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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뒷짐 진’ 열 살 소년 한달라를 아시나요

등록 2021-07-24 08:45수정 2021-07-24 10:44

[한겨레S] 이란주의 할 말 많은 눈동자
⑳ 마흐무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 유학생
이스라엘 점령 이후 핍박과 폭격
팔 저항을 상징하는 아이 한달라
용기 필요한 이들에게 소개하고파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작가

마흐무드 알나자(31)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 유학생이다. 한국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의 아픔을 전하기 위하여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가 운영하는 ‘난민과 함께하는 사람책 도서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책’으로 활동한다. ‘마흐무드’를 대출해 책을 펴니 마흐무드와 ‘한달라’가 같이 튀어나왔다.

한달라, 모든 청년의 상징

내가 입고 있는 옷에 그려진 이 그림, 보이나요? 아이는 고슴도치 같은 머리를 하고 기운 옷을 입고 항상 뒤돌아서 있죠. 맨발의 난민캠프 아이들 모습 그대로예요. 한달라는 팔레스타인 만화가 ‘나지 알리’가 그린 캐릭터예요. 뒷짐 진 손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식 해결책을 거부한다는 의미래요. 한달라는 팔레스타인의 정체성과 저항을 상징해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곳곳 벽과 담장에, 티셔츠와 열쇠고리에도 한달라가 있어요. 아이 얼굴과 표정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우리가 자유와 평화를 찾는 날 한달라가 함박웃음을 보여줄 거라고 믿어요. 만화가는 오래전 암살되었지만, 그날이 오면 다른 누군가가 웃는 얼굴을 그려 넣을 겁니다. 나는 한달라가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고난을 이겨내려 애쓰는 모든 청년들의 상징이라고 생각해요. 용기가 필요한 한국 청년이 있다면, 나는 한달라를 소개해주고 싶어요.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뒤 지금까지 70여년간 계속 싸우고 있어요. 우리는 이스라엘의 핍박을 견디며 점령지에서 살거나, 전세계에 흩어져 디아스포라로 살고 있어요. 나 역시 가자지구 난민캠프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지금껏 나는 전쟁을 다섯번 겪었어요. 두 달 전에도 엄청난 전쟁이 있었잖아요. 이스라엘이 폭격을 퍼부어 건물이 다 파괴되고 내 친구들도 여럿 죽었어요. 만약 내가 거기 있었다면 나 또한 그렇게 죽었겠지요.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250여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전쟁인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아이언돔’(이스라엘 방공망)만 기억하는 것을 보고 무척 슬펐어요. 우리에게 죽음은 너무 가까이 있고, 희망은 결코 오지 않아요.

점령군에 막힌 출국길

나는 5년 전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왔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운르와(UNRWA, 국제연합 팔레스타인 난민구제 사업기구)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내 가슴은 답답함으로 터질 것 같았어요. 점령당한 삶은 감옥 그 자체니까요. 한국도 전에 일본에 강제점령당한 일이 있다고 들었어요. 같은 경험이 있으니 이 고통을 이해하실 거라 믿어요. 나라와 함께 우리는 존엄도 권리도 자유도 다 빼앗겼어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 절망에서 헤어날 방법은 무엇인가! 절절한 마음으로 방법을 찾던 나는 외국 유학을 선택했어요. 정말 많은 곳에 장학금 신청서를 제출했죠. 운 좋게 영국 대학 장학프로그램에 선정되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어요. 이스라엘 점령군에 출국을 신청했지만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세번이나 거절당하는 사이 입학 시기를 넘겼고 나는 장학금 지원처에 죄송하다는 편지를 써야 했어요.

다시 한국 장학프로그램에 뽑혔는데 이스라엘 점령군은 또 출국을 허가하지 않았어요. 체념하고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에 장학금을 못 받게 되었다고 사과드리려 연락하니, 뜻밖에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그때 일이 풀리는 것을 보면서 정말 실감했어요. 진짜 아무 이유도,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오로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탄압하고 괴롭히기 위해 출국을 막는 거구나! 자유롭게 사는 한국 사람들이 나는 한없이 부러워요. 한국에서 지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나는 부모님이 몹시 그립지만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매일 전화해서 부모님 목소리를 듣고 안전하신지 여쭙고 싶은데 그마저도 쉽지 않네요. 전기가 하루 네 시간만 들어오니 전화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난민에게 쏟아지는 아픈 말

나는 한국 서울대학교에서 2년간 국제공공행정을 공부해서 석사학위를 받고 카타르에 1년간 인턴십으로 다녀온 뒤, 다시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국제개발을 공부해서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둘 다 운르와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선택한 분야예요. 앞으로 이런 경력을 살려서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국제협력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지금은 취업을 준비하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공장 일이나 택배 일이죠. 취업을 해야 비자를 연장할 수 있는데 정말 걱정입니다. 결국 한국 정부에 난민인정신청을 해야 하나 봅니다.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국적이 없어요. 기쁜 마음으로 돌아갈 곳도, 우리에게 안전과 자유를 보장해 주는 곳도 없어요. 내가 유엔난민기구가 인정한 난민이지만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다시 신청과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들었어요. 시민들도 난민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듯해요. 사람책으로 활동할 때, 왜 왔느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었어요. 난민 때문에 우리가 낸 세금을 다 쓴다, 난민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다, 그런 아픈 말도 들었어요. 나는 그런 부정적인 의견에 더 정성 들여 답했어요. 우리는 전쟁과 탄압을 피해 왔습니다. 짐이 되려고 한국에 온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있다면 우리는 한국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싶습니다, 하고요.

나는 어릴 때 연날리기를 아주 좋아했어요.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연을 날렸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해요.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하늘의 연처럼 자유로워지면 좋겠어요. 열 살 소년 한달라가 뒷짐 진 손을 풀고 천진하게 웃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어요. 한국 시민들께 정중하고 간절하게 연대를 요청합니다. 힘을 보태주십시오.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일꾼. 국경을 넘어와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주민들의 그 이야기를 풀어내 당사자 시점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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