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충북역사문화연대 박만순 대표
“1960년 8월 부산기지사령관이던 박정희는 민간인 학살자 유족회에 접근을 시도했다. 하지만 1년 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뒤 반공을 국시로 내걸었고, 민간인 학살 사건을 망각의 수장고에 감금했다.”
박만순(55)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가 최근 낸 <박만순의 기억전쟁>(도서출판 고두미)의 한 부분이다. 박 대표는 “박정희의 형 박상희는 인민위원회 간부로 1946년 10월 구미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유명한 혁명가였다. 그의 아내 조귀분은 경북 선산 피학살자 유족회 부녀부장을 지냈으며, 박정희도 한때 민간인 학살 사건 규명에 호의적이었지만 정권 유지를 위해 돌변했다. 지금까지 민간인 학살 관련 조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출발점이 박정희 정권”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꼬박 1년을 남해 땅끝마을 해남과 완도, 장흥, 화순 등과 경상도 김해, 경산, 경주 등 60~70여년 전 학살 현장을 샅샅이 누볐고, 생존자와 유족 등 수백명을 만나 그들의 기억을 채록했다. ‘빨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품속에 가보처럼 고이 간직해온 아버지·어머니·누이·동생의 빛바랜 사진들도 곁들였다. 그는 “대부분 툭 건들기만 하면 한 서린 얘기를 쏟아냈다. 그들은 하고픈 얘기가 많은데 여태 들어줄 이가 없었다. 인터뷰 뒤 지병으로 숨진 이도 있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했다.
책은 한국전쟁 앞뒤로 경상, 전라지역에서 이뤄진 민간인 학살과 시대상을 씨줄과 날줄로 엮고 있다. 1946년 10월 대구 항쟁 때 경찰에 의해 불법 총살당한 박상희 사건, 1950년 전후 전남 완도·장흥에서 벌어진 학살, 1950년 7월 전남 해남 갈매기섬 국민보도연맹원 200여명 학살, 1950년 7~9월 사이 경남 마산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1681명을 전차 상륙함을 이용해 수장한 괭이 바다 사건 등을 기록했다. 민주화 운동을 하며 대구 민간인 학살 유족회 조사부장을 지낸 이복녕씨를 고문한 ‘고문 기술자’ 이근안 이야기도 나온다.
경상·전라 쪽 민간인 학살 파헤쳐
최근 ‘박만순의 기억전쟁’ 출간
학살 현장 찾아 후손 수백명 인터뷰
“툭 건드려도 한 서린 이야기 쏟아져
학살 사건은 망각과 기억의 전쟁터” “국가 진상규명·명예회복 적극 나서야” 책은 소설처럼 술술 읽히지만, 등장하는 날짜·장소·인물·이야기 모두 실화다. ‘경주 염라대왕’으로 불린 이협우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협우는 일제 고등계 형사를 거쳐, 경찰 하부 지원조직이었던 민보단, 대한청년단 등에서 활동했다. 경북 경주 주민학살에 앞장선 죄가 드러나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5·16쿠데타 이후 풀려나 세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해 이협우 같은 괴물이 활개 쳤다. 이협우의 민보단은 약 200명을 불법 학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협우처럼 책에 담은 기록은 증인과 증언이 있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실명으로 낱낱이, 꼼꼼하게, 촘촘하게 남기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20년째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에 매달리고 있다. 2002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은 뒤 민간인 학살의 현장, 희생자의 발자취, 남은 자의 이야기를 좇고 있다. 그동안 충북지역 마을 2천여곳에서 6천여명을 만나 채록한 <기억전쟁>을 지난 2018년 낸 데 이어 지난해 대전 등지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담은 <골령골의 기억전쟁>을 내기도 했다. 그는 <오마이 뉴스> 시민기자로 자신이 발굴한 민간인 학살 이야기를 시민에게 알리기도 한다. 요즘 충남과 경기 지역 민간인 학살 현장을 누비며, 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는 그는 “민간인 학살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망각’과 ‘기억’의 전쟁터다. 누군가는 잊으려 하고 누군가는 기억하려 한다. 누군가는 기억을 기록하고, 남겨야 하기에 전장에 선 마음으로 기억에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박 대표의 바람은 한국전쟁 앞뒤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국가폭력 실태를 공론화하고, 당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시민과 공유하는 것이다. 그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을 뗐지만 활동은 미약했고, 희생자와 유족의 마음을 달래기엔 미흡했다. 국가가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너무 늦었다”고 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최근 <박만순의 기억전쟁>을 낸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 오윤주 기자 최근 <박만순의 기억전쟁>을 낸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 오윤주 기자](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00/450/imgdb/original/2021/0719/20210719503503.jpg)
최근 <박만순의 기억전쟁>을 낸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 오윤주 기자
최근 ‘박만순의 기억전쟁’ 출간
학살 현장 찾아 후손 수백명 인터뷰
“툭 건드려도 한 서린 이야기 쏟아져
학살 사건은 망각과 기억의 전쟁터” “국가 진상규명·명예회복 적극 나서야” 책은 소설처럼 술술 읽히지만, 등장하는 날짜·장소·인물·이야기 모두 실화다. ‘경주 염라대왕’으로 불린 이협우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협우는 일제 고등계 형사를 거쳐, 경찰 하부 지원조직이었던 민보단, 대한청년단 등에서 활동했다. 경북 경주 주민학살에 앞장선 죄가 드러나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5·16쿠데타 이후 풀려나 세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해 이협우 같은 괴물이 활개 쳤다. 이협우의 민보단은 약 200명을 불법 학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협우처럼 책에 담은 기록은 증인과 증언이 있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실명으로 낱낱이, 꼼꼼하게, 촘촘하게 남기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20년째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에 매달리고 있다. 2002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은 뒤 민간인 학살의 현장, 희생자의 발자취, 남은 자의 이야기를 좇고 있다. 그동안 충북지역 마을 2천여곳에서 6천여명을 만나 채록한 <기억전쟁>을 지난 2018년 낸 데 이어 지난해 대전 등지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담은 <골령골의 기억전쟁>을 내기도 했다. 그는 <오마이 뉴스> 시민기자로 자신이 발굴한 민간인 학살 이야기를 시민에게 알리기도 한다. 요즘 충남과 경기 지역 민간인 학살 현장을 누비며, 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는 그는 “민간인 학살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망각’과 ‘기억’의 전쟁터다. 누군가는 잊으려 하고 누군가는 기억하려 한다. 누군가는 기억을 기록하고, 남겨야 하기에 전장에 선 마음으로 기억에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박 대표의 바람은 한국전쟁 앞뒤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국가폭력 실태를 공론화하고, 당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시민과 공유하는 것이다. 그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을 뗐지만 활동은 미약했고, 희생자와 유족의 마음을 달래기엔 미흡했다. 국가가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너무 늦었다”고 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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