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대원들에게 인터넷 여론 조작 활동 등을 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이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2심에서 면소 판결한 부분과 무죄로 판단한 일부 직권남용 혐의를 대법원이 유죄취지로 파기하면서, 형량이 늘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9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배 전 사령관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배 전 사령관은 2011년 3월부터 2013년 4월까지 댓글 공작 조직인 ‘스파르타’를 운영하며 기무사 대원들에게 당시 여권 지지나 야권 반대 등 정치 관여글 2만여건을 온라인상에 게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대원들에게 이 전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쓴 포털사이트 아이디(ID) 수백개 가입 정보를 조회하는 등 직무 범위와 무관한 불법활동을 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배 전 사령관이 직권을 남용해 부대원들에게 의무가 아닌 일을 하게 했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다만 트위터 활동 중 일부는 증거 부족과 공소시효 만료로 각각 무죄와 면소 판단했다. 2심은 1심보다 낮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치 관여글 게시 등 온라인 여론조작 관련 직권남용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고, 대통령·정부 비판글을 쓴 이의 신원을 조회한 부분은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면소 판결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2심이 무죄로 판단한 직권남용 혐의 일부를 유죄로 봤고, 또 면소 판결한 혐의도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배 전 사령관이 대원들에게 온라인 여론조작 활동을 지시한 행위는 동일한 일련 선상의 사안으로 봐야 하므로, 혐의를 각각 판단할 것이 아니라 ‘포괄일죄’로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배 전 사령관이 대원들에게 온라인 여론조작 트위터 활동을 지시한 행위는 동일한 사안에 관해 일련의 직무집행 과정에서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로 일정 기간 계속하여 행해진 것이므로, 포괄하여 하나의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했다. 또 배 전 사령관이 대원들에게 위법한 지시를 내려 여론조작 등을 하게 한 행위는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직권남용이 맞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쪽은 이번 판결과 직권남용 혐의가 쟁점인 ‘사법농단’ 사건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직권남용죄는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 성립한다. 자신의 직무 범위에 있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켜 위법한 일을 하도록 했을 때 성립하는 죄다. 사법농단 사건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일선 법관들에게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지시한 것이 직무 범위에 해당하는 지가 쟁점이다. 독립된 주체인 판사가 다른 판사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등 기소된 전·현직 판사들에게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권한이 없기 때문에 남용도 없다는 논리다. 반면 백 전 사령관 사건의 경우, 그가 다른 대원들에게 일을 지시할 권한이 있고, 이를 남용해 위법한 행위를 지시했다고 대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