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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새벽 폭식과 대인 기피…‘우울의 방’에 갇힌 학생들

등록 2021-07-17 15:27수정 2021-07-17 15:30

[토요판]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⑨ 비전형성 우울증

대학 입학 뒤 곧바로 휴학한 영은씨
다양한 대인관계 접할 기회 사라져
새벽 식욕과 짜증 등 감정기복 증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자 호흡곤란도

병원 상담서 비전형성 우울증 진단
무기력과 몸 무거운 연마비 증상에
거절당하는 데 과도하게 민감해져
방에 갇혀 혼잣말 땐 병원 찾아야

치료엔 아침 기상시간 조절이 중요
카페인과 단 음식 줄이고 운동하자
아침이 생기고 대인관계 편안해져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교육부의 ‘2020년 교육기본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국내 대학교의 휴학생 수는 83만명에 달합니다. 이는 전체 대학생 수의 25.3% 정도입니다. 학생들이 휴학을 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맞는 학교나 전공을 찾기 위해, 혹은 군복무, 해외연수, 취업 등의 이유도 있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휴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휴학을 거듭하다가 결국 자퇴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학습 의욕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은데, 자세히 살펴보면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사례가 다수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예전처럼 형제가 많지 않고, 중·고등학교 때도 친구들과 어울릴 충분한 시간 없이 학교와 학원 위주로 다니며 자랍니다. 대학교 생활 이전에는 선생님-학생과의 관계 이외에는 다른 대인관계를 배울 시간이 부족합니다. 학생들에게 대학은 처음으로 다양한 대인관계를 접하는 곳입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면 대인관계를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영은씨는 20살 대학교 1학년 휴학생입니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했고 아직 같은 과 친구들의 얼굴도 잘 모릅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한 뒤 지금은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주로 새벽까지 유튜브를 보거나 모바일 게임을 하는데 최근에는 새벽 5시가 넘어 잠이 들었고 정오가 되어야 겨우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이 없는 삶을 살아온 것이 벌써 반년이 넘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아침에 깨우려고 해도 영은씨는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새벽 식욕 늘고, 대인관계 힘겨워

영은씨는 오후가 되어야 잠에서 깨고 기운이 조금 나게 됩니다. 밤이 되면 정신이 더 또렷해져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새벽형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벽에는 특히 식욕이 당겨 매일 야식을 합니다. 야식을 할 때는 국수, 빵, 매운 음식 등을 많이 먹었습니다. 새벽에 많이 먹고 늦게 일어나니 하루가 다르게 체중이 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먹은 날은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서 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펴면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종이책에 쓰여 있는 글자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웹툰이나 인터넷 카페 게시글은 눈에 잘 들어옵니다. 영은씨는 밤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많이 하는데, 새로 산 신상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에스엔에스에 올리고 ‘좋아요’를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휴학 중 오랜만에 학교에 간 영은씨는 학생회관에서 사람들이 서로 떠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마치 영은씨를 비난하며 웃는 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쟤는 어젯밤에 뭘 먹어서 저렇게 배가 나왔지? 재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영은씨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 사람들에게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불편한 마음에 학교를 빠져나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는 너무 피로해 잠이 들었습니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학교에 있었을 뿐인데도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저녁에 일어나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먹방을 보면서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영은씨는 부모님의 권유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결제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많이 줄을 서 있으면 심하게 긴장되고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손님 중 한 사람이 빨리 계산해달라고 화를 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지면서 심하게 어지러워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다시 집에서 누워 지내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은씨는 감정기복이 심해져서 오전에는 내내 무기력했고 오후에는 화가 나고 짜증이 났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가 가장 싫었는데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식은땀이 나고 숨쉬기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은씨는 감정기복과 불면증, 호흡곤란으로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했습니다. 검사 결과 지능은 정상이었지만 감정기복이 심하고 생각 반응 속도가 무척 느렸습니다. 예를 들어 문장을 완성하는 검사에서 문제 이해는 잘했지만 반응 속도가 너무 느려서 완료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속도가 너무 느린 이유는 ‘비전형성 우울증’으로 인해 의욕이 떨어지고 긴장과 불안이 높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 파악이 되었습니다. 우울증으로 인한 운동 부족으로 체지방 증가와 고지혈증이 와서 이대로 방치하면 당뇨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결과도 확인했습니다.

우울증은 20~30대 청년층과 40대 이상의 중년·노년층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청년층에는 ‘비전형성 우울증’이 더 흔하고, 중년·노년층에서는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 더 흔합니다. 멜랑콜리아형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경험하는 중증의 우울증으로 즐거운 감정이 없어지고 식욕이 떨어지고 체중 감소가 있으며 오전에 특히 우울감이 심합니다. 이에 비해서 비전형성 우울증은 주로 새벽시간대 식욕 증가, 불면, 오전시간대 무기력, 졸림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통점은 대인관계에 대한 의욕이 줄어들고 사람 만나는 것을 힘들어한다는 점입니다.

