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을 찾아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범여권 인사 및 언론인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고발장 등을 전달한 이로 지목된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 6일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한 이후 언론 접촉 등을 피하며 잠행을 이어가던 손 검사는, 9일 오후 대구고검에서 퇴근하며 기자들에게 “전에 저의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는 기존 입장을 짧막하게 밝혔을 뿐이다.
이번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웅 의원은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손준성 검사에게 고발장을 받았는지 여부에 ‘기억나지 않지만 그랬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 의원은 “기사에 나온 화면 캡처 자료에 의하면 제가 손모씨(손 검사)라는 사람으로부터 파일을 받아서 당에 전달한 내용으로 나와 있다. 이 자료들이 사실이라면 정황상 제가 손씨로부터 그 자료를 받아 당에 전달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혹의) 진위 여부는 제보자의 휴대전화와 손 검사의 피시(PC) 등을 기반으로 조사기관에서 철저히 조사해 하루빨리 밝혀주길 바란다”고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출처 없는 괴문서로 국민을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9일 대구 수성구 대구고검 청사로 직원들이 출입하고 있다. 대구/옥기원 기자
의혹을 받는 당사자들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손 검사는 사실상 추가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고검 공보관을 겸하고 있는 손 검사는 기자들과의 접촉을 일체 하지 않고 있다.
9일 아침 8시 이전부터 손 검사 입장을 듣기 위해 대구고검 앞뒤 출입문에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손 검사 사무실 창문에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종일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대구고검은 청사 내부의 기자들 출입을 막고 있다. 청사 내부 구조를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손 검사가 취재진을 피해 법원 출입구나 고검 별관으로 들어와 본관 사무실로 출근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손 검사는 전날에도 기자들을 피해 출·퇴근했다. 앞서 지난 6일 그는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제가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첨부 자료를 김 의원에게 송부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와 이로 인한 명예훼손 등 위법행위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흘 만인 이날 오후 5시40분께 퇴근하면서는 “전에 저의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고만 했다.
9일 손준성 검사가 일하는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실 창문에 가림막이 쳐져 있다. 대구/옥기원 기자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지금까지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온 내용만으로는 수사기관이 자신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대검 감찰부 진상조사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감찰부는 손준성 검사가 사용했던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 컴퓨터에서 고발장 관련 파일 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포렌식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감찰부는 검-언유착 의혹 제보자인 지아무개씨 실명 판결문 유출 의혹을 밝히기 위해 형사사법정보시스템(킥스·KICS)을 통한 열람기록도 분석 중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재판부 사찰 의혹 조사 때 해당 컴퓨터를 조사한 적이 있고, 손 검사의 판결문 열람기록이 확인되더라도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이 없다고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감찰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텔레그램으로 전달한 실명 판결문 출력본이 킥스로 출력했을 때와 달리 일련번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부분을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감찰 범위를 넘어선다.
고발 사주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는 대검 감찰부가 강제수사에 나설 경우, 수사 인력을 추가로 파견받을 가능성이 크다. 박범계 장관은 9일 오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심사에서 “(검찰) 감찰 조사는 간단하다. 빨리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가정적인 조건 하에 법률검토를 했더니 적어도 5개 이상의 죄목에 해당할 여지가 있어서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손현수 기자, 대구/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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