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어 신고한 해군 여성 부사관이 피해사실을 다투는 과정에서 진급과 장기복무심사에서 모두 탈락한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해군에게 피해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권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7월말 인권위는 해군 소령 ㄱ씨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은 뒤 각종 인사 불이익을 겪었다며 부사관 ㄴ씨의 아버지가 해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진정을 받아들여 권리구제를 위한 권고 결정을 내렸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서 인격권과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진정을 낸 ㄴ씨 아버지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군에게 적극적인 시정 조처를 요구한 것이다.
지난 2019년 2월 ㄱ씨는 업무보고를 하러 온 ㄴ씨에게 “이게 뭐냐”고 말하면서 자신의 양손으로 ㄴ씨의 왼손을 10초 정도 잡고 양 엄지손가락으로 손등 부분을 문질러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을 맡은 군사법원은 ㄱ씨의 행위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군사법원의 판단을 뒤집고 “ㄱ씨 행위는 성적 동기가 내포됐고, 추행의 고의가 인정된다”며 평소 ㄱ씨가 성희롱적 언동을 많이 했고, 당시 사무실에 둘만 있던 상황 등을 고려해 ㄱ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어 고등군사법원이 연 파기환송심에서 ㄱ씨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또다시 불복해 재상고했고, 지난달 12일 대법원이 이를 기각하고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최종 확정 판결이 나기까지 약 2년6개월의 동안 ㄴ씨는 ㄱ씨의 맞고소에 고통을 호소했다. 1·2심에서 무죄를 받은 ㄱ씨는 ㄴ씨를 무고와 명예훼손, 상관모욕 혐의로 맞고소했다. 군검찰은 무고와 명예훼손은 무혐의로 판단했으나 상관모욕죄 혐의를 인정했고, ㄴ씨는 2019년 11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당시 ㄴ씨는 성추행 피해 외에도 ㄱ씨에게 장기복무를 빌미로 부당한 지시를 받고 지속적인 성희롱 피해를 입었는데, 이와 관련해 동료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문제가 됐다.
ㄴ씨 쪽은 “가해자는 재판을 대비하며 군생활을 하는 사이 피해자는 가해자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처분을 받은 셈”이라며 기소유예 처분이 두 차례의 진급심사에서 누락된 결정적 이유가 됐다고 본다. ㄴ씨는 지난해 2월 기소유예 처분에 따라 회부된 징계위원회에서 성추행 가해자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던 상황이 사실로 인정돼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2019년 12월, 2020년 12월 실시된 진급심사에서 모두 탈락했다.
해군은 인권위에 “다른 부사관과 동일한 기준으로 심의했다. 기소유예 처분 사실은 성폭력 피해사실과 무관하므로 성폭력 신고에 따른 불이익 조치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ㄴ씨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조사결과 “ㄴ씨의 근무평정 점수는 진급심사 기준상 고득점 수준에 해당했다”고 밝혔다.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ㄴ씨가 기소유예 처분이 성추행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의 해명서를 해군본부 감찰실에 두차례 제출했지만 모두 진급선발위원회로 전달되지 않았던 점도 드러났다.
인권위는 “피해자가 해명서를 제출했음에도 해군본부 진급관리과가 성폭력 피해와 관련된 해명서를 채택하지 않아 진급선발위원회에서 진지하게 검토되지 못했고 이로인해 연공서열과 근무평정 점수 등이 우위에 있던 피해자가 승진 영역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며 해군의 행위는 성폭력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조처가 맞다고 판단했다. 이어 인권위는 “해군의 행위는 단순히 피해자를 진급에서 배제한 것일 뿐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적대적인 근무환경을 조성해 조직 내에서 피해자의 평판 및 명예 등에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혔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해군에 △인사검증위원회의 해명서 검증 절차 관련 규정 정비 △차기 부사관 진급심사에서 피해자 ㄴ씨가 받은 기소유예 처분과 관련해 충분히 소명하도록 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할 것 △진급심사 관련 담당자 직무 교육 시 관련 사례를 참고해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등을 권고했다. 현재 ㄴ씨는 두 차례 진급심사에서 누락돼 내년 5월 전역이 예정된 상태다.
ㄴ씨의 아버지는 <한겨레>에 “딸이 지금까지 버텨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다. 가해자는 재판을 받으면서도 계급에 걸맞은 군 생활을 했지만 그사이 피해자는 모든 불이익을 감수했고, 결국 원치 않았지만 전역지원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인권위 권고를 해군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딸과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해군은 인권위 권고와 관련해, ㄴ씨가 올해 진급 심사 대상자라며 “권고를 받아들여 관련 규정을 확인, 보완해 인사상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직무 교육을 강화해 유사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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