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컬렉션: 한국의 위기’에서 확인된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 초안.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는 한국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사건이다. 1997년의 경제위기는 한국 사회가 겪은 재난 가운데 한국전쟁 다음으로 큰 재난으로 종종 일컬어진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임금상승과 노동조건 개선을 통해 확대되었던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은 아이엠에프 위기로 다시 위축되었다. 금전적인 효율성만 추구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하의 구조조정이 수많은 기업들을 퇴출시키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비정규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 사회와 경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그렇게 생겨난 구조는 20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도 다음과 같이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첫째, 수많은 재벌이 해체되었지만 살아남은 재벌의 경제력은 더욱더 커졌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도 확대되었다. 일례로 1999년에서 2019년 사이에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 대비 71.7%에서 59.4%로 감소했다. 둘째,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기업과 은행들은 장기적 산업 발전보다 단기적 수익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한진해운의 해체나 축소지향적인 조선업 구조조정의 과정은 한국 사회가 당장의 금전적 가치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시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셋째,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규제가 완화되면서 국내기업과 은행의 외국인 소유 지분이 늘어났고, 주식·펀드·보험·모기지 등의 금융상품 투자와 소비가 보편화되었으며, 가계부채가 폭증하고 부동산 등 자산거품의 위험이 커졌다. 넷째,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자 제도 도입 등 노동시장 유연화로 노동자의 삶은 더 불안정하게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으로 대표되던 불안정 노동은 이제 플랫폼 노동이라는 새로운 행태로 진화하고 있다. 다섯째, 그 결과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양극화는 중산층을 감소시켰고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심화했으며 상대적 빈곤층을 확대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도 규제완화와 개방의 흐름 속에서 더욱더 커졌다. 여섯째,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과 노인의 삶은 한국 사회의 불안정과 양극화의 결과이다. 청년들 대부분이 취업경쟁, 실업,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고, 불안한 미래는 이들을 엔(n)포 세대, 욜로(YOLO·한번뿐인 인생), 소확행, 공무원시험으로 이끈다. 노인 중 절반은 빈곤에 시달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고독사하고 자살한다. 중년이라고 편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거나 대기업·정규직이더라도 교육비와 주거비 부담에 휘청거리고 퇴직 후가 불안하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997년 12월17일 낮 서울 광화문빌딩앞에서 '경제주권 수호 결의대회'를 갖고 재벌체제 해체와 관치금융 철폐 및 국제통화기금(IMF) 재협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극단적 양극화와 불안정화는 아이엠에프 위기 이전에는 없던 모습이지만, 현재는 마치 자연스러운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는 일부의 ‘공정’에 대한 ‘능력주의’적 인식이 그 예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공개한 문서들은 ‘1997년 아이엠에프 체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그동안 외환위기의 진상에 관한 문건들로는 아이엠에프와 한국 정부의 대외문건, 경제관료들의 회고록, 언론사의 심층취재기사, 그리고 한국방송(KBS)이 발굴했던 미국 국무부, 재무부, 중앙정보국(CIA)의 기밀해제 문서 등이 있었으나, 아이엠에프 내부문건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7년 당시 협상 과정과 위기관리 과정을 한국과 미국의 시각뿐 아니라 아이엠에프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엠에프 이사회와 스태프 간의 내부 커뮤니케이션, 한국 정부의 의견과 그밖의 외부문건 등 자료는 당시 비극적인 상황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문건은 우리가 진정한 21세기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떨쳐버려야 하는 20세기 말 신자유주의 망령의 시작을 드러내주고 있다.
지주형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