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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공학자가 대나무 펴는 기술에 몰두한 까닭은?

등록 2021-08-02 19:15수정 2021-08-03 14:17

박충년 전남대 신소재공학부 명예교수
“대통술 3년산 양주 30년산과 비슷해요”
박충년 전남대 신소재공학부 명예교수가 지난달 31일 광주교육연수원의 ‘기술혁명 알기’ 강좌에서 강의를 끝낸 뒤 직접 고안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정대하 기자
박충년 전남대 신소재공학부 명예교수가 지난달 31일 광주교육연수원의 ‘기술혁명 알기’ 강좌에서 강의를 끝낸 뒤 직접 고안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정대하 기자
“‘대나무 통’(이하 대통)에 담긴 술을 3년만 보관하면 30년 산 양주 맛이 난다고들 합니다.”

박충년 전남대 명예교수(신소재공학부)는 지난달 31일 광주시 북구 광주교육연수원에서 시민자유대학 주최로 열린 ‘기술혁명 알기’ 강좌에서 “사흘에서 닷새 가량이면 대통에 구멍을 내지 않고 술을 모두 채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대나무 양 끝 마디로 밀폐된 대통에 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 담양 전통 대통술은 부드러운 맛과 깊은 향이 일품이다. 하지만 대통 안에 술을 채우려면 10년가량 걸리는 게 문제였다. 이 문제를 박 교수가 해결한 것이다. 그는 “(술을 채울 때) 대통 술 증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열수축성 튜브’를 이용한다”고 ‘비법’을 말했다.

박충년 전남대 명예교수가 열수축성 튜브를 사용해 발효시킨 대통술.
박충년 전남대 명예교수가 열수축성 튜브를 사용해 발효시킨 대통술.
박 교수의 전공 분야는 수소에너지와 2차전지 등이지만 신소재로서의 대나무에 일찍이 주목했다.

대나무로 유명한 전남 담양이 고향인 그는 2004년께부터 대나무를 신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대나무가 나무보다 산소배출량이 35%나 많아 탄소 저감 효과가 뛰어나다. 대나무 숲을 늘릴 필요가 있는데도 주민들이 대밭을 ‘애물단지’로 생각하고 외면하는게 안타까웠다”고 연구 동기를 말했다. 박 교수는 대나무가 친환경 재료로 쓰인다면 새로운 대나무 숲이 조성될 것으로 생각하고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대나무 활용을 제한하는 단점을 보완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도전했다”고 말했다.

담양의 집 한쪽의 작업실에 설치한 대통 평판화 기계는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기기다.
담양의 집 한쪽의 작업실에 설치한 대통 평판화 기계는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기기다.

박 교수의 연구 주제는 “원통형 대나무를 열과 힘만으로 균열없이 평평하게 펴는 기술”이었다. 원통형인 대나무를 편평하게 펴면 목재로써 이용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점에 착안한 연구였다. 그는 담양의 집 한쪽에 작업실을 만들어 평판화 기계를 직접 설계, 제작해 시험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는 반원통형 대나무에 150~250도의 열을 가해 ‘압축 응력’한 뒤 평판을 만들 수 있었다. 박 교수는 “대나무의 균열 원인을 재료 역학적으로 분석해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열처리 기술을 발견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대통 한 마디를 펴는 데 5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3분이면 충분하다. 마디가 포함된 반원통형 대나무도 1분에 50㎝ 속도로 펼 수 있게 됐다. 평평하고 반듯하게 펴진 대나무 재료는 대나무 본래의 표피를 갖고 있어 다른 목재와 비교해도 기계적 강도, 방수성에서 월등하게 우수하다고 한다. 박 교수는 또 원통형 대나무가 마르면 균열이 발생하는 문제도 열처리 기술을 이용해 해결했다. 그는 “균열 방지 열처리 후 대통은 보통 갈색으로 변하는데 대나무 본래의 녹색을 유지하는 열처리 기술도 개발했다”고 말했다.

박충년 전남대 명예교수는 집을 지으면서 대나무 재료를 마루 바닥재로 사용했다.
박충년 전남대 명예교수는 집을 지으면서 대나무 재료를 마루 바닥재로 사용했다.

박충년 전남대 명예교수가 평탄화된 대나무 재료로 고안해 만든 피타고라스 정리 등 학습체험 도구.
박충년 전남대 명예교수가 평탄화된 대나무 재료로 고안해 만든 피타고라스 정리 등 학습체험 도구.
박충년 전남대 명예교수가 대나무 재료로 만든 위생도마 등 공예품.
박충년 전남대 명예교수가 대나무 재료로 만든 위생도마 등 공예품.
박충년 전남대 명예교수가 평평해진 대나무 재료로 손자들을 위해 만든 장난감.
박충년 전남대 명예교수가 평평해진 대나무 재료로 손자들을 위해 만든 장난감.
평판화한 대나무는 친환경 재료로 인테리어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박 교수는 집을 지으면서 평판 대나무 재료를 마루 바닥재와 벽재로 써 보았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온기가 쉽게 올라와 따스했다. 그는 이어 탁자와 찻상, 위생 도마, 차 쟁반, 조명등, 차통, 액자 장식 등 공예품도 만들었다. 박 교수는 “대나무로 장식용 자동차를 만들어 손자들에게 선물했더니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수학을 좋아했던 그는 대나무로 피타고라스 정리를 손으로 만지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 퍼즐형 수학 교구를 만들어 담양 지역 내 중학교에 기증하기도 했다.

과제는 이 기술을 이용한 상품화와 실용화다. 박 교수는 “이러한 연구 성과와 기술들은 다른 사업가에게 이전해 실용화하는 게 필요하다. 담양의 대나무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후학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제 마디를 포함하는 원통형 대나무의 평판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명예퇴직한 그는 “대학원생 연구지도에 대한 부담도 없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나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시민자유대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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