비전형성 우울증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크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식욕이 증가하고 밤에 폭식증이 있습니다. ‘렙틴’과 ‘그렐린’은 우리의 몸에서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입니다. 렙틴은 식욕을 억제하고 그렐린은 반대로 식욕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비전형성 우울증에서는 렙틴의 식욕억제 효과가 줄어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야간에 식욕이 증가하면서 빵, 국수, 라면 등 탄수화물과 매운 것이 당기게 됩니다. 혈당이 증가하면 우울감과 불안감이 줄어들기 때문에 더 많이 먹게 됩니다. 둘째,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납니다. 심지어는 밤낮이 완전히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일찍 잠이 오지 않고 밤이 될수록 눈이 초롱초롱해집니다. 신체의 리듬이 정오가 되어서 시작되어 전체적으로 반나절 정도 뒤로 밀립니다. 결국 새벽에 에너지와 식욕이 증가하게 되어서 정작 활동을 해야 하는 낮에는 심한 무기력증을 보이게 됩니다. 셋째, 몸이 무겁고 주로 누워 지냅니다. 누워서 햄버거나 감자튀김, 치킨을 먹는 것에 익숙하고 방은 거의 치우지 않습니다. 이때 사지가 납처럼 무겁고 움직이기 힘들게 느껴지는 현상을 ‘연마비’(leaden paralysis)라고 합니다.

넷째,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요.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는 것에 매우 민감합니다. 이것을 ‘거부민감성’이라고 합니다. 거부민감성으로 인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나 말투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의 내용에는 집중하지 않고 표정이 어떤지 예민하게 살펴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과다하게 생각하고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는 그 사람의 당시 컨디션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제 잠을 못 잤거나 일이 많아서 피곤한 경우에 표정이 굳어지고 말투가 다소 퉁명스러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영은씨는 이런 경우에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를 자신 때문으로 해석하고 “나를 싫어하고 미워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과도하게 관심을 받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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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시간 당겨 각성시간 조절해야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서 환청과 관계사고가 생기면 아예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 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때는 응급상황으로 빠른 시간 내에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환청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는 소리가 실제로 귀에 들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실제 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이때 귀의 고막이 울리지 않습니다. 귀에 고막이 울려서 듣는 소리가 아니고 뇌 속에서 발생한 소리입니다. 연구를 통해 뇌 영상을 촬영해보면 환청을 들을 때 소리를 듣는 중에 청각 중추가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관계사고’란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현상이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증상이 생기면 자신의 생각에 몰입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방에서 더 나오지 않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를 보면 이러한 현상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아파트에 사는 무명의 여성 화가 존시가 심한 폐렴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녀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친구의 격려도 아랑곳없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덩굴 잎이 다 떨어질 때 자기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집에 사는 화가가 나뭇잎 하나를 벽에 그려 심한 비바람에도 견디어낸 진짜 나뭇잎처럼 보이게 하여 존시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줍니다. 이때 나뭇잎이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이 끝난다는 서로 관계없는 두 현상을 연관시키는 것이 바로 관계사고이고 중증 우울증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영은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면서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조절해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영은씨는 아침에 조금씩 더 일찍 일어나기로 했습니다. 일어난 뒤에는 잠에서 깨기 위해 밖으로 나가 30분씩 조깅을 하고 왔습니다. 조깅 시에 햇볕을 쬐면 눈으로 빛이 들어가서 뇌의 시상하부를 자극해 몸도 잠에서 깨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신체 리듬을 조금씩 앞당길 수 있습니다. 커피나 카페인이 든 음료, 초콜릿은 불면을 일으킬 수 있어 삼가고 빛을 충분히 쬐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면 밤에도 더 일찍 잠이 오게 됩니다. 영은씨는 실제로 오전에 일찍 일어나면서 몸이 가장 각성되는 시간을 밤에서 오후로 당겼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식욕이 줄어들고 밤이 되면 잠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영은씨에게는 아침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비전형성 우울증으로 감정기복이 있을 때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거슬리고 짜증이 났습니다. 치료를 받고 나서 친구들을 만나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신체 반응 속도가 빨라지고 나니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더 순발력 있게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여행 동호회에도 가입했습니다. 영은씨는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을 종이책에서 찾아보고 글을 읽어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대학생 때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해도 힘들지 않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게 됩니다. 이때마다 긴장되고 불안하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면 결국 지쳐서 작은 스트레스에도 우울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니면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집돌이’나 ‘집순이’의 생활을 하면서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만나는 것이 편하고 즐거우면 더 많은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의 경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소중한 자양분이 될 수 있습니다.

▶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지은이 전홍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에 관해 설명합니다. 매우 예민하다는 것은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모두 가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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