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국민의힘)이 각각 e스포츠경기 체험과 ‘민지(MZ)야 부탁해’ 유튜브 캠페인을 통해 젊은 세대 표심을 겨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튜브 갈무리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정치인의 ‘탈꼰대’ 흉내
2011년 ‘셔플댄스’ 유행이 전국을 강타한 일이 있었다. 유치원에서도 가르칠 정도였다. 그리고 1년 뒤 열풍이 다 식어갈 무렵 한 대기업에서 몹시 민망한 텔레비전(TV) 광고를 송출했다. ‘김 부장’이 부하직원들과 친해지기 위해 인터넷에서 셔플댄스 추는 법을 검색하고 혼자서 몰래 연습한 뒤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춤을 춘다. “아는 만큼 가까워집니다”라는 문구가 나오면서 끝난다. 해당 광고는 일부 젊은 시청자들로부터 비웃음과 조롱을 받았다. 이들의 조소 섞인 반응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같이 유행 가요 부르고 춤추는 상사가 아니라 야근, 회식 강요하지 않고 월급 제때 주는 상사를 원한다. 우리는 상사와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 몇몇 대선 경선 후보들이 ‘틱톡’(최대 15초짜리 동영상 공유 플랫폼) 촬영하고, 이상한 챌린지 하고, 롤(League of Legends) 게임 하고, 민지(MZ)가 어쨌다느니 하는 모습을 보면 저 황당한 광고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임홍택 작가는 <90년생이 온다>에서 신 직장인 꼰대 체크리스트를 소개한다. 항목은 23개인데, 테스트 결과 해당 사항이 하나라도 있으면 꼰대라고 불려야 한다. 임 작가가 의도한 바는 그만큼 노력을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언젠가,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천천히 개선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과 꼰대처럼 보이지 않기 위한 노력은 완전히 다르다. 그나마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것은 후자의 노력이다. 하지만 어쭙잖은 노력은 오래가지 못한 채 그동안 가져왔던 관성과 반드시 충돌한다. 그렇게 발생하는 잡음의 우스꽝스러움은 중식당에서 직원들에게 먹고 싶은 거 뭐든 주문하라고 해놓고, 본인이 먼저 짜장면 한그릇을 시키는 상사에 비견된다. 처음부터 저렴한 메뉴로 통일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이런 사람을 더 경멸하는 청년 정서부터 이해해야 한다.
어설픈 ‘탈꼰대’ 제스처에 대하여 슬라보이 지제크는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주말 오후, 아버지는 아들이 할머니 댁에 방문하기를 원한다. 고전적으로 권위적인 아버지라면 “할머니 댁에 다녀와라. 네가 지금 뭐라고 하건 상관없어. 할머니를 잘 모시는 게 네 의무야”라고 할 것이다. 비권위적인 아버지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할머니께서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지? 꼭 갈 필요는 없어. 가고 싶으면 가는 거야.” 그의 메시지에는 ‘할머니 댁에 가기를 바란다’와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을 스스로 원해야 한다’라는 이중의 명령이 있다. 아들은 그것을 모를 리 없으며 따라서 역설적으로 비권위적인 아버지에게서 더 큰 압력을 느낀다. 지금 정치인들이 청년, 엠제트(MZ)세대, 2030, 90년대생들의 의견을 경청한다거나, 이해해본답시고 취하는 과시적 제스처들에서 청년들이 받는 인상을 지제크의 이야기에 비유할 수 있다.
꼰대에 대한,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이유는 제대로 된 어른으로서 롤모델의 형상이 붕괴했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를 채울 만한 새로운 롤모델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가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면 혼란이 가중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으레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에서 답을 찾는다. 꼰대를 잔뜩 욕하던 젊은 사람들이 갑자기 지극히 권위적인 ‘스트롱맨’에게 열광하게 된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게 없다. 이것은 역이용할 여지가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진영은 ‘엄격한 아버지’, 진보진영은 ‘자상한 부모’ 모델과 결부되어왔다. 지금 보수진영은 젊은층에 영합하기 위해 ‘엄격한 아버지’를 연성화하다 못해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경박해지고 있다. 엄격한 부모, 능력 있고 책임감 있고, 험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근엄한 어른의 빈자리를 점유할 기회다.
이제 와서 젊은층에 영합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기존 방침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모습을 보여봤자 별 소득은 없다. 오히려 부화뇌동으로 보이고 우유부단하게 보이고 만만하게 보인다. 젊은이들이 정부 여당과 기성세대에 갖고 있다고 전해지는 페미니즘의 어떤 면들, 위선, 내로남불 등 문제에 결부된 불만, 분노는 몸통이 아니라 잔가지에 불과하다. 예컨대 정부 여당이 페미니즘 관련 어젠다나 메시지를 철회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른바 ‘이대남’이라고 불리는 집단은 페미니즘과 관련한 또 다른 불만을 계속해서 찾아내거나 만들어낸다.
해결 안돼도 ‘나빠도 새것이 낫다’
인기영합용 제스처로 표심 못잡아
정치적 상상력이 협소하고 빈약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몸통’의 문제를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며 그 자체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대신 그 끓어오르는 불만을 표출할 만한 대상을 찾는다. 포퓰리스트, 정치 유튜버, ‘사이버 레커’들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공유하면서 잔가지의 문제들에 대한 ‘학습된 분노’를 서로 증폭시킨다.
지난 재보선에서 나타난 30대 이하 유권자의 돌출적인 투표 경향은 다음과 같은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금언으로 요약된다고 생각한다. ‘옳지만 낡은 것보다 나쁘더라도 새로운 것이 낫다.’ 정치적 확신이 없는 이들에게 당장 새로운 것이란 정권교체다. 하지만 정권교체만으로 몸통의 문제가 해결되리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 이대로 발본적인 변화 없이는 과거 세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어떠한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지 아직 잘 알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30대 이하 청년들 몇명 불러다가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이냐라고 물어봤자 큰 의미가 없다.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옳다’는 확신을 단호하게 갖고, ‘내가 원하는 것이 네가 원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로 일관하며 실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낫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잡음과 갈등에도, 좌고우면 않고 ‘척’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편이 낫다. 당장은 꼰대처럼 보이겠지만 인기 영합용 탈꼰대 제스처보다는 대놓고 꼰대가 되는 편이 차라리 낫다.
김내훈 작가,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서 극단적 도발자들의 ‘나쁜 관종’ 현상을 분석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