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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재판개입 더는 없도록” 헌재 판단만 남았다

등록 2021-09-05 09:09수정 2021-09-05 09:11

[한겨레S]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종착역 앞둔 법관 탄핵 재판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지난 6월 자신의 탄핵소추 사건 첫 변론기일에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지난 6월 자신의 탄핵소추 사건 첫 변론기일에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피청구인(임성근 전 판사) 지시로 판결문의 톤 다운이 이뤄진 것입니다.”(국회 쪽 대리인단)

“친한 후배가 지나치게 비판받을 것을 우려해 조언해준 것에 불과합니다.”(임 전 판사 대리인단)

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 심판의 마지막 변론기일이 열린 지난달 10일. 같은 사건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이 맞부딪쳤다. 임성근 전 판사는 2014년 2월부터 2년 동안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일하면서, 청와대 관심 재판 절차와 논리 구성에 개입하거나(세월호 7시간 의혹 명예훼손 사건) 벌금형 종결 대신 정식 재판에 회부하려는 결정을 재고하게 해(프로야구 선수 도박 사건) 헌법 심판대에 올랐다. 그중 민변 변호사 체포치상 사건은 판결문의 ‘양형이유’를 수정하게 한 것이다. 형사 판결문에서의 양형이유는 판사가 공소사실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밝힌 뒤 이런 형을 내리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다. 딱딱하고 건조한 법리 설시와 다르게 판사의 ​가치관, 신념이 드러나기도 한다. 임 전 판사는 이 양형이유에 ‘빨간펜’을 들었다. “논란될 만한 표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논란될 표현, 톤 다운 어떨지”

사건은 2013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집회 방해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2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은 서울 남대문경찰서의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 규탄 집회’ 금지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질서유지선 설치의 적법 여부를 두고 경찰과 마찰이 빚어졌고 변호사들은 그 과정에서 남대문서 경비과장을 20m 끌고 갔다는 혐의(체포치상 등)로 재판에 넘겨졌다.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집회 제한의 정당성을 가리는 행정소송까지 논란이 증폭됐다. 변호사들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린 2015년 8월20일 법원 판단에 관심이 쏠릴 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최창영)는 민변 변호사 4명에게 150만~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판결문 양형이유에는 10개월여 재판으로 형성된 재판부 시각이 드러났다.

‘피고인(변호사)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지키고자 집회를 개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행동과 표정에 피해자(경찰)에 대한 분노와 공격적 태도가 나타나 있다. 그렇다고 분쟁의 원인이 된 피해자의 직무집행도 적법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피고인에게 이번에 한해 특별히 선처하기로 해 벌금형을 선고한다.’ 선고를 마치고 3시50분 판결문이 등록됐다.

그런데 임성근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제동을 걸었다. 판결문과 언론 배포용 설명자료를 공유받은 그는 공보관에게 자료 배포를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최창영 재판장(현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수석부장께서 판결문 양형이유에 일부 논란이 있을 만한 표현들이 있는 것 같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톤을 다운하는 것이 어떤가 말씀하셨습니다.”(2019년 10월23일 임 전 판사 형사재판 1심, 최 전 판사 법정 증언)

임 전 판사는 그해 5월 법원 형사부 판사들에게 ‘판결 원본에 의한 선고’를 당부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유무죄 판단도 중요하지만 양형이유 때문에 논란되는 경우도 많아 표현을 순화해야 한다’, ‘민변이나 일부 언론이 선처한다는 표현 등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 선고까지 마친 판결문 2~3곳의 수정을 권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 등록을 취소하고 내용 다수를 삭제, 수정했다. 그 결과 남겨진 판결문만 봐서는 피고인들의 헌법상의 기본권 행사는 유리한 양형요소로, 공격적 태도는 불리한 양형요소로 고려한 사실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임 전 판사는 수정된 판결문을 확인하고 공보관에게 메일을 보냈다. “잘 수정됐군요. 그대로 배포해도 되겠습니다.” 최 전 판사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판결 정리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비교적 잘 정리가 된 듯합니다.” 수정된 판결문은 이날 오후 5시54분 재등록됐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행정권자들이 법원을 향한 비판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언론보도나 여론 대응에 골몰했던 또 하나의 정황이다. 최 전 판사를 비롯한 재판 당사자들은 ‘임 전 판사의 권유는 참고사항이었을 뿐 재판부가 합의해 판단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임 전 판사는 이를 근거로 “호형호제하던”, “법원 합창단에서 함께 활동한” 선배 법관의 조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회 쪽 대리인단은 그가 형사수석부장판사로서 법관 근무성적 평정에 관여했고, 당사자가 먼저 조언을 요청하지 않았으며, 업무 시간에 사무실에서 수정 요구가 이뤄졌고 이행 여부까지 확인했다는 점에서 지시가 맞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특정 의도로 어떤 요구, 요청을 하는 순간 위헌성과 위법성은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상대방이 조언으로 받아들였는지, 지시로 받아들였는지에 따라 그 행위가 달리 평가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8월10일 헌재 탄핵심판 최종 변론기일)

임성근, 판결문 배포 보류 뒤
시민단체-언론 반발 우려된다며
양형이유 내용에 “톤 다운” 지시
2심 무죄에도 “재판 관여는 맞다”

H4s헌재 판단에 쏠리는 눈

임 전 판사는 지난 8월12일 형사재판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다만 “위헌적 행위라고까지는 아니한다”면서도 재판 관여는 맞다고 재차 확인했다. 임 전 판사 행위가 위헌이라고 못박은 1심이 탄핵소추의 결정적 근거가 된데다가 헌재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결국 헌재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국회 쪽 대리인단 최후변론이다.

“(임 전 판사는) 입법 공백에 기댄 형사 무죄 판결을 전가의 보도인 양 휘두르며 헌법의 공백까지 요구합니다. 제2, 제3의 임성근 판사에게 헌법과 법률에 따른 재판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만들어주십시오.”

헌재의 최종 판단만이 남았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 이후 여전히 진행 중인 ‘사법농단 재판’을 법정 르포 형식으로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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