면서 가보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조소담 과거엔 정치가 어떤 인물에 대한 기대라거나 투표와 가까운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삶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스템에 어떻게 목소리를 밀어 넣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정치다. 예를 들어,
엔(n)번방 사건 이후 경찰의 디지털 성범죄 모니터링 부재에 문제의식을 느낀 시민들이 단체를 만들었고, 신고를 위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이런 실천이 제도로도 연결되고 균열을 만든다. 지난 8월 출범한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에 ‘추적단 불꽃’, ‘프로젝트 리셋’이 위원으로 위촉됐다. 기존 시스템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슬아 장혜영 의원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작년에 함께 의정보고서를 만들었다.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듣는 과정을 쉬운 언어로 적어봤다. 생소하게 느낀 이들이 있었지만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변재원 연결성을 이용한다는 점이 요즘 세대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활동가를 위한 세미나 참여자를 모집했다. 공무원이나 활동가 모두 공공성을 매개로 사회변화를 꿈꾸는 사람인데, 활동가는 저임금·저숙련 노동자로 인식되는 것이 안타까워 함께 전문성을 기르고 다양한 삶을 공부하고자 기획했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는 50여명이 모였다.
―청년 문제를 지속해서 논의하려면?
이승윤 청년들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의견 유통구조’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여기엔 이력이 화려한 청년들 말고, 지역에 속한 ‘동네 청년’들을 참여시키자. 주변의 문제를 발굴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민관이 협력해서 대안을 찾아보자. 역사적으로도 새로운 목소리와 시도를 통해 균열을 내는 세대는 주로 청년이었다.
천주희 청년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이유는 결국 다음 세대도 같은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과거엔 거대 담론과 국가 차원에서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했다. 이제는 미시적이고 일상에서 어떻게 평등하고 존엄한 사회를 만들지 이야기하고 협력해야 한다. 복잡 다변한 환경 속에서 개인의 취약성은 서로 다른 존재와 만나 보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미래는 상호 돌봄과 의존 속에서 형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hyeb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